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까지 대절해 광화문으로
저는 자랑스러운 촛불입니다

[오마이뉴스 2016 올해의 인물] 천만 분의 1 '촛불 시민'의 수상소감

등록 2016.12.31 11:09수정 2016.12.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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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16년 올해의 인물로 '1000만 촛불시민'을 선정했습니다. 지난 12월 13일부터 보름간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압도적인 시민이 '촛불을 든 우리들'을 올해의 인물로 추천한 결과입니다. 지난 2개월 동안 진행된 '촛불드라마'는 오는 31일을 기점으로 연인원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촛불드라마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며 끝맺음 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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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일대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내게 이럴 자격이 있을까? 몇 번을 되물었다. 201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1000만 촛불 시민'. 촛불 든 시민 중에 한 사람이었으니 수상소감을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다. 나 같은 '조무래기 촛불러'가? 매주 광화문 혹은 지역 집회에서 살다시피 한 분들이 수십만 명이고, 평일 추운 날씨에도 매일 자리를 지키던 분들이 수천 명인데 과연 내가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고민 끝에 몇 자 적기로 했다.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안 그래도 바쁜 연말연시에, 촛불 드느라 힘들었을 시민들에게 부담을 넘기지 말자. 그나마 제일 한가한 내가 하는 거다. 원래 단체로 상을 받고 나면 수상소감을 서로 미루다가 결국 낯 두껍고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하지 않던가. 딱 그 이유 하나였다.

그렇다. 나는 천만 촛불 중의 한 명이었다. 기본적인 팩트는 체크하고 가야겠기에, 그간의 촛불 여정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경상북도 구미라는 곳이다. 왜 있잖은가. 생가에 불이 붙고 동상에 먹칠을 해도 여전히 굳건한 믿음을 지닌 분들이 다수 모여 사는 도시. 따라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상경'이라는 단어로 표현 한다.

버스까지 대절해 직원 데리고 '함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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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광화문 촛불집회 버스를 대절해서 직원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그렇게 많은 군중이 모인 걸 처음 본 시골 사람들은 감탄하고 감동했다. ⓒ 이정혁


첫 번째 상경은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1차 집회였다. 앞선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 PC' 특종보도를 계기로 화가 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사전에 약속이 있던 관계로 1시간 남짓 촛불을 들고 있다가 자리를 떴다.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상경을 준비했다.

11월 12일. 친한 후배와 합심해 버스 한 대를 대절했다. 근무지 직원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다. 자발적 참여 의사를 밝힌 양측 직원들 30여 명과 함께 서울에 도착했다. 스크린 상에서라도 뵐 수 있어 감격스러웠던 정태춘 선생님과 그 분의 노래, <92 장마, 종로에서>가 기억에 남는다. 세 번째는 11월 26일. 이번에는 유치원생 아들과 KTX에 올랐다(이 내용은 일전에 기사로 올렸으니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관련 기사 : 주말마다 서울행 KTX... 박 대통령, 이제 그만합시다).


그리고 네 번째 상경을 위해 짐을 싸고 기다리던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일단 짐을 풀고 축하주를 마셨다. 술집 곳곳에서 들리는 "탄핵을 위하여!"라는 외침은 이곳이 과연 경상도 구미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새벽까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탄핵까지 달려가자!"라고 외치며 거나하게 마셨던 기억이 남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왜 촛불을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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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유치원생 둘째 아들과 광화문 광장에서 눈발이 가늘게 날리던 추운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모여 들었다. ⓒ 이정혁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 리 없다. 어차피 꼭두각시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 수구세력의 나팔수 언론들, 상상력을 말살시키는 교육 등 사회 구조 전체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될 일들이다. 언론의 표현처럼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거다. 특검의 수사과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항상 엔진을 켜고 기다리는 거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본다. 나는 왜 촛불집회에 참가했는가? 독립군처럼 나라를 되찾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없었고, 썩어빠진 나라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칠 용기도 없다. 나 같이 평범한 시민에게 분노와 절망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촛불 말고는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촛불이라도 안 켜면 주변의 발암인종들 때문에 명대로 못살 것 같아서.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진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그나마 위로를 받을 것도 같았다. 촛불을 켜고 한 곳을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힘없는 이들의 작은 촛불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이고 또 모이면서 촛불은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수백만에 이르는 촛불이 타오르며 국민들은 변화의 기운을 감지했다. 머릿수라도 채우려고 들고 있던 촛불이 거대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다가, 별이 돼 하늘에 오른 착한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줄 기회를 촛불 속에서 발견했다.

촛불은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며 비폭력 집회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주말(12월 31일)에는 천만 촛불 돌파(누적 수치, 주최 측 추산 기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촛불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지대한 관심으로 돌려놨고, 주권자인 국민들을 변방에서 핵심으로 옮겨놨다. 이제 촛불의 주인들은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행사하고자 한다. 나 또한 그 천만분의 하나이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 지킨 시민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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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이제 진정한 수상소감을 밝힐 차례다. 미리 밝혀두지만, 밤을 새워가며 집회를 준비해 온 많은 관계자들과, 새벽까지 남아서 쓰레기를 줍던 시민들과, 추운 날씨에도 손수 포장한 사탕과 초를 나눠주던 자원봉사자들과, 그리고 집회의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진실하고, 격정적이고, 간절했던 마음 모두를 담을 수 없음을 사과드린다. 사실, 그 어떤 글로도 표현해내기 힘들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을 적어 본다. 먼저 자랑스럽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앞서 간 세대로서 천만의 촛불이 자랑스럽다. 역사에 길이 남을 현장에, 역사를 다시 쓰는 그 현장에 우리가 있었음을 부디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그리고 감사하다. '나 대신 누군가'를 생각지 않고, '누군가 올 수 없다 해도 나는 반드시'라는 생각으로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촛불을 지키고 있는 국민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끝으로, 이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자. 요즘 잘 나간다는 영화를 한 편 봤다. 결말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 속 대한민국에서 그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결말이기에. 하루이틀 만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무척이나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제 촛불의 진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촛불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광화문 촛불 집회 #촛불 시민 #2016 올해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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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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