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회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5월 17일 서울 종로구 김앤장법률사무소 앞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방해와 옥시 불법행위 은폐의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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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장애를 얻은 것이 알려지면서 여원이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의 호흡기를 안전하게 적셔주기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가습기 살인제'로 사용돼 되레 사랑하는 자식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또 한 번 가슴을 후벼 팠다.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 절통하고 애통한 비극과 절망은 정말 어떻게 다 보상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 세상은 대명천지가 아니라 암흑천지였다.
여원이는 2000년도에 사망했으니 가습기 살균제 사고 시점을 앞으로 많이 당겨 잡을 수 있는 중요 사망자다. 게다가 최연소 사망자인 여원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은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겨울 3개월을 꼬박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것 말고 다른 변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100일을 갓 지난 갓난쟁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피해자 신청을 하였더니 질병관리본부에서 내린 결정은 4등급이었다.
4등급은 '가능성 거의 없음'이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니! 도대체 무얼 보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인가. 아이가 사망한 병원에서 보내온 자료와 인터뷰 자료에 담긴 그 엄연한 사실이 보이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병리적 현상과 결과를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인가. 겨우내 가습기 살균제를 투여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비극을 몸소 겪었는데, 멀쩡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호흡 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4일 만에 죽었는데, 얼마나 더 객관적이고 확고한 증거자료가 필요하단 말인가.
등급 판정은 흔히 폐 섬유화로 부르는 '소엽중심성 섬유화를 동반한 폐질환(아래 폐 섬유화)'(2014년 3월,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의심 접수사례 조사 결과 보고서 31~32쪽)을 기준으로 삼았다. 폐 섬유화가 명확하면 1등급, 폐 섬유화와 연관이 높으면 2등급, 폐 섬유화와 거리가 멀거나 관련 없으면 3, 4등급이다. 이런 기준으로 그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겨우 36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중에 1, 2등급은 168명이고, 3, 4등급은 186명, 판정 불가는 7명이었다. 3, 4등급은 조사 대상 중 51.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 사망자도 27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증상이 오로지, 확고하게,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균일하게 폐 섬유화 '한 가지 증상'으로만 드러난다고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폐 섬유화만이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 양상의 전부라 할 수 있는가. 우리 몸은 유기적이므로 폐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기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연령에 따라, 성별에 따라, 건강 상태에 따라, 사용 빈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폐 섬유화든, 폐출혈이든, 폐렴이든 이는 모두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사람의 폐 손상인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망가진 폐를 이식한 사람도 3등급을 받아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안은주씨), 사망하고 4등급을 받은 어떤 유가족은 폐 손상 사망자 등급이 원래 4등급이라 여기고 있다가 그 4등급이 '가능성 거의 없음' 등급임을 알고는 가슴에 원한을 쌓아가고 있다(최은총씨). 얼마나 많은 실질적인 피해자들이 어처구니없는 등급 판정으로 또다시 엄청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피해 증상을 단 한 가지 증상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다. 그것은 다분히 폭력적이고 차별적이다. 이렇게 협소한 판정 기준으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가해 기업의 면책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7월 31일, 옥시가 최종 배상안을 발표한 것처럼 가해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더 많은 배상금이 부과되기 전 서둘러 피해자들을 입막음하려는 이런 꼼수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여러 번 죽었으며 또 죽어간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와 장기가 망가져 죽고,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에 애통하여 죽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여 죽고, 부도덕한 기업의 발뺌과 무책임함에 죽고, 언론의 무관심에 죽고, 의사·교수들로 구성된 판정단에 의해 등급이 매겨져 죽고, 1, 2등급과 3, 4등급을 차별하고 분열시켜서 피해 규모와 배상 책임을 축소하려는 농간에 죽고, 더디고 더딘 우리 사회의 공감 능력에 거듭 죽는다. 이런 사상 최악의 생명 경시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도 왜 피해자들이 거듭해서 고통을 당하고 거듭해서 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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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이는 4등급짜리 피해자다. 나는 4등급짜리 피해자의 부모다. 그 훌륭한 의학적인 지식으로도 그 아픔을 판정할 수 없단 말인가. 판정한 자는 잔인하다. 그것은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반영이며 그렇게 손쉬운 판정으로 겪게 될 고통에 대해 무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3등급, 4등급을 매겨 질 낮은 한우 등급처럼 판정해도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수많은 아픔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내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다는 비극적 사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 조사를 전면 다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등급을 걷어 치워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때에 이뤄진 등급 판정을 백지화하고 다시 원점에서 광범위한 기준으로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피해자들을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기업의 책임을 묻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청문회든, 국정조사든, 특별법 제정이든, 단 한 명의 피해자도 남김없이 눈물을 닦아주려는 '공감'의 연대가 없으면 안 될 것이다. 진실로 '공감의 연대'가 없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디에서 그 소중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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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오마이뉴스 이슈취재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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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가 죽인 딸... 저는 '4등급'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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