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세계 5위 필리핀, 자녀교육에 목매는 이유

가난한 필리핀에서 성취 불가능한 '희망'으로서의 교육

등록 2016.11.21 11:39수정 2016.11.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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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보홀 섬 가르시아 헤르난데스 바랑가이의 안티폴로초등학교(옆문 입구쪽). 1930년에 설립된 이 학교에는 94명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는데, 멀리 1시간 남짓 걸어서 오는 어린이들도 있다.

보홀 섬 가르시아 헤르난데스 바랑가이의 안티폴로초등학교(옆문 입구쪽). 1930년에 설립된 이 학교에는 94명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는데, 멀리 1시간 남짓 걸어서 오는 어린이들도 있다. ⓒ 박영대


필리핀 보홀 섬, 가르시아 헤르난데스 바랑가이의 안티폴로 마을에는 전교생이 1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11월 12일 오전 6시 세부 항에서 여객선으로 보홀의 타그빌라란 항까지 약 2시간 남짓, 다시 승용차편으로 1시간 남짓을 이동한 끝에 안티폴로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아담한 정문 바로 안쪽에서는 1주 전에 시작했다는 교실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래된 안티폴로 나무가 유독 많아 마을 이름도 안티폴로인 작은 산골의 학교 학생 수는 모두 94명, 교실 수는 6개, 교사 수는 교장 포함 5명이다. 이 학교가 세워진 때는 1930년, 필리핀이 스페인(1571~1898년)에 이어 미국의 식민지(1898~1946년)로 있던 시절이다. 엘리트 양성을 위해 소수의 사립중등학교와 대학교만 세웠던 스페인과는 달리, 미국은 식민지 필리핀의 마을마다 학교를 세우고 영어교육 등 대중교육을 도입하였다. 물론 식민통치의 수단이었다. 안티폴로초등학교도 이때 세워진 셈이다.

안티폴로초등학교 교실 신축 공사비를 긴급 지원한 곳은 필리핀 사회복지부 공인 NGO <Kalahi-CIDSS>이다. 학교 건물에 대한 지원은 거의 하지 않는 단체라고 했다. 이 단체가 교실 신축을 지원한 것은 그만큼 이 학교 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교실 건물은 총 4동, 가장 큰 건물이 교실 3개의 본관이고, 나머지는 모두 교실 1개씩의 독립 건물 3개이다.

그나마 1개는 나무로 골격을 세우고 야자 잎으로 벽과 지붕을 이은 임시건물이다. 본관 건물은 지은 지 40년이 넘었는데, 2013년 지진(강도 7.2)의 영향으로 서서히 붕괴가 진행되는 상태이다. 신축 교실은 본관을 대신할 교실로서 지진과 태풍에 견딜 수 있도록 지어지고 있었다.

a  신축중인 교실과 40년 된 본관 건물. 교실 3개의 본관 건물이 2013년 지진으로 붕괴가 진행중이라 필리핀 NGO의 긴급지원으로 공사가 1주일 전에 시작되었다.

신축중인 교실과 40년 된 본관 건물. 교실 3개의 본관 건물이 2013년 지진으로 붕괴가 진행중이라 필리핀 NGO의 긴급지원으로 공사가 1주일 전에 시작되었다. ⓒ 박영대


신축 교실 2개가 완공된다고 해도 안티폴로초등학교의 고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교실 부족으로 2학년(13명)을 제외하고 유치부(7명)와 1학년(10명), 3학년(16명)과 4학년(15명), 5학년(17명)과 6학년(16명)은 합반해서 교사 1명이 수업을 진행해왔는데, 교실이 신축돼도 이 사정은 개선되지 않는다. 한 학년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다른 학년은 자습해야 하는데 한창 때의 아이들이 조용할 리  없으니 날마다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변 다른 학교로 보낼 수 있는 집은 자녀를 안티폴로초등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148세대(722명, 2015년 통계)가 모여 사는 안티폴로 마을 사람들은 거의 다 소작농이다. 소작료가 법률상으로는 40%이지만, 실제로는 50%나 60%이니 모두 가난한 살림이다. 그래도 가난한 부모들은 걸어서 1시간 넘는 거리의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도시락 책가방 학용품도 없이,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고 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단지 의무교육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기 자녀들은 자신들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 간절함은 교실 신축에서도 드러난다. 2개 교실의 신축 비용은 총 약 179만 페소(약 4천만 원), 그 중 약 82만 페소(1천9백50만 원)는 마을에서, 즉 학부모들이 부담한다. 가난한 산골마을이니 돈이 있을 리 없고, 마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목재 등의 건축 재료, 그리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공사장에는 외지 기술자 이외에는 부모들이 땀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a  학교 급수대. 물이 부족해 안 나오는 때가 더 많고, 수질이 좋지 않아서 식수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식수는 매일 교사들이 자비로 사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학교 급수대. 물이 부족해 안 나오는 때가 더 많고, 수질이 좋지 않아서 식수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식수는 매일 교사들이 자비로 사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 박영대


안티폴로초등학교의 여러가지 고질적 문제들

교실 부족 이외에도 안티폴로초등학교의 고질적 문제는 또 있다. 먼저 교과서 문제이다. 해마다 정부에서 교과서를 무상 배부하지만, 산골 안티폴로초등학교까지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교과서가 늘 부족하게 나오기 때문에 산골마을학교에는 알려주지 않고, 읍내 학교들끼리 나누어 갖는다고 한다. 임의로 인쇄해서 사용할 수도 없어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복사해서 사용해오고 있단다. 그래서 가뜩이나 적은 정부지원 학교운영비는 늘 부족하다.


다음은 급수 문제이다. 안티폴로마을에는 급수시설이 없어서 초등학교도 자체 급수시설을 마련했는데, 물이 풍부하지 않아 거의 나오지 않고 수질에도 문제가 있어서 식수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교사들이 매일 자비 60페소(약 1400원)를 들여 정수한 물을 사서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 학교에서 직선거리 500미터의 마을 우물이 있는데, 늘 물이 풍부하고 수질도 좋은 편이다. 학교까지 파이프로 연결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물을 마시게 할 수 있는데도 시설비가 많이 들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필리핀에서 대학교육까지 마친다고 해도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조국에서 먹고 살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져 이주노동을 떠나고 있다. 그래도 대도시이든 산골마을이든 필리핀 부모들은 우리 못지않은 교육열을 가지고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

수도 마닐라에는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유치원도 있는데, 지원자가 많아 밤새 줄을 서서 신청한다고 한다. 사립학교 하교 시간에는 학생을 데려가기 위해 몰려든 고급 승용차 때문에 주변 교통이 마비되는 일도 벌어진단다. 교실도 교과서도 없이 공부하는 안티폴로초등학교 현실에 비춘다면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a  부모들은 거의 다 가난한 소작농이지만, 자녀교육열이 매우 놓아 교실 신축공사에 목재 등 건축자재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실 신축을 계기로 학교 교육이 개선되고 학생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부모들은 거의 다 가난한 소작농이지만, 자녀교육열이 매우 놓아 교실 신축공사에 목재 등 건축자재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실 신축을 계기로 학교 교육이 개선되고 학생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 박영대


필리핀은 상위 10%가 전체 부의 76%를 차지해 소득 불평등이 세계 5위이다(2014년 통계). 이런 나라에서 가난한 부모일수록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이유는 교육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자 기회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를 덮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기적'이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불가능'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그래도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건 그것이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그래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해외어린이교육후원회 (사)올마이키즈는 안티폴로초등학교의 교실 부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올해 안에 4개 추가 신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지원은 최복련 님의 기부금 5천만 원과 기타 소액 기부금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교실 신축 뒤에는 급수시설 지원에 대한 추가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해외어린이교육 #올마이키즈 #교육후원 #필리핀 #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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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어린이교육후원회 <사단법인 올마이키즈> 상임이사이고, 인연이 닿는 대로 여러 공익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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