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촛불'인 당신이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6 올해의 인물] 독일 베를린 촛불이, 대한민국 촛불에게

등록 2016.12.31 11:10수정 2016.12.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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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16년 올해의 인물로 '1000만 촛불시민'을 선정했습니다. 지난 12월 13일부터 보름간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압도적인 시민이 '촛불을 든 우리들'을 올해의 인물로 추천한 결과입니다. 지난 2개월 동안 진행된 '촛불드라마'는 오는 31일을 기점으로 연인원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촛불드라마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며 끝맺음 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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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만든 베를린 박근혜 퇴진 집회 웹 포스터. ⓒ 권은비


지난 11월부터 독일에서 진행되었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좀 특별하다. 단순히 '해외촛불집회'라고만 하기엔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진 수난의 역사가 독일 한인교민사회의 애환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독일은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주요 정치 무대였다. 오늘날의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주요 무대가 독일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코스는 소위 '아버지 추억여행'이라 할 수 있었다.

1964년 박정희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만난 지 정확히 50년 만에 그의 딸은 아버지 뒤를 따라, 대통령이 되어 독일을 방문했고 아버지가 만났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만났을 당시, 행사장은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꼭 그녀의 아버지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찾았을 때처럼.

박정희는 1만 8천여 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을 독일로 보냈다. 그로부터 몇 십 년 후, 박정희의 딸은 대통령이 되었고, 독일에 정착하게 된 파독 광부 혹은 간호사들의 몇몇 자식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이 독일에서 수많은 유령회사를 만들고 자금세탁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16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독일 언론들은 '박정희'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군사독재자'라는 대명사를 붙이고 있고, 그의 딸은 부정부패 대통령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독일 한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왔다면, 박근혜 정권 때는 독일 한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인들이 독일 곳곳에서 촛불을 들었다.

특히 이번 독일 촛불집회 현장에는 젊은층인 20~30대가 많았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한국 사회를 위해 촛불을 드신 파독 광부, 간호사 어르신들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셨다. 또한 1970년대 유신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다 억울하게 한국 입국 거부를 당했던 어르신들 역시 어김없이 촛불을 들어주셨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박정희 정권 때는 동백림 사건으로 독일 교민사회가 발칵 뒤집혔다면, 그의 딸 박근혜 때는 최순실 게이트로 교민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독일에서 데모하기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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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박근혜 1차 퇴진집회에서 시위 참여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 권은비


때문에 11월부터 12월까지 독일에서 진행되었던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의 참가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머나먼 독일 땅에서 이번만큼 많은 한국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

특히 이번 집회 때 나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13년 12월에 박근혜 대통령 부정선거의혹으로 인해 진행되었던 집회 때 내가 썼던 현수막을 2016년 12월 '박근혜 퇴진' 집회 현장에서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참고기사 : 독일 사람들이 묻습니다 "한국은 이상해").

'불법 대선, 불법 대통령 OUT'

자그마치 3년만이다. 현수막의 흰 천은 A씨가 가져오고 붓과 물감은 B씨가, 현수막을 고정할 각목은 C씨가 가져와서 베를린의 한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어설프게 써내려간 글씨였다. 무려 3년이나 지났는데도, 이 현수막의 문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실 독일에서 한국 사람들이 촛불 집회하는 한다는 것은 어설프고 조촐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이곳은 한국과는 달라서 집회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하는 이렇다 할 단체도, 사람도 없다.

다만 그때 그때 집회를 소망하는 몇몇 사람들이 한인 인터넷 사이트나 한인 소셜네트워크에 모임을 제안하면,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진행될 뿐이다. 때문에 집회를 준비하는 모임에는 대표가 없고, 그렇다고 대표가 아닌 사람도 없다. 집회 신고에서부터 홍보, 피켓준비 등등 집회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교민들이 일일이 상의하고, 토론하고, 준비하고, 진행한다.

이곳의 촛불 집회에서 볼 수 있는 피켓들은 깔끔하게 인쇄된 글씨보다는 어설프게 쓰인 붓글씨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베를린에서 진행되었던 박근혜 퇴진 집회의 특징은 집회에 참여하는 다수 참가자들이 집에서 손수 만들어온 피켓들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각자 방안에서 저마다 피켓들을 만들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해보면 이내 마음이 뭉클해진다.

지금 이 순간, 광화문 촛불인 당신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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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박근혜 불법대선 관련 퇴진집회때 썼던 현수막 ⓒ 권은비


또 집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초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각자 가져오거나, 누군가 사비를 들여 사온 초를 보증금 1유로를 받고 나눠줄 뿐이다. 물론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러줄 전인권이 베를린까지 올 리가 없으므로 집회에 참가했던 남학생이 수줍게 노래를 선창하면 남은 집회 참가자들이 따라 부를 뿐이다. 음향 시스템 역시 미약하여 집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며칠 동안 십시일반 돈을 모아 큰맘 먹고 차량을 대여하는 것이 전부다.

또한 가장 중요한 집회신고는 전화 혹은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고, 경찰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집회 기본 정보를 전달하면 끝이다. 이곳에서는 집회를 하는 동안 독일 경찰들이 철저하게 집회 참여자들을 보호해준다. 가령, 아주 드물게 집회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경찰이 바로 나서서 그 사람을 집회 공간으로부터 격리시킨다.

혹은 집회 참가자가 100명 넘을 경우, 행진을 하고 싶다고 경찰에게 전달을 하면 경찰차가 선두로 길을 만들어주고 집회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도로 위를 걸으며 행진하고 구호를 외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도로 행진으로 인한 교통정리 및 시위자 보호는 독일 경찰의 몫이다. 집회가 끝난 후에는 독일 경찰들에게 "츄스!"(Tschüss! : 안녕!)라고 쿨하게 외치면 그들도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200만 촛불 속에서 그 흔한 촛불 파도타기도 못 해봤다는 것은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만큼은 한국에 있는 당신이 정말 부럽다. 나도 촛불집회가 끝난 후, 독일 소시지말고 따끈한 '하야어묵'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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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연금이 매입한 베를린의 소니센터에 입구간판에 한글로 '소니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연금'이라고 써있다. ⓒ 권은비


아참, 독일에 이른바 최순실 타운과 정유라가 있다는 건은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다. 혹시나 베를린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여러분의 노후연금으로 한국국민연금공단이 매입한 베를린 소니 센터를 방문해보시길. 이곳에서 매년 국민연금이 손실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도대체 왜 베를린의 소니센터는 국민연금의 소유가 되었는지도 이번 특검에서 밝혀지길 바란다. 그곳이 한국이건, 독일이건 촛불이 밝혀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

'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이다'라는 말이 있다(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 이 문구가 이전의 박정희 정권 때 적합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촛불 혁명은 하나의 의무이다.'
#촛불시민 #해외 연대 #독일 촛불집회 #베를린 촛불집회 #박근혜 최순실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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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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