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엄마들, 눈물 한번 쏙 뺍시다

[그림책 육아 일기 ⑨] 서현이 쓰고 그린 <눈물바다>

등록 2016.02.20 20:51수정 2016.02.20 20:5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쯧쯧, 너는 얼굴이 왜 그러니? 아토피구나!"
"아토피에는 ○○이 좋다는데…, 이거 해봤어?"


둘째와 외출할 때마다 적어도 한 번은 이런 소리를 꼭 듣는다. 내 아이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짜고짜 걱정과 한숨을 듣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불효자 취급을 받는다. 한때는 누군가 우리를 걱정해주는 마음을 저버리기 뭣해 예의를 갖춰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끝도 없는 걱정과 폭력적인 참견을 매일같이 듣는 건 크나큰 고역이다. 요즘은 누군가 말을 걸면 적당히 대화를 끊고 서둘러 자리를 뜨며 사람을 피해 다니는 잔꾀만 늘었다.

한밤중. 둘째가 잠결에 가려워 긁다가 결국 얼굴에서 피가 나 울어댄다. 가려움을 해결한답시고 내 가슴팍에 도리도리 얼굴을 비비는 둘째를 안고 다독인다. 순간, 낮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낯선 사람들에게 들었던 한탄의 말과 괴물 보듯 아이를 쳐다보던 무서운 시선들이 되살아나 심장을 후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사실 아토피 아이가 있는 가족은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고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생활 방식과 식생활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한편, 양방과 한방 치료를 섭렵하고 온갖 보습제와 건강보조식품에 민간요법까지…, 좋다는 건 다 해보면서 아이 피부에 매달린다.

나와 남편은 신생아 때보다 더 자주 깨고 가려움에 잠 못 드는 아이 때문에 잠이 늘 부족하다.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다가 아이의 피와 진물로 얼룩진 잠옷을 보면 잠이 확 깬다. 매일같이 피범벅이 된 베갯잇을 갈고 이불에 쌓인 각질을 털어낼 때면 늘 마음이 먹먹해진다.

a

그림책 <눈물바다> 겉표지 ⓒ 사계절 출판사(서현)


바야흐로 '눈물바다'. 어린 초등학생 밤톨이에게도 시련이 유독 많은 그런 날이 있다('밤톨이'는 나와 첫째가 붙인 그림책 <눈물바다>의 주인공 이름이다). 짝꿍이 먼저 괴롭혔는데 자기만 혼나고, 점심밥도 맛이 없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어 상자를 뒤집어쓰고 집에 왔건만, 비에 젖은 밤톨이는 안중에도 없이 부모님은 공룡 두 마리로 변신해 싸우기 바쁘다.


한밤중. 밤톨이는 낮 동안 겪었던 서러움이 몰려와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밤톨이를 지켜보던 달님도 함께 운다. 이튿날 아침, 밤톨이의 눈물이 흐르고 흘러 세상은 눈물바다가 됐다. 눈물바다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온 세상이 눈물바다가 된 장면에는 피노키오와 노아의 방주가 나오고, 열심히 수영하는 박태환 선수도 나온다.

밤톨이는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만든 눈물바다 속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본다. 자신을 슬프게 만든 사람들을 침대보로 구해준 후, 오히려 눈물바다에 빠뜨려 미안하다고 의젓하게 사과한다. 그래도 울고 나니 시원하다고 '후아~' 외치는 밤톨이의 모습은 참 건강하다.

눈물의 건강한 힘

a

그림책 <눈물바다>의 한 장면 2015년 그림책갤러리 제라진에서 열린 서현 작가의 전시회에서 찍다 ⓒ 송은미


나도 한바탕 울고 난 후, 낮 동안의 기억과 내 마음을 돌이켜 본다. 진물과의 사투 끝에 잠이 든 둘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너와 내가 이토록 절절하게 살아있구나. 둘째가 가려움으로 몸부림치는 것도, 내가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도 우리 모두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감사한 일인데, 그깟 아토피로 고생 좀 하면 어쩌랴. 둘째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끊고 혹독한 리 바운딩(금단현상)을 겪고 있지만, 몸 속 독소가 얼굴로 나온다고 생각하니 진물과 딱지도 새삼 고맙다.

사실 외출할 때마다 상처 주는 말만 들은 건 아니다. 정말 드물게 진물과 딱지로 얼룩진 피부 너머로 우리 둘째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따뜻한 말을 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너 머리 스타일이 완전 베컴이구나! 두상이 참 예쁘네!"
"웃는 얼굴 좀 봐! 미소 천사네!"

무엇보다 나는 둘째덕분에 값진 마음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혼자 귀담아듣고 마음 아파하면 그것은 내 손해임을 절절히 느꼈다. 왜 하필 우리 아이에게 아토피가 왔느냐고 원망하기보다는, '이제 무엇을 하면 되지?' 하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집중하는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아토피로 인해 원치 않는 동정과 참견을 들으면서, 나 또한 생각 없이 내뱉은 값싼 위로로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반성했다. 그러면서 진짜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할지도 고민하게 됐다.

참 고마운 눈물이다. 참 고마운 아토피다. 내가 좀 더 멋진 어른으로 거듭나라고 우리 둘째가 이리 고생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가볍다. 내가 흘린 3%의 눈물이 어지러웠던 마음 바다를 정화시켜주어 이렇게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난 그림책 육아 일기]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빨간 모자>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소개한 그림책: <눈물바다> / 서현 글, 그림 / 사계절 펴냄.
#그림책 육아 일기 #눈물바다 #서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2. 2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