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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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전시관의 해설원과 함께. ⓒ 신은미
[기사 보강 : 8일 오전 9시 51분]
2015년 6월 29일, 오늘은 설경이네 집에 가는 날이다. 드디어 꿈에서라도 한번 안아보고 싶었던 설경이의 아들, 의성이를 만난다. 지난번 설경이를 만났을 때에는 뱃속에 있었던 아이가 어느새 두 살이 다 돼 간다. 의성이는 오후에나 육아원에서 돌아온다고 하니 오전 중에는 선물전시관 관람을 할 예정이다. 전시관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과 비슷한 곳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받은 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뜻하지 않게 2002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준 선물을 발견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이 준 선물은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칠보(七寶) 같은 물건이었다(전시관 내 사진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직접 사진을 찍진 못했다). 나는 그녀의 선물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서울로 돌아온 뒤 했던 언론과의 인터뷰를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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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5월 당시 국회의원 신분으로 3박 4일간 방북해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면담한 박근혜 대통령. ⓒ 사진제공 박근혜 의원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경제난 때문인 만큼 경제를 도와줘야" "북한이 우리보다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듯 보였다" "제(박근혜)가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 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키는 믿을 만한 파트너" "대화를 하려고 마주앉아서 인권 어떻고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 등등.
한국의 지도자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생각이 하루빨리 남북관계 개선에 반영이 됐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한동안 그녀의 선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돈다. 또다시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
평양 한가운데서 손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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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이네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모습. ⓒ 신은미
점심식사를 마치고 설경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봤다. 설경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염장 미역 그리고 의성이가 좋아할 것 같은 과자와 요구르트, 음료수 등. 쇼핑하면서 진열해놓은 상품들을 주의깊게 둘러봤다. 여전히 중국산과 일본산을 비롯한 외국 상품들이 일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북한산 상품들이 부쩍 늘었다. 이곳 동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중국산 식료품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를 증명하듯 특히 중국산 상품들이 자취를 많이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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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원 김혜영 선생(왼쪽)과 함께 설경이네 아파트로 향하는 모습. 사진 왼쪽 중간에 설경이 부부가 의성이를 데리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 신은미
미국서 가져온 선물은 남편이 둘러메고 슈퍼마켓에서 본 장은 안내원 김혜영 선생과 나눠 들고서 설경이네 아파트를 향해 걷는다. 멀리서 설경이 부부가 의성이의 손을 잡고 우리에게로 걸어오고 있다. 나는 뒤따라 오던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의성이가 오고 있어요!" 짐을 길거리에 내려놓고 의성이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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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양손자 주의성과의 첫 만남 . 의성이는 씩씩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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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양손자 주의성을 안고있는 남편과 나. ⓒ 신은미
처음 보는 순간 의성이의 얼굴에서 설경이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러나 품에 가까이 안고서 보니 엄마와 아빠를 꼭 반반씩 닮았다. 의성이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그대로다. 매우 명랑하고 씩씩하다. 낯도 가리지 않는다. '할마이, 할마이' 부르면서 춤을 추잔다. 길거리에서 함께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의성이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한다. 설경이 집까지 다 가기도 전에 나와 의성이는 늘 봐왔던 사이처럼 금방 친한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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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좋아하는 수양손자 의성이. ⓒ 신은미
의성이는 집에 와서도 내 무릎을 떠나지 않는다. 설경이가 "할마이 힘드시니 어서 무릎에서 내려오라"고 해도 의성이는 막무가내다. 설경이 말에 의하면 의성이가 집에서는 '극성'이지만 밖에 나가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늘 엄마 옆에만 딱 붙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게만은 의외로 붙임성을 보인다고. 의성이는 내 무릎에 안겨서 쉬지 않고 "할마이, 할마이…"란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뒤섞인 흐뭇함. 이래서 할머니들이 '손주 바보'가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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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두 번째 북한 방문기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받아든 평양의 딸 설경이. ⓒ 신은미
설경이에게 나의 두 번째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건네줬다. 책을 받아들곤 여기저기 읽어보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아마도 자기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발견한 모양이다. 설경이가 책을 읽는 동안 의성이 아빠가 내게 인사를 한다.
"어머님, 이렇게 매번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냐,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걸 뭐. 그런데 의성 아빠는 의성이가 커서 뭐를 했으면 좋겠어?"
"의성이 말입니까? 음…, 고저 지가 취미 있어 하는 것 하면 뭐든 좋갔습니다. 긴데 지금 의성이 체격봐서는 역기(역도)선수가 됐으면 하는데…, 지금 조국에서는 역기선수들이 인기가 좋단 말입니다.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그것도 세계신기록으로 따오고 하니 저도 의성이가 역기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말입니다, 하하. 긴데 집사람이 그만…."
"왜? 설경이가 반대해?"
"꼭 기런 건 아닌데 자기는 의성이가 과학자가 되는 게 좋겠답니다. 의성이가 전자기기 같은 것에 호기심이 많고 갖고 노는 걸 참 좋아합니다."
"민족 화합 이야기하는데 반공이 무슨 상관이라고..."
우리는 의성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서도 역시 아이들 교육이 단연 최고의 관심사다. 의성이 아빠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이야기지만, 이들에게는 가장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관심사일 게다.
"강연 도중 폭탄을 맞으셨다는데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괜찮았어. 내가 서 있는 강단 앞으로 폭발물을 들고 나오는데 어느 청년이 막았어. 대신 그 청년이 화상을 입었지. 내게는 생명의 은인이야."
"야~아, 저희도 당시 여기서 신문과 텔레비죤을 통해 소식 다 들었습니다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폭탄을 던진 사람이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어린 학생이 오케 그런 일을…."
"반공 정신이 강한 학생인 모양이야."
"아니, 민족이 화합하고 평화롭게 살자는 오마니 말씀과 반공정신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전시도 아니고 오케 어린 학생이…. 여기선 그런 일은 상상도 못합니다."
"…."
"이제 남조선에도 못가신다면서요?"
"응, 그렇게 됐어."
"서울에 친정어머님, 시어머님 다 계시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오케 한단 말입니까?"
"…."
가슴이 아파온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설경이에게 말을 걸었다.
"설경아, 예전에 너 결혼하면 집에서 애만 키우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니 지금 얼마나 좋니."
"네,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젠 일 좀 해볼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그렇구나. 하기야 의성이도 커가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렴."
"네, 오마니."
설경이는 관광객 안내원을 그만두고 그동안은 집에서 아이만을 돌봐왔다. 그런데 이제는 의성이도 육아원에 잘 적응해 다니니 자기도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한다.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단다. 요즘은 북한에도 관광여행사가 여러 군데 생겼다며 자기도 오랫동안 외국인 관광객 안내원을 했던 경험을 살려 여행사를 차렸으면 좋겠단다.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니 분명히 성공하리라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통일은 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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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이네 집을 떠나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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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이 가족과 작별을 하며. ⓒ 신은미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집을 나섰다. 2013년 8월 처음 설경이네 집을 방문하고 떠나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는 만남의 기쁨보단 헤어짐의 슬픔으로 가슴이 꽉 막혀버린 채 집을 나섰다. 설경이를 꼭 다시 찾아 오리라는 마음 속 다짐과 함께 분단된 조국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러나 오늘은 떠나는 순간에도 왠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내게 있어서 통일이란 별것 아니다. 언제든 보고싶은 사람 만나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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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용호 운전기사를 위한 저녁식사. ⓒ 신은미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지시라"며 설경이네 집으로 함께 들어가기를 끝내 거절한 리용호 운전기사가 오랜 시간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맙고 미안하다. 리용호 운전기사에게 오로지 그만을 위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안내를 부탁했다. 그의 아내가 요리사인지라 역시 식당 선택도 훌륭하고 주문한 음식들도 깔끔하다. 옆에서 남편이 음식을 차례대로 맛보며 연신 "맛있네, 맛있어" 감탄한다.
그런데 나는 음식이 눈에도 입에도 안 들어 온다. 그저 눈앞에 의성이만 아른거린다. 헤어진 지 몇 시간도 채 안 됐는데 말이다. 모두들 함께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이내 나의 뱃속을 가득 채워 버렸다.
내일도 행복한 일정의 연속이다. 둘째 딸 설향이네 집에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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