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새누리당, 울산시민이 심판했다

[분석] '작대기만 꽂으면 당선'한다고 여기더니... 새누리당, 울산서 참패

등록 2016.04.14 14:50수정 2016.04.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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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3일 오후 6시 울산 북구 농소1동 선거사무소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던 울산 북구 무소속 윤종오 후보와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13일 오후 6시 울산 북구 농소1동 선거사무소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던 울산 북구 무소속 윤종오 후보와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박석철


울산에서 선거혁명이 일어났다. 4년 전 19대 총선과 2년 전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과 시장, 구청장, 시의원을 독식하며 형성된 새누리당 왕국이 일거에 무너진 것이다.

울산 6개 지역구 중 새누리당은 3석을 내줬다. 중구에서 정갑윤 후보만이 일여다야 구도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당선됐고, 남구갑 이채익, 남구을 박맹우 후보는 개표가 진행된 한 때 무소속·더민주 후보에게 선두자리를 내주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각종 의혹이 불거진 일부 후보를 '친박'이라는 이유로 공천하는 모습을 보이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강해 이 같은 여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과거처럼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표로 심판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징후 울산 곳곳에서 감지돼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징후가 선거를 전후해 곳곳에서 나타났다.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그 정도는 더 심각했다. 노동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노동개혁 강행과 재벌 대기업의 횡포에 표로 응답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현대중공업이 자리 잡은 동구는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58.88%의 높은 득표율로 32.75%를 얻는 데 그친 새누리당 안효대 후보에 26.13%p 차로 압승했다. 새누리당 대표까지 가세하며 '종북 공세'를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또한 김종훈 후보의 표를 분산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국민의당 이연희 후보(5.45%), 민주당 유성용 후보(2.90%)의 득표율은 기대에 못미쳤다.

북구에서도 선거 막판 무소속 윤종오 후보 측의 검찰 압수수색 등으로 공안정국이 형성됐지만 윤 후보는 61.5%의 높은 득표율로, 38.5%에 그친 새누리당 윤두환 후보를 크게 앞섰다.


20대 총선 결과는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들의 심판이기도

a  13일 오후, 울산 동구 전하동 선거사무소에서 방송사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울산 동구 무소속 김종훈 후보와 가족, 지지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13일 오후, 울산 동구 전하동 선거사무소에서 방송사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울산 동구 무소속 김종훈 후보와 가족, 지지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 박석철


이번 총선 결과가 비단 노동자들의 표심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수성향이 강한 울주군에서 확인시켜줬다. 울주군도 친박 공천 논란 속에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선 강길부 후보가 40.27%의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 김두겸(28.27%) 후보를 압도했다. 여권분열로 한때 기대를 모았던 더민주 정찬모 후보는 22.19%를 얻었다. 국민의당 권중건 후보는 7.40%, 무소속 전상환 후보는 1.85%를 얻었다.


한편 남구갑에서는 압도적 우세라는 지난 7일의 방송사 여론조사를 비웃듯  새누리당 이채익 후보가 더민주 심규명 후보에게 한 때 1위를 빼앗기는 등 고전했다.

남구을에서도 비록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가 42.97%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무소속 송철호 후보(40.64%)에게 한때 뒤지며 진땀나는 승부를 펼쳤다. 7전 8기로 박맹우 후보에게 설욕을 벼르던 송철호 후보는 또 한 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더민주 임동욱(16.37%) 후보의 가세가 없었다면 사실상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가 패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노동자와 시민들이 화가 났다는 징조는 13일 매시간 공표된 투표율에서도 확인됐다. 울산의 전체 투표율은 59.2%로 전국 평균 58.0% 보다 높은 데다 19대 총선 55.7%보다는 3.5%P 높았다. 특히 동구(64%)와 북구(62.9%)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은 화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투표장으로 달려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또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울산 비례대표 득표율은 36.69%에 그쳐 19대 때의 49.46%에 크게 못 미쳤다.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가 동구와 북구 등 노동자가 많이 사는 지역만이 아닌, 울산 전역에서 시민들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으로 본 정치권과 노동계의 과제

이에 따라 이제 새누리당은 시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왜 새누리당을 외면했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전국 시도에서는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친환경무상급식을 울산만 '포퓰리즘' 등을 내세워 반대하면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는 타 시도보다 교육비가 높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울산의 학부모들이 새누리당 심판에 한몫했다는 여론이 있다. (관련기사 : '무상급식 축소' 울산 동구청장, 두 달 밥값 1360만원)

또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변이 원전으로 둘러싸인 울산의 핵 안전 문제에 있어서도, 새누리당의 '찬성' 입장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관련기사 : 울산시민 만인 선언 "노후원전 불안해서 못살겠다")

노동계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서 친 노동 후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결집해 선거 결과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서 선거기간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연대를 막고 나서면서 시민사회의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노동계 일각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진보진영 후보와 더민주 후보의 야권단일화를 반대하면서 일부 지역구에서 더민주 후보에게 '백기투항'을 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위기감에 야권연대의 절심함을 느낀 더민주의 북구 이상헌 후보와 동구 이수영 후보가 '대의'를 들어 후보직을 사퇴하며 대승적 차원의 야권단일화를 이뤘지만, 일부 지역구의 더민주 후보는 선거운동 막판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노총의 이 같은 행보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한때 야권연대에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결국 노동계가 정부의 노동개혁 등을 두고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절박함'을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입장과 다른 야당과는 절대 연대가 안 된다'고 선을 그으면서 그 절박함이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엔 다소 미흡하더라도 지향하는 길이 같다면 손을 맞잡고 함께 가는 유연함이 필요해 보인다.

선거는 계속된다. 선거결과에 따라 노동자의 삶도 바뀔 수 있다. 내년이면 대통령선거가, 그다음 해엔 지방선거가, 다시 4년 뒤면 21대 총선이 기다린다. 정치권과 노동계의 향후 행보에 따라 또다른 선거혁명이 일어날 것인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울산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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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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