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병기 교과서로 초등생 읽기 능력 못 키운다"

전교조,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에 관한 현장 연구 발표회

등록 2016.10.07 17:58수정 2016.10.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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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학생들의 읽기 능력과 어휘력 향상을 위해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가 교육부의 주장과 달리 학습자의 읽기 능력 및 이해도 향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반면 학생들에게 한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키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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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지난 5일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관한 현장연구 발표회를 열었다 ⓒ 강성란


한자 병기 교과서, 읽는 속도 느려지고 이해력 차이 '글쎄'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한글날을 앞둔 지난 5일 전교조가 진행한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에 관한 현장 연구 발표회'에서 공개됐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교과서에서 한자 병기가 학습자의 읽기 능력에 미치는 영향 연구' 결과를 발표한 김명중 충남 홍성 홍동초 교사는 "교육부의 주장대로 한자 병기가 학생들의 읽기 능력과 어휘력 향상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자가 병기된 교과서를 본 아이들의 읽기 속도는 느려졌고 이해도 역시 한글 전용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김명중 교사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 289명을 대상으로 두 번에 걸친 실험을 진행했다. 1차 실험은 전국 6개 지역 6학년 학생 135명에게 한글 전용 사회교과서를 읽고 한글 전용 평가지를 풀게 한 뒤 다음 날 같은 내용을 한자 병기 교과서로 읽고 한자 병기 평가지로 푸는 방식으로 읽기 능력과 이해도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한자병기 교과서를 읽을 때 개인당 평균 12.3초가 더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한 번 읽었던 글을 다시 한 번 본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차이는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해도 연구 결과에서는 한글 전용과 한자 병기 평가지를 푼 점수 차가 평균 0.18점에 불과해 한자병기와 이해도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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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 강성란


한자 알아도 '한자병기'로 인한 이해력 향상 효과 없다

놀라운 점은 한자를 숙지한 학생들의 읽기 능력 및 이해도는 일반 학생과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점이다. 연구 결과 한자 사교육을 받은 학생조차 한자 병기 교과서를 읽을 때 평균 9.2초의 시간이 더 걸렸으며 이해도는 평균 0.16점이 상승해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한자병기 교과서로 읽었을 때 읽는 시간이 단축된 학생 중 한자 사교육을 받은 학생은 27.8%에 불과 했으며 이해도가 높아진 학생 중 한자 사교육을 받은 학생도 비슷한 수준인 22.6%에 그쳤다. 

김명중 교사는 "이번 실험은 학생들의 초등교과서 읽기 능력이나 이해도를 높이는데 한자 병기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차 실험은 같은 학교 6학년 9개 반에 대해 사전 검사를 실시한 뒤 수준이 비슷한 6개 반을 골라 3개 반은 한자 병기 표집학급으로 정해 한자 병기 교과서와 평가지를, 나머지 3개 반은 한글 전용 표집 학급으로 정한 뒤 한글 전용 교과서와 평가지를 사용하게 했다.

실험 결과 한글 전용 학급이 한자 병기 교과서를 읽은 학급보다 평균 50초 정도 빨리 읽었고, 이해도는 한자 병기 집단의 점수가 0.1점 높아 의미 있는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차 실험과 같은 결과를 낸 것이다.

김명중 교사는 "학생들의 읽기 능력과 어휘력 향상을 위해 교육부가 할 일은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도입이 아니라 학생들의 읽기 전략, 습관, 학력과의 상관관계 등을 찾는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개인차를 제거하는 공변량 분석을 했다고 밝혔다.

부작용 큰 한자 병기 아닌 독서·사전 찾기 제안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학생들은 '한자와 함께 쓰인 글을 읽을 때 읽는 시간이 평소와 같거나 더 걸렸고(87.9%), 글을 이해하는데 별 차이가 없거나 더 어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86.8%)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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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외래어와 한자어 개수 ⓒ 강성란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관련 토론수업을 진행한 안용순 서울 배명중 교사는 "학생들은 토톤을 통해 초등학생들의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하는 것이라면 정서적 거부감, 학업 스트레스, 사교육 증가의 부작용이 있는 한자 병기 보다는 독서, 사전 찾기, 맥락 일기 등을 통해 어휘력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교과서 속 한자어 실태'를 분석한 우지영 유현초 교사도 현재 사용되고 있는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 속 한자어와 외래어 어휘를 살펴본 결과 학년별로 어휘의 쉽고 어려움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없이 교과서가 집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초등학교 사회 과목을 살펴보면 외래어와 한자어 개수(중복 제거)가 3학년은 1218개, 4학년 935개, 5학년 2200개, 6학년 2392개로 들쑥날쑥한 것을 알 수 있다.

우지영 교사는 "교과서 집필 시 학년별로 아이들이 자주 쓰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삶 속 말을 사용하도록 학년별 어휘의 범주를 정해 따르게 하는 것이 어휘력 향상을 돕는 것이지 한자 병기는 별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희망(http://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초등한자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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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교육희망>의 강성란 기자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 소식을 기사화 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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