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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주 100만 돌파 <형>, 이럴 영화는 아닌데

[하성태의 사이드뷰] 전형적인 공식에 남성적 시선으로 가득찬 기획 영화

16.11.28 19:34최종업데이트16.11.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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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형>의 조정석과 도경수. ⓒ cj엔터테인먼트


조정석은 예능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인지도를 얻게 해 준 영화 <건축학개론> 속 '납득이'의 명대사를 해달라는 출연진의 요구에, 조정석은 망설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조정석은 "스네이크! 비벼!"라는 영화 속 대사를 차지게 재현하고 있었다. 27일 방영된 SBS <런닝맨>에 출연한 조정석은 그렇게 영화 <형>의 공동주연인 엑소 도경수와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었다.

지난 10일, 13.2%(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로 종영한 SBS <질투의 화신> 역시 조정석의 물오른 연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질투에 사로잡혀 모질게 굴다가도 결국은 표나리(공효진 분)에게 매달리는 '기자님' 이화신은 '납득이'는 물론 그간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조정석의 모든 것'을 총합해 놓은 듯한 캐릭터였다. 마지막 회, 결혼식 장면에서 연출한 뮤지컬식 축가 장면은 뮤지컬 배우로 출발한 조정석의 근원을 일깨우는 보너스 장면이기도 했고.

전야 개봉 포함 5일 만인 27일까지 누적 관객수 103만 7794명을 기록한 영화 <형>(영진위통합전산망 기준) 역시 조정석의 '원맨쇼'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카트>로 만족스러운 신고식을 치른 도경수가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고, 박신혜가 조연으로 뒷받침하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형>은 타이틀 롤을 맡은 조정석이 이끌어가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 '원맨쇼'가 영화에 독이 됐는지, 약이 됐는지는 찬찬히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다시 말해 영화의 완성도와 조정석의 연기력은 별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코미디와 신파와 형제애를 버무린 <형>이 안타까운 지점도 거기에 있다.

조정석, 도경수의 팬이라면 환영할 만한

영화 <형>의 도경수와 조정석. ⓒ cj엔터테인먼트


유도 국가대표 선수 고두영(도경수 분)이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시력을 완전히 잃고 폐인처럼 홀로 살아가는 두영 앞에 배다른 형인 고두식(조정석 분)이 불현듯 나타난다. 사기전과 10범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두식은 두영의 보호를 핑계로 복역 중 가석방으로 출소한 상태. 그리고는, 쉬이 예상 가능할 법한 전개가 펼쳐진다. 두 형제의 갈등과 반목에 이은 화합과 형제애의 부각 말이다.

앞서 표현한 대로, <형>은 그 쉬이 예상 가능한 전개가 대중영화로서의 가장 큰 장점인 영화다. 티격태격하던 형제는 반드시 화해하고 서로를 아껴야 한다. 형이 동생을 위해 헌신하면 금상첨화다. 이를 도와주는 조력자는 예쁘고 다소 젊은 여성캐릭터를 포함해 한 둘은 꼭 존재해야만 한다. ('여성 혐오'에 가까운 단역 여성 캐릭터의 묘사도 감수해 내야만 한다)

장애나 스포츠와 같이 감동 코드나 볼거리를 채워줄 소재도 곁들이는 게 좋다. 남녀 간의 로맨스는 형제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객을 울릴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은 꼭 필요하다. 아니, 의무적으로 넣어야만 한다. 이런 필수 요소들을 버무린 한국식 신파코미디가 바로 이 <형> 되겠다.

미덕이 없는 건 아니다. 딱히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큰 갈등이나 무리 없이 흘러 가는 이른바 '착한' 영화라 표방할 만하다. 곁가지가 별로 없다보니, 두영과 두식 형제가 등장하는 장면들만으로 빼곡하다. 엑소 도경수나 조정석의 팬들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의 '스펙타클'은 그 두 '배우의 맛'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신파'라는 전형적인 한국식 드라마 공식 

영화 <형>의 박신혜와 조정석. ⓒ cj엔터테인먼트


<형>의 권수경 감독은 <맨발의 기봉이> 이후 10년 만에 절치부심 두 번째 상업영화를 개봉시켰다. 강산이 변한다는 그 10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조정석의 길고 긴 대사와 그럴 법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낯익은 설정들에 의존하는 <형>은 코미디와 신파를 적절히 섞는 전형적인 한국 코미디영화의 관습을 나열하는데 그친다. 10년 전, 그때 그 감성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사실 흥행만 놓고 보면, <럭키>에 이어 설익은 코미디영화가 또 한 번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의아할 법도 하다. 아마도, 현실에서 맞닥뜨린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지친 관객들이 안식처와 같은 편안한 작품을 선택했을 것으로 풀이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질투의 화신>으로 인지도를 확 넓힌 조정석과 나날이 늘어가는 엑소 팬들이 티켓 확보에 한몫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정석과 도경수의 '투숏'은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또 하나, 수능을 끝낸 고3 학생들과 수험생들에게도 <형>은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다. 이로써, 전반부까지 웃음을 끌어내려 노력하다 후반부 '감동+눈물' 코드를 휘몰아치는 한국식 드라마 공식은 또 한 번 그 위력을 실감시켰다고 할까. 

그럼에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흐르는 '걱정말아요, 그대'에 이르러서는 이 기획영화의 뚝심(?)에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정석과 도경수가 부르는, 이제는 식상해질법한 이 리메이크 곡을 기어코 삽입하는 그 고집과 뚝심 말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팬서비스가 어디 있겠는가. 개봉 주 관객 100만을 동원한 <형>은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수능 특수'나 희대의 시국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흥행에 크게 작용한 또 한 번의 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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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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