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면 난방비 폭탄 맞는다?

[제주와 서울,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중 29] 제주 '난방비 괴담' 정리

등록 2017.01.08 20:44수정 2017.01.0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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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난방, 정확히 말하면 겨울철 난방비에 대한 걱정이다.


단순히 여행지로만 제주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무슨 난방비 걱정을 한다는 거야"라며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제주를 이주지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난방비와 관련된 믿지 못할 괴소문들을 접한 바 있을 것이다.

기름 보일러로 한 달을 따듯하게 보냈더니 난방비만 50만 원이 넘었다든지, 도시가스가 없어 가스비로 평균 30만 원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든지 등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괴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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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마지막 일출을 보기 위해 함덕 서우봉에 관광객들이 몰렸다. 겨울의 한 복판에 서있건만 15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 이영섭


제주 난방비, 정말 그렇게 많이 드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집이 단독이냐 공동주택이냐, 오래된 집인가 아니면 신축인가, 단열은 잘 돼 있는가, 집 위치는 바닷가·중산간·시내 중 어느 쪽인가, 가스보일러를 사용할 경우 사용량 당 단가는 얼마인가 등에 따라 난방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기온에 대해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실부터 말해보자. 지난 2016년 한 해 제주의 평균 기온은 17℃였다. 10월에는 월 평균 기온이 20.3℃였고 12월 동짓날에는 일 평균 기온 18℃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체감적인 부분을 말해보자. 지난 12월 한 달 간 매일 제주시의 온도를 체크해봤더니 아침에는 평균 7~8℃, 낮에는 11~14℃ 정도를 오르내렸다. 물론 그 중간중간 5℃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 제법 쌀쌀한 날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2017년 새해 첫 날에는 아침 기온이 10℃ 이상으로 치솟는 일도 있다. 체감적으로 10℃ 내외의 온도가 유지되다가 가끔 며칠 추워지고, 가끔 며칠은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를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기온이 10℃ 이하로 내려가고 거기에 바람까지 강해지는 날이면 절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강추위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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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바다의 거센 해풍에 꼬득꼬득 말라가는 준치. 이런 날 바닷가를 거닐면 제법 추위를 느낄 수 있다 ⓒ 이영섭


바로 이런 날 단열이 잘 안 되어 있는 집, 혹은 오래된 집, 바닷가나 중산간에 위치한 집에서는 체감 온도가 뚝 떨어지게 된다. 그때부터 좌절은 시작된다. 제주에는 아직 저렴한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 애월항의 LNG도시가스 기지가 완공되는 2019년께가 돼야 본격적인 공급이 이뤄질 예정이다. 결국 제주에서는 LPG가스와 기름보일러를 이용해 겨울을 나야 한다.

공동주택의 경우 단지 내 가스 저장고에 LPG가스를 충전하고 이를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단지 규모와 공급회사 그리고 계절에 따라 사용량(루베) 당 단가의 변동폭이 크다. 보통 100세대 내외 단지의 경우 여름에는 루베당 1500원선에서 시작해 한 겨울에는 2000원 정도까지 가격이 상승한다.

개인적으로 가스(흔히 말하는 가스통)나 등유를 주문해서 사용해야 하는 단독주택의 경우 난방비는 이보다 더 상승할 수밖에 없으며, 단열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사용량에 편차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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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눈이 내린 어느 날,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눈 내린 산책로가 제법 겨울 느낌을 내준다. ⓒ 이영섭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제주시 중산간 초입에 지어진 남동향의 공동주택이며 단지수는 100세대 내외, LPG가스를 사용하며 공급업체와 계약조건은 여름철 사용량당 1600원에서 겨울철 1800원 선을 오간다. 아침 나절 19℃ 정도에서 시작되는 실내 온도는 햇살이 집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22℃까지 올랐다가 다시 밤이 되면 19℃ 정도로 떨어진다. 실내에서는 얇은 옷만 입고 지내기에 아침 저녁으로 난방을 켜서 실내 온도 21℃ 이상을 항상 맞추고 지냈다.

이렇게 해서 지난 12월 한 달 간 사용한 가스는 30루베였는데, 우리 부부 외에 장모님이 10일간 내려와 계셨고, 산책을 자주 해서 거의 애들만큼 씻겨야 하는 견공이 두 마리 있으니 대략 3인 가족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 기준으로 계산해볼 때 LPG공용 난방을 하는 신축 공동주택에서 3인 가족이 12월 한 달 간 사용한 난방비는 30(루베) X 1800원 = 5만4000원이었다. 그 전 달과 전전 달인 10월, 11월에는 그보다도 적은 3만~4만 원가량이었다. 1월과 2월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7만 원대를 넘어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겨울 내내 제주에서 생활한 건 사실상 지난해가 처음이었기에 우리 역시 난방비 폭탄을 걱정했다. 하지만 서울과 비교해 난방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래서 뭐든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섣불리 예측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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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장벽이 제주를 감싸 안았다. ⓒ 이영섭


작은 백미러, 그 안 에 한 폭의 그림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계속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 스트레스를 운동, 쇼핑, 그도 아니면 술·담배 등으로 풀어내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것들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유일한 취미인 여행을 떠나기 위해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막상 주말이 되도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집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할 때도 있었으며, 설사 아무 일이 없다 해도 날씨가 너무 흐려서 외출이 불가능하다든지, 고속도로가 너무 막힌다든지,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다든지 갖가지 방해요소가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주말을 아무것도 못한 채 흘려보내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계속 누적돼 어느새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수준까지 치솟곤 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제주에 살다 보니 그런 류의 방해요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야근이나 주말 출근, 회식 등이 거의 없는 문화도 그렇거니와, 집에서 10~30분 거리에 바다와 산, 휴양림, 관광지가 있으니 목적지까지 길이 막힐 걱정도 필요 없다.

무엇보다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제주의 자연이 몸 속 스트레스가 저절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다는 점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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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반사되어 만들어진 두 개의 태양, 두 개의 구름. ⓒ 이영섭


지난 한 주 동안은 업무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애조로를 계속 왕복해야 했다. 이런 저런 일로 잠을 설쳐 컨디션이 뚝 떨어진 몸으로 차를 몰고 애조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차선변경을 위해 백미러를 흘깃 쳐다보는데 그곳에 제주의 하늘을 담은 작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 작은 거울에 푸른 제주의 하늘과 구름, 그리고 오름이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 나는 지금 제주의 도로를 달리고 있구나. 서울에 살며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에 도달할 때면 마치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날아오고 싶었던 그 제주의 도로를 나는 달리고 있구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항상 상기시켜주는 것, 그것이 내가 제주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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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마지막 일몰은 함덕에서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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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첫 일출은 아부오름에서 맞았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며 ⓒ 이영섭


#제주이주 #일출 #일몰 #난방비 #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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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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