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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 사는 흙수저라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노동자'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온해졌나③] 처음으로 희망버스에 올랐던 날, 나는 깨달았다

16.08.22 16:18최종업데이트16.08.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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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서 일하는 '조선소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배급 시네마달)이 오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시네마달은 ['노동자'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온해졌나]라는 기획 아래 기고문을 받았다. 그 세번째 순서로 노동당 청년학생위원장 용혜인의 기고문을 싣는다.

용혜인 노동당 청년학생위원장은 세월호 추모 침묵행진 '가만히 있으라' 제안자로서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DJ 그리고 20대 총선 노동당 비례대표후보였다. [편집자말]
2011년 6월 11일, 내 생애 '첫 데모'를 했다.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 가본 부산에서. 처음 경험해본 '데모'는 무시무시했다. 갑자기 벽 넘어 공장 안에서 사다리가 넘어오고,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위에 보세요!" "날아오는 거 끝까지 보세요!"라는 외침이 들렸고, 나는 용역들이 던진 음료수 가득 든 캔과 돌을 피했다. 그냥 정리해고로 인해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희망버스에 올랐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김진숙'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정리해고에 맞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싸움을 알았다.

희망버스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사실 청계천 옆 높은 건물 사무실에서 빵 하나를 입에 물고 야근하는 미래를 꿈꾸던 22살의 나는 희망버스에 오르기 전까지 정말로 '죽음으로 투쟁해야 하는 구시대는 끝났다'고 믿고 있었다. 구시대적인 학생운동이 아니라 '사회진출'을 통해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6월 11일 부산 영도에서 나는 내가 알고 있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21세기에 내가 경험한 '첫 데모'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보며 너무나도 당당한 사적폭력이 두려웠고, 7년 전 동료가 죽은 크레인 위에 또다시 올라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죽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만에 크레인 위에서 내려올 때까지 '희망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이야기했듯 정치적 성향, 성별, 나이까지 모든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하고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로 모였다. 함께 살기 위해 수 만 명이 모여들었던 희망버스는 불온했다. 먹을 것을 나누고, 함께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던 희망버스의 승객들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돈도 권력도 없는 이들을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에 불온한 사람들이었다. 정부는 경찰병력으로 이 불온함을 틀어막으려 했고, 언론은 이들에게 '절망버스'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이 불온함이 만들어낸 사회적 힘이 경찰의 물리력보다, 그리고 '절망버스'라는 낙인보다 강력했고,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 위에서 웃으며 내려왔다. 우리의 불온함이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낸 것이다.

김진숙은 살아 내려왔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이다. ⓒ 시네마달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김진숙을 크레인 위 하늘 끝으로 내몰았던 2011년 정리해고 이후 5년간 우리의 삶은 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비정규직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해고 그러니까 사람을 쓰고 갈아치우는 일은 더욱 쉬워졌고 빈번해졌다. 청년들은 일할 곳을 구하지 못해 시급이 더 싸고, 해고가 더 쉬운 알바노동을 전전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를 뒤흔드는 투쟁은커녕, 노동조합에 가입할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은 알바를 하다가 해고를 당해도, 산업재해를 당해도, 상사와 고객으로부터 모멸감을 느껴도 개인의 문제라며 체념한다. 하루 평균 6명의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에도, 생활고·취업난에 시달리던 청년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에도 우리는 더 이상 크게 충격 받지 않는다.

절망의 시대

#1. 취업을 준비하며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35살 A씨, 설을 앞두고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35살에 아직도 '취준생'이다보니 돌아오는 명절이 곤혹스럽다. 명절날 빈손으로 집에 가기엔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통장에는 돈이 부족하다. 결국 A씨는 마트에서 한우선물세트를 훔쳤다. 한우세트를 가방에 넣고 카트 가장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몇 개의 상품을 얹어 계산대에서는 한우세트를 제외한 다른 상품들만 계산하는 방법이었다. 한번 성공하자 A씨는 추석과 크리스마스에도 같은 방식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가져다 드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A씨는 선물세트가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직원에게 발각되어 불구속 입건되었다. 총 4차례에 거쳐 140만 원 상당의 선물세트를 훔친 혐의였다.

#2. 관악구에 위치한 한 고시원, 관리인은 지난달 방세를 내지 않은 30살 B씨의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은 열리지 않았고, 관리인이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B씨는 숨져있었다. 이불에 덮여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B씨는 청각장애아동 언어치료사로 일했지만 고시원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처지였다. 아버지에게 용돈도 받았지만 월 43만 원 고시원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했고, 보증금 100만 원도 이미 월세로 소진된 상태였다. 가족과는 2달전 통화가 마지막이었고, B씨의 휴대전화는 요금을 내지 못해 착신정지 상태였다. 부검 결과, 영양실조에 준하는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헬조선, 죽창, 흙수저…. 요새 유행하는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담론들에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미래는 달라지거나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확신, 바로 '절망'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힐링'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비정규직, 저임금, 해고, 빚, 무주택, 빈곤이 '정상화'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실존조차 포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지금, 우리는 고립된 개인이 되어 최소한의 삶의 조건마저 무너진 삶을 스스로 오롯이 책임져야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동안 '힐링상품'과 '자기개발서'를 소비하며 희망을 가져봤지만 이 사회 속에서 아무리 혼자 몸부림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된 것이다.

이 절망의 시대, 우리에게는 더 많은 불온함이 필요하다. 더 많은 경쟁과 낙오가 아닌, '인간다운 삶', '함께 사는 삶'과 같은 당연한 요구를 당당하고 더 크게 이야기하는 불온함이 필요하다. 혼자 하는 어떤 노력도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없는 지금,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조차 방기하고 있는 지금, 문제의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은 더 큰 연대와 더 큰 사회운동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세상에겐 불온한 도전일 것이다. 변화가 가능하다는 진짜 희망은 불온함을 통해 품을 수 있다. 그리고 2011년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힘과 요구로 모인 우리의 불온함이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낼 것이다.

모든 그림자들에 결국 해가 비출 것이다. ⓒ 시네마달



용혜인 그림자들의 섬 절망의 시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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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인간인 사회를 꿈꾸며, 발딛고 서있는 곳을 바꾸고자 합니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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