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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6시 울산 북구 농소1동 선거사무소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던 울산 북구 무소속 윤종오 후보와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박석철
울산에서 선거혁명이 일어났다. 4년 전 19대 총선과 2년 전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과 시장, 구청장, 시의원을 독식하며 형성된 새누리당 왕국이 일거에 무너진 것이다.
울산 6개 지역구 중 새누리당은 3석을 내줬다. 중구에서 정갑윤 후보만이 일여다야 구도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당선됐고, 남구갑 이채익, 남구을 박맹우 후보는 개표가 진행된 한 때 무소속·더민주 후보에게 선두자리를 내주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각종 의혹이 불거진 일부 후보를 '친박'이라는 이유로 공천하는 모습을 보이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강해 이 같은 여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과거처럼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표로 심판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징후 울산 곳곳에서 감지돼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징후가 선거를 전후해 곳곳에서 나타났다.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그 정도는 더 심각했다. 노동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노동개혁 강행과 재벌 대기업의 횡포에 표로 응답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현대중공업이 자리 잡은 동구는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58.88%의 높은 득표율로 32.75%를 얻는 데 그친 새누리당 안효대 후보에 26.13%p 차로 압승했다. 새누리당 대표까지 가세하며 '종북 공세'를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또한 김종훈 후보의 표를 분산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국민의당 이연희 후보(5.45%), 민주당 유성용 후보(2.90%)의 득표율은 기대에 못미쳤다.
북구에서도 선거 막판 무소속 윤종오 후보 측의 검찰 압수수색 등으로 공안정국이 형성됐지만 윤 후보는 61.5%의 높은 득표율로, 38.5%에 그친 새누리당 윤두환 후보를 크게 앞섰다.
20대 총선 결과는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들의 심판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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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울산 동구 전하동 선거사무소에서 방송사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울산 동구 무소속 김종훈 후보와 가족, 지지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 박석철
이번 총선 결과가 비단 노동자들의 표심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수성향이 강한 울주군에서 확인시켜줬다. 울주군도 친박 공천 논란 속에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선 강길부 후보가 40.27%의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 김두겸(28.27%) 후보를 압도했다. 여권분열로 한때 기대를 모았던 더민주 정찬모 후보는 22.19%를 얻었다. 국민의당 권중건 후보는 7.40%, 무소속 전상환 후보는 1.85%를 얻었다.
한편 남구갑에서는 압도적 우세라는 지난 7일의 방송사 여론조사를 비웃듯 새누리당 이채익 후보가 더민주 심규명 후보에게 한 때 1위를 빼앗기는 등 고전했다.
남구을에서도 비록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가 42.97%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무소속 송철호 후보(40.64%)에게 한때 뒤지며 진땀나는 승부를 펼쳤다. 7전 8기로 박맹우 후보에게 설욕을 벼르던 송철호 후보는 또 한 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더민주 임동욱(16.37%) 후보의 가세가 없었다면 사실상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가 패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노동자와 시민들이 화가 났다는 징조는 13일 매시간 공표된 투표율에서도 확인됐다. 울산의 전체 투표율은 59.2%로 전국 평균 58.0% 보다 높은 데다 19대 총선 55.7%보다는 3.5%P 높았다. 특히 동구(64%)와 북구(62.9%)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은 화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투표장으로 달려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또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울산 비례대표 득표율은 36.69%에 그쳐 19대 때의 49.46%에 크게 못 미쳤다.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가 동구와 북구 등 노동자가 많이 사는 지역만이 아닌, 울산 전역에서 시민들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으로 본 정치권과 노동계의 과제
이에 따라 이제 새누리당은 시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왜 새누리당을 외면했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전국 시도에서는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친환경무상급식을 울산만 '포퓰리즘' 등을 내세워 반대하면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는 타 시도보다 교육비가 높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울산의 학부모들이 새누리당 심판에 한몫했다는 여론이 있다. (관련기사 : '무상급식 축소' 울산 동구청장, 두 달 밥값 1360만원)
또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변이 원전으로 둘러싸인 울산의 핵 안전 문제에 있어서도, 새누리당의 '찬성' 입장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관련기사 : 울산시민 만인 선언 "노후원전 불안해서 못살겠다")
노동계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서 친 노동 후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결집해 선거 결과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서 선거기간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연대를 막고 나서면서 시민사회의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노동계 일각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진보진영 후보와 더민주 후보의 야권단일화를 반대하면서 일부 지역구에서 더민주 후보에게 '백기투항'을 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위기감에 야권연대의 절심함을 느낀 더민주의 북구 이상헌 후보와 동구 이수영 후보가 '대의'를 들어 후보직을 사퇴하며 대승적 차원의 야권단일화를 이뤘지만, 일부 지역구의 더민주 후보는 선거운동 막판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노총의 이 같은 행보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한때 야권연대에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결국 노동계가 정부의 노동개혁 등을 두고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절박함'을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입장과 다른 야당과는 절대 연대가 안 된다'고 선을 그으면서 그 절박함이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엔 다소 미흡하더라도 지향하는 길이 같다면 손을 맞잡고 함께 가는 유연함이 필요해 보인다.
선거는 계속된다. 선거결과에 따라 노동자의 삶도 바뀔 수 있다. 내년이면 대통령선거가, 그다음 해엔 지방선거가, 다시 4년 뒤면 21대 총선이 기다린다. 정치권과 노동계의 향후 행보에 따라 또다른 선거혁명이 일어날 것인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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