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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 금사월>은 '암사월'? 문제는 주인공이야!

김순옥 월드에 대한 첨언...왜 주인공은 착해지기만 하는가

16.03.02 10:29최종업데이트16.03.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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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딸 금사월 사실은 내딸, 신득예라고 하더라 ⓒ mbc


나는 2008년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통해 김순옥이라는 드라마 작가를 알게 되었다. 전 남편과 친구에게 복수하러 돌아온다는 파격적인 설정, 눈가에 점 하나 찍었는데 아무도 자신을 몰라보는 황당한 내용, 가공할 만큼 빠른 전개, 연기파 배우들의 온몸을 불사른 열연까지. 다소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주인공의 화끈하고 시원한 복수 때문에 시청률은 날로 올랐다. 정말이지 막장드라마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명작이었다.

이후 김순옥 작가는 그 명성에 힘입어 주인공들의 성별만 바꾼 <천사의 유혹>(2009)이라는 드라마를 집필했다. 전작의 화제성 덕분에 시청률은 그럭저럭 잘 나왔지만 전작만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김순옥 월드의 악녀들

그리고 2014년, 작가는 자신의 두 번째 대표작인 <왔다! 장보리>를 집필했다.

<왔다! 장보리>는 <왔다! 연민정>라는 제목으로 바꿔 불릴 만큼 배우 이유리의 열연이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다른 악역과 달리 연민정은 사이코패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천하의 나쁜 년' 연민정이 언제 벌을 받나 기다리며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난다.

이 기세를 몰아 김순옥 작가는 최근 종영한 <내 딸, 금사월>을 발표했다.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드라마의 소재가 한복에서 건축으로 바뀌었고, 주인공은 더 착해졌으며 악인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왔다! 장보리> 만한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왜일까.

개인적으론 '김순옥 월드'의 불문율이 작품을 거듭할수록 강화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 작가의 드라마에서 꼭 지켜지는 법칙이 있으니 바로 권선징악. 심지어 악인은 자신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아내의 유혹>에서 친구의 남편을 빼앗았던 신애리(김서형 분)는 남편을 빼앗기고 시집살이를 당한다. 주인공인 은재(장서희 분)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했던 정교빈(변우민 분)과 신애리는 자신들이 살인을 저질렀던 그 바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 모녀는 어린 장보리(오연서 분)에게 국밥배달을 시키며 학대했다. 연민정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도씨(황영희 분)는 기억에서 연민정을 지운다. 연민정은 도씨의 국밥집에서 장보리가 했던 것처럼 파마머리를 하고 국밥을 배달한다.

<내 딸, 금사월>에 등장하는 악인들도 감옥에 가서 죗값을 받고 부당하게 얻었던 부를 빼앗긴다. 그리고 선인들이 초라하게 살았던 것처럼 초라하게 생애를 이어간다.

점점 착해지는 주인공들

▲ 아내의 유혹 막장 드라마계의 먼치킨 ⓒ sbs


다른 드라마에선 악인들이 갑자기 개과천선하곤 했지만 김순옥의 드라마 속 악인들은 반드시 자기가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반대로 주인공은 비현실적으로 착하다. 가공할만한 악인은 드라마의 흥행요소라고 할 수 있고 착한 주인공은 드라마 전개에 김이 빠지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김순옥 월드에서 전작만한 후속작이 나올 수 없는 이유는 주인공이 점점 더 착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착한 것과 바보 같은 것은 다르다. 자기 손에 피를 묻혀야 할 때조차 피를 묻히지 않는 주인공은 착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것이다. 게다가 자기 복수를 대신 해주는 사람에게 복수는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위선적이다 못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아내의 유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인공이 마땅히 필요한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뒤로 가면서 인정에 이끌리는 주인공의 모습 때문에 시청률이 줄기도 했다.)

<왔다! 장보리>는 악녀 연민정이 제 꾀에 넘어져 스스로 몰락하는 모습 때문에 높은 시청률과 화제를 몰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김순옥 드라마의 착한 주인공들을 보고 "당해도 싸다"고 말한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장보리나 금사월에게 자기 대신 복수해줄 사람이 없었다면 그들은 평생 악인들에게 당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긴 착하다고 정신 승리만 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 최고 흥행작가 중 하나인 김순옥 작가는 후속작을 집필할 것이다. 악인은 더 나빠지고 선인은 더 선해질 것이다. 얼마나 더 착한(?) 주인공이 등장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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