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년 10월 민가협 회원들이 안기부 앞에서 항의하고 있는 장면 ⓒ <한겨레21> 1994년 11월 17일자 이미지 캡쳐
추광규
안기부에 강제로 연행된 후 불법구금상태에서 17일간 고문받아 김삼석씨는 93년 안기부 연행과 고문 등 불법적 수사에 대해 지난 2014년 4월 법원에 제출한 재심이유서를 통해 "9월8일 정오 경, 저는 집에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저지 문제'에 대한 원고를 쓰던 중 안기부 수사관 10여명에게 불법 연행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집 앞에서 봉고차에 실렸는데 차 안에서는 고개를 들면 구둣발과 주먹질이 날아왔다.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 연행되자마자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는 17일간 구타와 기합, 협박, 성추행,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계속해서 "연행 뒤 3, 4일간 시간 날짜 개념을 잊은 채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으며 구타와 원산폭격, 서서 무릎 쪼그리기와 같은 가혹행위를 수십 회에 걸쳐 당하며 유도신문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면서, "목욕을 시킨다며 구타당한 왼쪽 가슴의 심한 통증을 가라앉히는 샤워를 하루에도 몇 번씩 했고, 협조 않으면 임신 8개월인 아내를 연행 조사하겠다는 협박을 계속 했다"고 주장을 이어갔다.
김 씨는 "그 시간에 다른 방에 있던 제 여동생에게 수사관들은 '머리를 잡고 벽에 부딪치게 하거나 뺨을 수없이 때리고, 변호인 접견 뒤에는 대화내용을 다 진술하라고 닦달하면서 잠을 재우지 않았다'고 한다"면서, "또 조사 중에 '이거 안 되겠구만. 다른 방으로 옮겨 옷 벗겨야 되겠구만. 인간 이하 대접을 받아볼래'하는 성적 모욕을 심하게 당하였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94년 2월 하순 1심에서 검찰은 15년을 구형했다. 1심 법원은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여동생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6개월 만에 풀려났다"면서,"'여간첩'을 만들어 놓고 풀어 준 우스운 상황이다. 탄원에 참가한 국내외 특히, 1만8천여 오사카 재일동포들의 서명용지가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삼석씨는 계속해서 "94년 7월7일 2심에서 저는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이 선고되었다. 94년 10월25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사흘 뒤 안기부 프락치 백흥용은 94년 10월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김삼석 남매간첩사건을 조작하는 데 자신이 개입했다며 프락치 상부선인 김성훈 안기부 과장, 윤동환 수사관을 촬영한 녹화테이프를 공개했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김 씨는 이어 "94년 10월 말 국내에서 민변의 이기욱, 이덕우 변호사가 베를린에 가서 진상조사를 하고 난 뒤 대한변호사협회가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95년 1월 국회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권영해 안기부 부장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부영, 유준상 의원에게 백흥용이 안기부 요원이었음을 인정했다", "백흥용이 안기부 프락치라는 것을 안기부장이 인정했는데도 저는 97년 9월 30일 출소하기까지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수형시절 초기에 저는 목, 허리와 꼬리뼈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4년 20일을 억울하게 0.75평 감옥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23년 만에 이루어진 재심... 재판부는 남매간첩 사건 어떻게 판단했나?김삼석 남매의 재심사건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1부(이승련 부장판사)는 25일 "안기부의 가혹행위 등을 이유로 재심이 개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닌, 영장이 조금 늦게 발부된 사건"이라면서, "체포영장 집행과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과정에서 수사기간의 잘못이 있기 때문에 재심이 개시된 것"이라며 재심사유를 먼저 밝혔다.
이어 "체포영장이 늦게 발부돼 2일 7시간 동안 불법 구금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지적한 후 "다만 피고인들이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을 알고 접근해 단체 관계자에게 수차례 돈을 받았고 한통련 활동 포섭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삼석씨가 재심을 신청하면서 내세운 안기부의 간첩조작이라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심리를 하지 않고 다만 2일 7시간 이루어진 불법 구금이라는 절차적 문제만을 재심의 사유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국보법에 대해서도 위헌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 ▲<한겨레21> 1994년 11월 17일자 이미지 캡쳐
추광규
재판부는 "한통련은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에 의해 조성돼 반국가단체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이는 현행 판례에서 다시 재판해도 무죄라고 할 수 없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북한 공작지도원과 접촉해 지령을 받았다는 회합·통신죄와 공작지도원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는 내용의 특수잠입죄, PC통신 등에서 입수한 군사 관련 내용을 수집했다는 이유로 적용된 국가기밀 탐지·수집 혐의 등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여동생 은주씨에 대해서도 울릉도 간첩단 사건 재일본총책으로 불리던 이좌영·권용부씨와 만나 이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점과 회합·통신죄 일부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적동조죄와 편의제공 혐의에 대해서는 각각 증거불충분과 국가안보에 실질적 위험이 없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김삼석 "재심 재판부 권력층에 눈치보기식 판결"김삼석씨는 "저에게 덧씌워진 남매간첩이라는 굴레가 서울고법 형사1부에서 벗겨졌다"면서도, "재판부가 권력층에 눈치보기식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동안 지난해 12월과 1월 선고가 각각 예정되어 있었는데 연기가 된 것은 이 같은 의심을 짙게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은 민중총궐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하기 부담스러워 선고를 미룬 것으로 생각하고 지난 1월 선고기일의 경우에는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이 자신들이 만든 사건이 무죄가 나오면 부담이 되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한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김씨의 아내 윤미향(정대협 상임대표)씨는 선고 당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이 엄혹한 시기에 이나마도 중요한 사항에 대해 일부 무죄를 다시 받아냈지만 우리 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며 자신들 부부의 심경을 피력했다.
이어 "판사 자신도 판결문의 논리가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을 알까?"라고 따져 물은 뒤 "기본적으로 재심이 받아들여진 것이 불법구금 불법감금 그것도 48시간+7시간에다가 불법가혹행위로 인해 재심이 받아들여졌다 했다"고 말했다.
윤미향씨는 계속해서 "<청년과 군대> 일본어판 출판(1992년 출판) 인세로 받은 오십만 엔을 금품수수로 문제 삼는다"면서, "한통련이 반국가단체인지도 모르고 우연히 동생이랑 일본에 여행 갔다가 오사카 서점에 있는 민족시보라는 신문을 보고 이런 단체가 있구나 해서 찾아 갔는데 판사는 피고들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피고들이 반국가단체임을 알고 회합했다고 한다"고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공적인 직책으로 사적인 문제에는 숨죽이며 참아 왔던 나 그래서 때로는 남편에게 딸에게 무책임하고 방관자였던 나를 자책하며 오늘을 사적인 윤미향의 모습으로 지내보고자 한다"면서, "나는 언제쯤이면 나 그대로의 윤미향으로 자유롭게 해방 될 수 있을까?"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공유하기
'93년 남매간첩사건'... 재심 재판부 일부 유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