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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벤져스를 이해하는 엉뚱한 시선, <캡틴 아메리카3 : 시빌 워>

16.05.25 16:09최종업데이트16.05.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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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과 갈등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에는 이해가 가는 면과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이언맨의 입장과 행동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과 되지 않는 부분이 공존한다. 그래서 관객은 쉽게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분열은 시작됐다.'

꽤나 끌리는 문구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아래 <시빌 워>)는 보는 관객들까지도 누구누구 편이냐를 두고 토론을 벌이게 한다. 하지만 가치판단이란 마냥 옳거나 그르다는 명제로 귀결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영화 자체가 가진 과도기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시빌 워>는 영화가 끝난 후에 또다시 시작되는 영화였다.

한계에 부딪힌 슈퍼히어로, 그들도 결국 인간

▲ 스티브와 버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캡틴은 과거와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인물 버키를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언맨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유능하지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순 없는 능력자들은 각자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힌다. 최선을 다하지만, 누군가 죽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회의감을 피할 수 없다. 드디어 그들은 악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면면을 맞닥트리게 됐다.

여기서 캡틴 아메리카는 자기 행동의 과실까지 껴안으며 책임을 묵묵히 진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따른 이해관계와 그로 인해 받는 비난을 감내한다. 그에 비해 아이언맨은 자기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다가 섣부른 판단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행동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히 바라보고 관철한다는 데서 캡틴과 아이언맨이 걷는 길은 갈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이 맞붙는 마지막 장면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모든 오해를 풀기 위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추적해가는 캡틴, 자신의 근원적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게 된 아이언맨. 그 둘의 입장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캡틴은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인물인 버키를 위해, 사단의 원인인 히드라를 쫓기 위해 아이언맨을 잃을 각오로 가시밭을 걷는다. 아이언맨 또한 자신이 이어온 양심의 가책과 상실이라는 고통의 뿌리 사이에서 수심에 젖는다.

하지만 정작 어벤져스 일원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어벤져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에 따른 비난 여론까지도 받아내며 인류의 위기에 꾸준히 맞섰다. 그에 비한다면 각국의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무엇을 했을까. 영화에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미미하다. 심지어 소코비아 사태, 뉴욕 사태 등에서도 전면적 방어와 수습은 어벤져스의 몫이었다. 쉴드의 지원을 들여 민간인 구조와 재난 관리도 어벤져스가 담당했다. 사태 수습을 명령하고 지휘하는 것도 캡틴을 위시한 어벤져스의 몫이었다.

어찌 보면 전 세계적으로 혼란이 가중됐다는 비판은 어벤져스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을 듯하다. 그 혼돈을 관리하고, 어벤져스와 논의하고 협업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각 정부나 UN 등 국제기구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어벤져스의 문제는 어벤져스만의 문제인가

실제로 영화상에서 이들이 하는 대처는 행정 편의적이고 강압적인 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설령 어벤져스가 통제하기 어려운 능력자들의 모임이라 해도 협상 테이블을 제대로 구성해야 하지 않았나. 하지만 정부 측 인사들은 하나같이 충분한 대화 없는 질책만 이어갔다.

대화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 어벤져스 원내대표라 볼 수 있는 아이언맨의 실수가 이어졌다. 대내·외 협상에 있어 어벤져스를 대변하는 아이언맨은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는 장면을 기억해보면) 자신의 판단을 일방적으로 미리 협의하는 미숙함을 보였다. 그래서 공동 대표인 캡틴과 의견 조율 자체를 뒤늦게야 시도해, 협상 결렬과 어벤져스 와해라는 아픔을 겪었다.

무엇보다 어벤져스에 대해 소위 '관리'를 해야 한다면 행정적 차원에서 그치면 안 됐다. 이들이 능력자라고 해서 완전한 인간인 건 아니었다. 예컨대 아이언맨은 뉴욕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로마노프는 요원 양성 당시에 대한 상처가 있고, 캡틴도 멘탈이 단단해 보이지만 PTSD를 앓는 상해군인이다. 영화 초입에 끝없는 회의감과 날 선 여론에 괴로워하는 그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들에 대한 정신의학적 상담이 전혀 진행된 바 없다는 게 놀라웠다. 어벤져스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건 그들 자체의 막강한 힘뿐만 아니라 이들이 그런 자신을 컨트롤할 것이란 합리적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심리적 불안 요소를 최소화하고, 능력자들 고유의 정의감과 유대를 바탕으로 최대한 협업하는 제스쳐를 취해야 했다. 그렇게 불신한다면서도 정부나 국제기구는 어떤 종류의 도움이나 협력을 시도해볼 수 없었던 걸까. 마치 모든 책임이 어벤져스 개개인과 그 집단에 있다는 듯 시선이 쏠리면서 막상 여러 주체에 대한 책임 소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게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블랙팬서는 굉장히 히어로이면서도 능숙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개인적 복수를 쫓기도 하지만 끝내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피의자를 죽이지 않는다.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벌을 받아야 한다는 멋진 대사로 피의자를 체포했고 피의자로 오인했던 버키를 도와주고 특수부대가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블랙팬서의 강단을 보며 여타 책임자들보다 그가 왕의 그릇으로 충분한 능력자, 꽤 멋진 히어로라는 인상을 받았다.

<시빌 워>의 큰 그림을 보며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어찌 보면 복잡한 내용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는데도 벌써 850만 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이러한 대중의 욕망에는 분명 일상에서 벗어나 문제를 적극적으로, 또한 즉각적으로 해결하는 히어로들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진정한 능력자는 뛰어난 자가 아니라 무력함을 무릅쓰는 자라는 걸 어벤져스와 여타 등장인물들이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아가 그들 개개인에게 문제를 맡겨버리면서 그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짚어내는 건 불편한 일일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히어로가 나올 수 있는 사회는 히어로 혼자 동분서주하지 않는 곳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850만 명이 선택한 영화. 이 영화 내 갈등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관객의 시빌 워는 <시빌 워>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한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어벤져스 시빌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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