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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친+딩댕동=칭챙총? 여전히 유감스럽다

[주장] 뮤지컬 <아마데우스> 배우의 인종차별 발언, 해명보다 더 중요한 것

16.03.22 16:05최종업데이트16.03.2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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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의 발단 뮤지컬 <아마데우스>의 통역 스태프로 추정되는 인물이 전체공개를 통해 18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해당 포스팅 중 '칭챙총'에 대한 부분이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현재는 삭제된 상태로 원문과의 대조가 불가능했다. 마스트 측은 "삭제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 페이스북


뮤지컬 <아마데우스>의 내한 공연에 안토니오 살리에리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로랑 방이 팬들 사이에서 구설에 올랐다. 지난 18일 늦은 오후, 뮤지컬 <아마데우스>의 통역 스태프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해당 스태프는 로랑 방이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로 '칭챙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칭챙총'은 서구 사회에서 동양인을 비하할 때 사용되는 어휘이다.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말은 아니지만, 인종차별 어휘라는 점 때문에 국내·외에서 몇 차례 논란이 됐다. 가수 지드래곤과 축구선수 이청용도 해당 단어를 들은 적이 있고, 한 프로게이머는 이 단어를 자신의 닉네임으로 사용했다가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논란의 시작, 페이스북

▲ 배우 로랑 방 뮤지컬 <아마데우스> 프렌치 오리지널 내한 공연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로랑 방의 프로필 사진.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해당 어휘가 논란이 되자, 배우 로랑 방은 19일 오전 2시경, 자신의 SNS에 인종 비하 표현인 줄 몰랐다고 해명 글을 남겼다. 처음 발단이 된 글을 포스팅한 스태프 역시 "그러한 의도로 사용한 것도 아니"라며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논란은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번지고 말았다. '친친(tching-tching)'이라는 잔을 부딪치는 소리에 '딩댕동(Ding Dang Dong)'이라는 종소리를 합성하여 '칭챙총'을 사용했다는 그의 해명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반발이 하나, 1975년생 프랑스 배우가 지난 평생 이 단어를 사용했음에도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논란이 또 하나였다. 지난 주말(19~20일) 내내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 로랑 방 배우의 해명 논란이 일어난 후, 배우 로랑 방이 19일 오전 2시께 남긴 해명글과 이를 해석한 텍스트가 함께 온라인에 유통되고 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측 관계자는 "해당 게시글의 원문은 영문만 있었고, 아래 해석은 이번 사건으로 격앙된 팬이 한 것 같다"라며 "영문 뉘앙스는 훨씬 더 공손하다"고 해명했다. ⓒ Laurent Ban


해당 배우의 글과 스태프의 글 모두 원문은 삭제된 상태이고, 스크린샷 이미지만 SNS에 유통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21일 오후 6시경 마스트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입장을 들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팬들에게 상처를 준 점은 죄송하다"면서도 "로랑 방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로랑 방은 뮤지컬 <아마데우스> 출연진 중 아시아계 팬이 많은 배우이며, 그 사실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며 "그런 사람이 인종비하적 표현을 썼을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스태프의 게시글이나 배우의 사과글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도 역시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로랑 방이 재차 '칭챙총' 단어를 사용했다는 의혹, 커뮤니티에 엔터테인먼트 타 관계자가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 역시 부인했다.

공식 입장 등 대응이 늦은 데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일찍 인지했으나, 배우와 소통해야 할 일이라 시간이 걸렸다"라며 "오늘(21일) 공연이 없는 날이라 배우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공식 입장은 늦어도 오늘 밤 중에라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마스트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오후 7시 18분,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입장을 전했다.

사과 이후에도 꺼지지 않은 불씨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공식 입장 오후 7시 18분, 마스트엔터테인먼트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입장이 올라온 이후 같은 내용의 공문이 <오마이뉴스>의 이메일로 오후 8시 20분경 도착했다. 해당 원문은 현재 트위터나 이를 기사화한 다른 언론사 뉴스를 제외하고는 확인할 수 없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공인이나 유명인들이 내뱉은 차별적 발언으로 인한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당 대표가 흑인 자원봉사자의 피부를 연탄색에 비유하는가 하면, 한 인디 뮤지션이 '자궁 냄새'나는 음악이 싫다고 발언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질 때마다, 발화 당사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해 왔다.

배우의 사과문과 마스트엔터테인먼트의 입장문을 종합해보면, 1975년생 프랑스 배우 로랑 방은 '칭챙총'이 비하적 표현인 줄 몰랐으며, 평생 이 표현을 종종 사용했지만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스태프와 해당 어휘를 사용한 배우, 기획사까지 모두가 인종비하적 의도가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가 속해있는 프랑스 백인 남성 커뮤니티가 그만큼 차별에 둔감했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찌되었든 해당 발언은 팬들 앞에 공개되었고, 그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발화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실하게 사과를 하는 게 도리이다. '모르고 했다'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무지는 정상참작의 이유일 뿐, 유죄를 무죄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배우의 사과문은 여전히 삭제된 상태이고, 문제제기를 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은 배우로부터 블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우의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어떠한 포스팅도 올라와 있지 않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입장 역시 트위터에만 그것도 개인 팬 계정의 질문에 대한 멘션 형태로 남아 있다. 페이스북 계정에도, 공식 홈페이지에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배우와 회사의 사과 이후에도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것은 당사자들의 이 같은 진정성 없는 태도 때문이다.

이번 문제제기에 대해 너무 예민한 반응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노예해방, 보통선거, 성평등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것 역시 예민한 반응이었다. 바로 이 예민함이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된다. 평등한 사회에서의 농담과 불평등한 사회에서의 농담은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무대를 찾은 배우가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앞에 두고 한 농담은 당사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온당한 반응이다.

인류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문화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방향으로 자라왔다. 연극이나 뮤지컬도 마찬가지이다. 성소수자, 계급, 분배, 노동, 여성인권 등 수많은 현안을 무대에 직·간접적으로 반영했다. 관객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가해자를 비판하고 피해자를 위로했다. 문화가 위대한 이유는 현실보다 더 나은 현실을 상상하고 꿈꾸게끔 하는, 인류 문명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그 문화를 전파하는 일선에 있는 게 배우라는 직업 아닌가. 그가 무대에서 팬들 앞에 정식으로 사과하기를, 그리고 그에게 실망한 팬들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로 앞으로 속죄하기를 바라는 게 그렇게까지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 뮤지컬 <아마데우스> 포스터 지난 3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하여 오는 4월 24일까지 공연될 예정인 뮤지컬 <아마데우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첫 내한 공연 일정을 소화 중이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사족으로, SNS는 사적 밀실과 공적 광장이 혼합된 공간이다. 전체공개로, 그것도 해쉬태그까지 꼼꼼하게 걸어서 포스팅한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유를 '전제'로 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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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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