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패잔병이 숨어든 쓰시마 동백나무숲을 거닐다

등록 2016.12.30 11:50수정 2016.12.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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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 매바위
▲일본 쓰시마 매바위 김수종

차를 조금 돌려 매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양의 '매 바위'가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매가 한 마리 바위 위에 올라 앉아 있어서 잠시 구경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바위 아래 어딘가에 매의 집에 있는 듯했다. 천적이 없는 바위섬이라 이곳에 집을 구했나 보다.

이어 바로 인근 '도노사키(殿崎)'의 '일러우호의 언덕(日露友好の丘)'으로 갔다. 우선은 바닷가에 있는 '동백나무 숲길'을 30분 정도 걸었다. 이곳은 바닷길을 따라 동백나무가 크고 웅장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어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러일전쟁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일본 쓰시마 동백나무 길
▲일본 쓰시마 동백나무 길 김수종

백여 년 전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육전(陸戰)에서의 패배를 만회하려고 제독 로제스트벤스키 사령관의 지휘 하에 발틱함대를 회항시켜 대한해협 주변에서 해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발틱함대는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함대에게 격파되어 거의 전멸하고 만다.

사령관은 포로로 잡혔고, 패잔병들은 이곳에 상륙했다. 당시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해군은 무적함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남단까지 가서 돌고 돌아오느라 전력과 전의가 극도로 떨어진 상태였기에 패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본 쓰시마 동백나무 무지 크다
▲일본 쓰시마 동백나무 무지 크다 김수종

일본 쓰시마 동백 숲을 걷다
▲일본 쓰시마 동백 숲을 걷다 김수종

아무튼 패전 직후 이곳으로 숨어든 부상당한 러시아 병사들은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우물가로 안내를 받기도 했고, 밤에는 민가에서 나누어 숙박을 시키는 등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 일로 일본군에게 러시아 군대는 내용적으로 항복이지만, 형식적으로 우호조약을 맺었다. 이것을 기념하게 위해 지난 2005년 대형 일러우호를 상징하는 조각이 여기에 건립된 것이다.

아무튼 이 언덕에는 정말 바람이 너무 강해 반쯤은 누워있는 동백나무가 많다. 또한 발아래에는 구근에 강한 독성이 있는 풀인 천남성(天南星)이 엄청 많이 자라고 있다. 천남성은 예전 왕조시대에 죄인에게 임금이 사약(賜藥)으로 내리던 약재 중에 하나이다. 겨울이라 풀보다는 붉은색의 포도송이처럼 달린 열매가 눈을 자극했다.

일본 쓰시마 독초 천남성의 열매, 참 이쁘다.이래서 독초
▲일본 쓰시마 독초 천남성의 열매, 참 이쁘다.이래서 독초 김수종

일본 쓰시마 동백길
▲일본 쓰시마 동백길 김수종

전쟁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동백나무와 천남성을 말하는 이유는 당시 패전한 러시아 해군이 상륙했던 이곳은 꽃이 목이 댕강댕강 잘리듯 떨어지는 동백나무 숲이었고, 바닥에는 사약으로 많이 쓰이는 천남성 밭이었으니, 터로 보자면 사실은 최악의 장소였던 것이다.


풍수지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곳에 상륙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무튼 러시아 수병들은 쓰시마 동북에 있는 작은 반도라서 안전하다고 착각을 했었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부상자들은 지역민들의 도움으로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쓰시마 바람이 심해서 누워있는 나무
▲일본 쓰시마 바람이 심해서 누워있는 나무 김수종

이곳 동백나무 숲길은 정말 걷기 좋은 길이다. 우선은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령이 있는 큰 동백나무가 많다. 초입과 중간 중간에는 마치 터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나무가 크고 서로 엉켜있어 신비감마저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바닥에 똑똑 떨어진 동백꽃과 간간히 매달려 있는 꽃들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러니 동백꽃의 바다를 걷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또한 길옆에 보이는 천남성의 붉은 열매들도 눈을 자극한다. 독초라서 만지는 것이 겁이 날 정도로 강력한 붉음이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독은 뿌리부분인 구근에 있다고 하니 그냥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크게 위험은 없는 것 같다.

일본 쓰시마 동백꽃의 바다를 거닐다
▲일본 쓰시마 동백꽃의 바다를 거닐다 김수종

일본 쓰시마 똑똑 떨어지는 동백꽃
▲일본 쓰시마 똑똑 떨어지는 동백꽃 김수종

크기 반달모양을 그리면서 작은 반도를 돌아가는 길은 좌측을 따라서 계속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며, 바위와 새들의 울음도 들려온다. 그리고 중간에는 대나무 밭도 조금 있고, 멀리는 억새도 많이 자라고 있다.

온통 삼나무와 편백나무만을 주로 보다가, 동백을 보니 너무 좋다. 서울에서는 꽃을 구경하는 것도 힘든 계절에 이렇게 동백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바람이 심한 곳이라 나무들이 가지를 넓게 펴지 않아서 연리지가 종종 보인다. 사람으로 보자면 약간 허리를 숙이고는 어깨를 바짝바짝 붙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다.

일본 쓰시마 동백 참 이쁜 꽃이다
▲일본 쓰시마 동백 참 이쁜 꽃이다 김수종

동백나무 숲길은 겨울에 특히 최고의 눈요기를 할 수 있는 산책길이다. 바다와 바람, 꽃의 조화가 좋은 곳, 12~3월까지는 강력 추천이다. 이제는 다시 길을 돌아서 일러우호탑과 조각을 잠시 보았다. 거대한 조각이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무서운 나라 러시아라는 생각도 들고 일본도 그렇다. 우호라는 말이 약간은 거짓으로 들리고 그렇게 보인다.

자! 이제는 정말 출국을 위해 항구로 간다. 히타카쓰항구에 도착을 하니 오후 1시 30분이다. 우선은 출국을 위해 승선권을 수령한 다음, 빌린 차를 돌려주기 위해 렌터카업체 김삼관 사장을 만났다. 차와 열쇠를 돌려주려고 하니 "출항 전까지는 여기에 있을 것"이라며 "짐은 차안에 두고 식사하고 와서 돌려주어도 된다"고 했다.

일본 쓰시마 한러우호의 조각
▲일본 쓰시마 한러우호의 조각 김수종

일본 쓰시마 김수종, 차를 빌려준 김삼관 사장, 고광용 선배랑 기념 촬영
▲일본 쓰시마 김수종, 차를 빌려준 김삼관 사장, 고광용 선배랑 기념 촬영 김수종

고마운 우리 동포이기에 세 사람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가능하면 다음 달에 한 번 더 보자"고 약속을 했다. "참 그리고 우리 딸이 37살인데 아직 시집을 못 갔어, 참한 한국 청년 하나 소개 해줘, 같은 경주김씨끼리 부탁이야"라고 해서,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다음 달에 올 때는 총각 후배를 하나 끌고 와야겠다. 

이제 식사를 하기 위해 천천히 히타카쓰 읍내를 걸었다. 우측 언덕 위에 작은 신사가 보이고, 직진을 하다가 보니 좌측에 면세점과 해산물 판매장이 보인다.

다시 우측에는 잡화점과 식당이 보인다. 식당에 들어가 보니 우리처럼 출항 전에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손님들이 너무 많아 돌아 나왔다. 다시 길을 더 가다 보니 '파친코(パチンコ, 슬롯 머신)'도 보이고, 거류민단 사무실, 여행사, 미장원, 서점도 보인다.

일본 쓰시마 작은 서점
▲일본 쓰시마 작은 서점 김수종

책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잠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시골서점이라 단행본 책은 거의 없고, 잡지와 여성지, 자습서 같은 것만 왕창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왔다. 선물로 무엇을 살까 고민을 더 해보았지만, 이미 시간도 별로 없고 살 것도 없어 보였다. 읍내가 너무 작아서 상점이 더 없는 것 같다.

이제 정말 식사를 하기 위해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돼지고기와 계란을 넣은 따뜻한 '소바( 메밀국수,そば)'를 주문했고, 고 선배는 짬뽕을 좋아하는지 오늘 점심도 짬뽕을 시켰다. 나는 소바를 무척 좋아한다. 여름에는 찬물에 씻은 냉소바를 즐기고, 겨울에는 무를 갈아 넣은 간장 소스에 파를 왕창 넣은 냉소바도 간혹은 먹지만, 따뜻하게 조리한 국물이 있는 온소바를 자주 먹는다.

일본 쓰시마 돼지고기와 계란을 넣은 온메밀국수
▲일본 쓰시마 돼지고기와 계란을 넣은 온메밀국수 김수종

한국에서는 정말 소바를 잘하는 집을 발견하기 힘들다. 미각이 좋고 유치원까지 일본에서 다녀 우동 맛을 잘 아는 아들 연우가 좋아하는 우동은 잘하는 곳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소바를 잘하는 곳을 너무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일본에서 소바는 어디를 가도 만족스러운 맛이다. 소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일본 소바는 나에게 정말 최고의 일식요리이다.

그래서 오랜 만에 온소바로 속을 채운다. 며칠 동안 허전했던 속이 꽉 차는 기분이다. 피곤함도 함께 풀리는 듯하다. 식사도 마쳤고 그럼 이제 서서히 항구로 가자. 3시 30분 출항인데, 2시 40분까지는 가야 출국 수속을 하고 배를 편하게 탈 수 있을 것 같다.

짐이 거의 없는 나는 그냥 통과. 수속을 마치고 배에 올랐다. 정말 바다가 잔잔하고 좋다. 멀미약을 사지 않은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정말 용왕님의 은혜로 파도가 없어 편하게 부산까지 왔다. 입국 수속은 너무 간단하다. 겨우 배낭 하나에 선물도 거의 없는 나에게 검사도 없다. 그냥 저냥 마구 통과하는 기분으로 인사만 두어 번하고 나왔다.  
    
일본 쓰시마 출국장에서 나와, 배를 타면서
▲일본 쓰시마 출국장에서 나와, 배를 타면서 김수종

부산의 저녁 공기도 좋다. 시원하다. 우선 도보로 10분 거리의 부산역으로 간다. 오후 5시다. 서울행 KTX가 여러 대 있었지만, 일요일 저녁이라 입석뿐이다. 6시 30분에 좌석이 있다고 한다. 조금을 기다리기로 하고 표를 구매했다. 그 사이 저녁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역전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김치고등어찜으로 식사를 했다.

차를 한 잔하고는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둘만의 여행은 재미있었다. 고 선배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미안했다. 길 안내하랴, 일정도 잡고 숙소도 잡고 바쁘게 보내셨다. 나는 간단하게 지도보고, 통역만하고 다닌 것 같다.

아무튼 생각보다 쓰시마는 볼 것도 많고, 알아가야 할 것이 많은 곳이다. 쇠락한 시골풍경이 있는 곳이지만, 무한한 가능성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쓰시마와 한일 관계 및 조선통신사 등에 관한 역사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 물론 자주 쓰시마를 방문할 생각이다. 이제 겨우 섬의 2/10 정도를 본 것 같다.
#일본 쓰시마 #동백꽃 숲길 #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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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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