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

[리뷰]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등록 2016.04.04 15:20수정 2016.04.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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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포스터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포스터 ⓒ 한국i문화사업단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지난해 말부터 열린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전이 끝났다. 모네, 고갱, 고흐 등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를 포함해 인상주의 화가 36명의 작품 70여 점을 멀리 유럽에서 들여와 벌인 전시다. 휴일이면 미술관 내부 가득 사람들이 들어찰 만큼 큰 인기를 누렸던 전시는 지난 4월 3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어쩌면 인상주의는 현대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회화 사조일지 모른다. 르네상스 이후 주류를 이루었던 고전주의 화풍에 반해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추구했던 인상주의는 회화의 발전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사조다.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해 인상주의에 속하는 유명한 화가만도 여럿이고 그들이 낳은 명화는 사회 곳곳에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두드러진 명작 몇 편 가져다 놓지 않은 이번 전시에 한가람디지털미술관이 꽉꽉 들어찬 데는 이런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상주의는 19세기 중엽 이후 기존 화풍에서 주류로 꼽히던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에 반해 새롭게 등장한 사조다. 1847년 미술평론가 루이 르루아가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를 혹평한 데서 비롯됐는데 오늘에 이르러 모네는 알아도 루이 르루아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인상주의 사조,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전시

이번 전시는 화가 개개인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고 즐기는 전시라기보다는 인상주의라는 사조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전시에 가깝다. 제목인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가 가리키는 것처럼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를 모아놓고 그로부터 인상주의가 무엇이며 회화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돌아보는 전시라 할 수 있다.

'Ⅰ.인상주의의 선구자', 'Ⅱ.프랑스 인상주의', 'Ⅲ.후기 인상주의', 'Ⅳ.신인상주의', 'Ⅴ.독일 인상주의', 'Ⅵ.나비파와 야수파'의 여섯 구획으로 나눠진 이번 전시에는 초기 인상주의부터 신 인상주의에 이르는 인상주의 사조의 발전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풍경을 제 나름의 시각에서 화폭으로 옮긴 초기 인상주의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주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물론 100여 년 뒤 발흥한 독일 인상주의, 점묘법을 활용한 신 인상주의 등 한 화조에 속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색채의 작품이 이어진다.

이렇다 할 유명한 작품이 많지 않은 탓에 작품의 수준과 전해지는 감흥에서 한껏 눈이 높아진 현대 관람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는 있겠으나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이해하기엔 충분한 전시라 하겠다. 다만 고흐를 비롯 유명 화가의 걸작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전시를 찾았다면 실망하고 발길을 돌렸을 가능성이 적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

전시 커미셔너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순주 박사는 인상주의를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로 정의했다. 인상주의를 가리켜 '빛의 회화'라고도 하거니와 인상주의가 밝은 색채를 통해 자연의 현상을 포착해냈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인상주의가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가져온 사조라는 데 깊이 공감했다. 단순히 화가들이 밖으로 나가 빛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다는 사실을 넘어 인상주의가 과거의 무지와 압제로부터 회화를 독립시켰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감과 용기가 발전함에 따라 화가들이 작업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중세 신 중심 세계관에서 탈피해 화가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게 된 자연스런 변화가 회화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발전으로 이어졌는지를 알게 된다면 이번 전시의 목적은 달성된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인상주의가 현대인에게 남긴 교훈은 '가슴에 금기를 새기지 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네의 작품 <아스파라거스 다발>(1880)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번 전시는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가리켜 캔버스 중앙에 별로 대단치도 않은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배치했다는 것 자체가 과거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인상주의의 시도였다고 말한다. 마네가 캔버스 중앙에 대단치 않은 일상적 물건을 그린 첫 번째 화가인 건 물론 아니지만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에 맞서 일상적인 것을 통해 예술에 이르고자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본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됐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풍경화를 통해 인상주의 사조 전체를 바라보는 첫 번째 시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겠다.

다음은 각 구획별로 전시된 작가들.

Ⅰ.인상주의의 선구자 - 부댕, 코로, 용킨트, 쿠르베, 도비니, 드라 페나
Ⅱ.프랑스 인상주의 - 카유보트,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모리조, 시슬리, 기요맹, 시다네
Ⅲ.후기 인상주의 - 세잔, 반 고흐, 고갱, 툴루즈 로트렉
Ⅳ.신인상주의 - 쇠라, 시낙, 크로스, 핀치, 루스, 리셀베르그
Ⅴ.독일 인상주의 - 코린트, 리버만, 슬레포크트, 폰 우데
Ⅵ.나비파와 야수파 - 보나르, 마티스, 뷔야르, 모리스 드니, 반 동겐, 블라맹크, 마르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경제 #한국I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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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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