등록 2016.01.27 10:03수정 2016.01.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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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명승지를 가보면 어김없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멋진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라고 하는 촉석루(矗石樓)에는 여러 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 현판이 걸려있어 주변 풍광과 함께 운치를 더한다.
팔작지붕 처마의 물이 직접 황강으로 떨어지는 그 유명한 함벽루(涵碧樓) 내부에는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의 시 현판이 붙어있어 역사와 전통은 물론 정자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수원화성을 답사하면서 보면 4대문과 화성장대, 연무대, 화홍문, 방화수류정, 화양루에는 현판이 붙어 있지만, 시 현판은 어느 곳에도 없다. 방화수류정에 올라 용연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정조 대왕의 시 한 수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인가.
화성성역의궤 권2 '어제'에 수원화성 건축물과 관련해, 화성장대, 방화수류정, 장안문, 팔달문, 동장대에서 정조 대왕이 지은 한시 6수가 나온다. '화성장대에서 친히 성 안에서 하는 군사 훈련을 보시고 시를 지어 처마 위에다 쓰다. 1795년 윤 2월 행차 때', '성을 순시하다가 방화수류정에 이르러서 활을 쏘아 맞혀 무예를 높이는 뜻을 보였다. 나는 세 번 맞혔고 내사와 외사도 그와 같이 하였다. 1797년 정월의 행차 때', '장안문 누각에서 총리대신의 운에 화답함. 1797년 행차 때', '좌의정이 팔달문 누각의 운에 화답함. 1797년 행차 때', '좌의정의 동장대에서 한가위 달을 구경하다의 운에 화답함. 1797년 8월 행차 때' 쓴 시가 실려 있다.
1831년 편찬된 화성지와 1899년 편찬된 수원군읍지에도 정조 대왕 시가 실려 있다. 수원군읍지 '화성지 속편'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건축물의 현판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오는데, 장안문과 서장대에 어제(御製) 시 현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장안문에 있었던 어제 시 현판은 소실된 것으로 보이고, 화성장대에 있었던 어제 시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화성장대에 있었던 어제 시 현판은 복제를 하고, 장안문에 있었던 어제 시 현판은 새로 제작하고, 당시에는 없었지만, 정조 대왕의 시가 남아 있는 방화수류정, 동장대, 팔달문에도 시 현판을 새로 제작해 걸면 어떨까 한다. 수원화성이란 하드웨어에 축성 당시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는 것이니 답사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시상에 잠겨볼 수 있을 것이다.
팔달산 위 서남암문 밖 용도 끝에 있는 화양루에 대한 박윤묵의 멋진 시가 있다. 이 시에는 수원화성 축성 당시 화성유수였던 조심태도 나온다. 이런 시를 현판으로 만들어 걸면 화양루가 더욱 운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워라, 화성의 성(城) 남쪽 모퉁이에
우뚝 솟은 백 척 화양루(華陽樓)여!
지세(地勢)가 솟구치고 문 밖이 어두우니
대붕(大鵬)이 고개를 높이 쳐든 것 같구나.
좌우 성가퀴가 서로 겨루듯 솟아있어
그곳에는 어떤 방법과 길도 용납치 않네.
동서(東西)가 벼랑처럼 험준하여 무얼 잡고 오르지 못하고
전에는 백 리를 둘러갔지만 이제는 지척일세.
만약 이곳에 망대(望臺)를 세우게 한다면
가깝건 멀건 다가오는 적을 앉아서 다 볼 수 있겠네.
멀리까지 생각한 당시의 조(趙)장군은
이 성터에 대해 얼마나 한결같이 힘썼을까?...
방화수류정에서 쓴 정조 대왕의 한시는 얼마나 멋진가.
歷遍春城日未斜 역편춘성일미사 / 봄날 성을 두루 돌아도 해는 아직 지지 않고
小亭雲物轉晴佳 소정운물전청가 / 방화수류정의 구름낀 경치 더욱 맑고 아름답구나
鑾旂慣報參連妙 난기관보삼연묘 / 수레를 세워놓고 세 번 쏘기가 묘하니
萬柳陰中簇似花 만류음중착사화 / 만 그루 버드나무 그림자 속에 화살은 꽃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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