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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대표팀 차출 불응, V리그 출전 못할 수 있다

[진단] 배구협회와 KOVO, 선수등록 갈등 '오해와 진실'

16.09.23 15:55최종업데이트16.09.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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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AVC컵 대표팀, 진천선수촌 소집 훈련 장면 ⓒ 박진철


감정 싸움 양상으로 치닫던 대한민국배구협회(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이 21일 극적으로 타협을 했다.

이날 두 단체는 KOVO 소속 프로배구 구단들이 오는 25일까지 배구협회가 요구한 대로 프로 선수와 지도자를 배구협회에 전산 등록을 완료하기로 약속하고, 25일 이전까지는 배구협회가 제공하는 별도의 서면 양식에 따라 국내 선수 등록 신청을 해도 배구협회가 외국인 선수에 대한 국제이적동의서(ITC)를 승인해주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2일 프로배구 전 구단이 배구협회에 등록을 했다. 우려했던 KOVO컵 외국인 선수 출전 문제도 해결이 됐다. 가까스로 파행은 막았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기까지 두 단체는 프로배구 선수·지도자의 배구협회 등록 문제를 놓고 각자 해명 보도자료를 내는 등 갈등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내막을 따져보면, 갈등을 하고 말고 할 사안이 전혀 아니었다. 정확히는 법과 규정의 준수 문제였다. 프로배구 선수와 구단이 배구협회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불법 선수와 유령 구단이 되기 때문이다.

배구협회가 뜬금없이 비상식적이고 억지 주장을 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로서 강화된 법과 규정대로 KOVO가 이행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올해 갑자기 발생한 일도 아니다. 해묵은 난제였다.

작년까지 프로배구 구단들은 소속 선수와 지도자들을 배구협회에 등록하지 않았다. KOVO와 프로 구단들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고수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내 법과 국제 규정에 어긋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배구협회는 불법·불안정 상태를 지켜보면서 속앓이만 했다.

프로 선수 배구협회 등록, 법·규정 준수 문제

그러나 올해부터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 3~6월에 제정·개정된 대한체육회의 '지도자·선수·체육동호인 등록 규정'에서 의무적으로 선수 등록을 하도록 다시 한 번 명확히 규정을 했다.

이 규정 19조와 20조에 따르면, 선수와 지도자는 회원종목단체의 선수 및 지도자 등록 절차에 따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해당 종목의 선수 및 지도자로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선수 및 지도자 활동 여부는 등록 절차에 따라 매년 선수 및 지도자 등록을 마친 사람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여기서 회원종목단체는 배구의 경우 배구협회만 인정된다.

때문에 프로든 아마추어든 배구협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배구협회에 선수 및 지도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배구 선수나 지도자로 활동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제 프로배구 구단의 모든 선수와 지도자는 대한체육회의 전산 등록 시스템을 통해 직접 본인 인증을 거쳐 배구협회에 등록을 해야 한다. 또한 전산 등록을 마친 프로 구단은 등록 현황을 출력해서 구단 단장의 직인을 찍어 팩스 등으로 배구협회에 보내야 한다. 그러면 배구협회는 전산을 통해 최종 승인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모든 등록 절차가 종료된다.

국제 규정과 불일치 문제도 있었다. 배구협회는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에도 대한민국의 모든 배구 선수는 배구협회의 등록을 통해서 선수 자격이 주어지고, 그러한 선수들로 클럽(구단)이 구성되게 돼 있다"며 "프로 선수의 배구협회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국제규정 미 준수, 외국인 선수의 국제 이적 동의 근거 미비, 국가대표 선수의 FIVB 불완전 등록 등 불합리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 등록은 기존의 비정상적인 관행으로 행해지던 행정절차를 바로잡으려는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들도 이미 소속 선수와 지도자를 해당 종목의 협회에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여러 상황상 더 이상 등록을 안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KOVO와 프로 구단들은 프로 선수 및 지도자도 배구협회에 등록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의를 달지 않았다. KOVO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합법적인 규정은 따라야 한다는 전제 하에 각 구단의 의견 청취 및 협조를 구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시간 만에 등록 완료한 프로구단 "일도 아니었다"

다만, KOVO는 배구협회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면서 KOVO컵 개막을 앞두고 등록 시일이 촉박하기 때문에 등록 기한을 연기하고, 외국인 선수 ITC부터 우선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배구협회는 국내 선수 등록이 안 된 팀은 법적으로 무자격 구단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만 우선적 또는 별개로 승인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등록 시일 문제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선수 등록 시일이 촉박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도 KOVO 소속 프로 구단들이 스스로 증명해 주었다. 배구협회와 KOVO의 합의가 발표된 다음 날인 22일 오전 동안 일부 구단들은 국내 선수는 물론 외국인 선수까지 당초 배구협회가 요구했던 대로 전산 등록까지 일사천리로 끝내버렸다.

KGC인삼공사는 논란이 벌어지기 훨씬 전인 추석 날(15일) 오전, 2시간여 만에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 등록을 모두 완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삼공사 사무국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추석 날 오전 사무실에서 컴퓨터 5~6대를 놓고 등록 작업을 진행했더니 2시간 만에 선수 등록이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들 훈련에도 거의 지장이 없었다"며 "구단이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솔직히 일도 아니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또 "외국인 선수 ITC 승인도 국내 선수 등록 완료 후 승인 신청서에 구단 단장의 도장만 찍어서 팩스로 보내주면, 바로 ITC가 나오도록 배구협회가 이미 다 준비를 해놨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삼공사는 법과 규정를 지키기 위해 미리 선수 등록을 완료했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왜 먼저 했느냐'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고 토로했다.

다만, 그는 배구협회의 소통 노력 부족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구협회가 미리 선수 등록과 관련해 KOVO 측에 법과 규정이 바뀐 부분, 등록 절차와 시기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면 서로 오해의 여지도 없고 갈등으로 비쳐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프로구단 차출 거부-AVC컵 전패 사례 '사라진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배구 선수와 지도자들도 올해부터는 배구협회에 공식 등록을 하게 됐다. 이로써 배구협회와 KOVO 간의 관계 설정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 프로배구 선수와 지도자가 배구협회에 등록을 하는 순간, 대한체육회와 배구협회 규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KOVO 규정만 적용을 받았다.

따라서 등록 이후에는 배구협회가 프로 선수와 지도자들의 자격과 징계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대한체육회의 지도자·선수·체육동호인 등록 규정에도 '선수 등록을 마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징계를 받은 사람은 그 징계에 따라 선수 활동의 제한을 받는다'고 돼 있다. 또한 대한체육회의 승인을 받은 배구협회의 규정에도 징계 규정들이 명시돼 있다.

대표적으로 배구협회가 선발한 국가대표팀 차출(소집)에 부당하게 불응할 경우, 해당 선수에게 최장 1년간 국내 대회 출전 금지, 해당 구단 감독은 각급 대표팀 지도자 선발 영구 불가, 해당 선수의 차기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선발 제외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게 된다.(배구협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24조)

따라서 배구협회의 대표팀 소집 요구에 부당하게 불응한 프로 선수는 일정 기간 V리그 출전이 불가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프로 선수들이 배구협회에 등록을 하지 않아 배구협회 소속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표팀 차출 거부를 해도 배구협회가 징계를 내릴 법적 권한이 없었다.

그 때문에 대표팀 선발할 때마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물론, 전략 수립과 훈련에 집중해야 할 대표팀 감독까지 나서서 프로 구단에 선수 보내달라고 사정을 하고 설득하는 게 주요 일이었다. 그런데도 거부하면 해당 선수를 선발 못 하는 구조가 계속돼 온 것이다.

앞으로는 프로 구단이나 프로 선수가 부상 등의 합당한 이유 없이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여자배구 AVC컵 대표팀의 경우처럼, 프로 구단들의 차출 거부로 교체 멤버급 선수조차 선발하지 못해서 6전 전패를 당하는 사례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배구협회-KOVO 협의체 합의, '실천이 중요'

배구협회가 일각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는 선수등록비 징수 문제도 법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대한체육회의 지도자·선수·체육동호인 등록 규정에 '선수 등록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회원종목단체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소정의 선수등록비를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배구협회가 선수등록비를 받는 게 법적으로 보장된 셈이다. 이미 일본과 미국도 선수등록비를 받고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적정하냐이다. KOVO가 이에 대해 민감한 것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배구협회가 외국인 선수에 대한 ITC 승인비로 1명 당 3000만 원을 요구했다가 철회한 전례가 있다.

다행히 두 단체는 앞으로 법과 규정에 따라 상호 협조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KOVO 신원호 사무총장이 21일 배구협회를 찾아가 서병문 회장과 면담을 갖은 자리에서 두 단체가 상호 협의체를 마련하기로 했다.

협의체를 통해서 갈등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사전에 조율하고, 배구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협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단체는 이번 선수 등록 논란을 앞으로 잘 소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다짐했다. KOVO 구자준 총재도 배구협회와의 소통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배구팬들은 말이 아니라 실천을 원하고 있다. 상급 단체의 주도권·감정 싸움에 한국 배구가 추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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