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의 초모 성과 곰파
양학용
왕궁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라네 모둠 아이들을 만났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으니 왕궁은 벌써 둘러보았고, 이제 시장에 엽서랑 과일이랑 사러 가는 길이란다. 오늘 저녁에는 과일을 먹으며 고국의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엽서 글을 쓰는 그들의 모습을 감상하게 될 모양이다.
다른 모둠 아이들을 보았냐고 서로에게 물어본다. 설산으로 둘러싸인 이 낮고 작은 하늘아래 그들은 또 어디를 걷고 있을까. 이 도시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길을 찾고 길을 잃고, 무언가를 사기 위해 서툰 흥정을 하고, 눈 밝은 여행자들을 만나 그리 중요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길게 나누기도 하겠지. 자신들만의 여행 이야기를 하나둘 쌓아가면서.
여행학교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일기 쓰기와 약속시간 엄수하기.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몇 달러씩의 벌금이 부가되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기부를 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여행을 즐기고 조직하는 것은 자유지만, 여행의 나날을 성찰하는 것은 의무라는 뜻이다.
오늘은 성찰의 또 한 단계로서 중간평가를 하는 날이다. 늘 그렇지만 프로그램은 간소하다. 여행 일정이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각자 자신의 여행을 성찰하는 글을 쓴 후에 모든 친구들 앞에서 한 명씩 낭독하고, 또한 경청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1시간이 넘게 방바닥에 일기장을 대고 끙끙대며 글을 쓴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목소리가 수줍게 떨린다. 여행 떠나와 11일 만에 전화통화했던 날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했다는 아이, 트레킹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마침내 고개정상에 선 순간 스스로가 그보다 더 자랑스러울 때가 없었다는 아이, 여행에서 돌아가면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갈 수 있을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던 아이…. 그리고 사고 없이 여기까지 여행해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던 나와 아내의 글.

▲ 라다크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같다.
김문중

▲ 빨래하고 카드하고 해먹에 누워 잠자고.
박솔지
그날 우리들의 글은 진솔했고 저마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의 깊이와 무게는 서로의 가슴을 울렸다. 글을 쓰는 사이에 자신이 처음 여행을 떠나왔던 이유를 기억해내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고, 길과 바람이 가슴에 새겨놓은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또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신이 생각지 못했거나 미처 글로 옮기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나누고 느끼고 생각하였다.
그날 밤 우리들의 시간은, 함께 여행했지만 각자 다르게 보고 듣고 느꼈을 것들을 공동의 경험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여행 12일째, 우리들은 여행의 굴곡진 계곡을 지나 깊고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고작 10일이 흘렀는데 일기장을 펴 첫 날의 내용을 보고는 너무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나 보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기쁨과 고통이 극적으로 함께 했다. 제일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것은 4박5일 트레킹이다. 매일 밤 '아, 여기를 벗어나게 해주세요. 눈을 뜨면 내 방 침대에서 고구마 냄새를 맡으며 일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나를 위로했다. (중략) 트레킹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인내와 무한 자신감, 끝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희망,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용기, 고통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준 동료들, 삼촌과 이모. 난 어쩌면 이런 것들을 바랐기에 트레킹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진실)"정호네 방으로 모두 모였다. 아이들이 글을 쓰고 있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글도 있었고, 나름 최선을 다한 글도 있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쓴 글, 그래서 울컥하게 만든 글도 있었다. 두 줄 혹은 다섯 줄 일기에서 한 쪽 글을 쓴 우리 정민이,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준 예인오빠, 트레킹에서 누구보다 고생한 진실이, 이 여행에 대한 걱정과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던 삼촌의 글, 삶의 무게감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이모의 글, 자신의 글을 읽는 자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새롭게 느끼고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것 같아, 좋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처음 인도는 어떤 곳이고 라다크는 어떤 곳일까 기대하며 여행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를 타면서 진짜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하루-이틀-사흘이 지나면서 점점 재미있어 지고 점점 여행 온 재미에 빠져드는 순간 트레킹을 갔다. 트레킹도 나쁘진 않았지만 조금 힘들고 아팠다. 하지만 재미도 있었다. 멋진 풍경과 계곡에서 노는 것과 트레킹하며 수다 하는 것과 텐트에서 형들과 자는 것 모두 다 즐거웠다. 당나귀와 말들도 우리와 똑같은 길을 잘 간다는 게 신기했다. 트레킹이 끝나서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좋은 건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는 거고, 아쉬운 것은 원래 가려고 했던 트레킹 코스를 못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다. 이제 고산지대에 적응되었으니 남은 여행을 재미있게 시작할 것이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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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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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마친 아이들 "샤워, 행복해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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