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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싱어>에서 '나가수 꼴찌' 이소라를 떠올린 이유

[리뷰] 오디션 프로그램 8년만에 신선한 포맷 선보인 <팬텀싱어>

17.01.31 14:59최종업데이트17.01.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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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음악 경연 프로그램 속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 예컨대 <슈퍼스타K>의 문을 새로 열어젖힌 장재인과 김지수의 '신데렐라'라든지, '다리꼬지마'라는 희한한 노래로 악동뮤지션이 처음 <K팝스타>에 그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 같은. 그런 순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2011년 <나는 가수다> 속 이소라의 마지막 무대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선택하고 싶다.

이소라는 분명 <나는 가수다>의 무대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사를 낮게 읊조리다가 클라이막스까지 천천히 쌓아가는 노래 구성은 '높게 질러야 살아남는' 경연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았다. 고음을 지를수록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패턴은 회를 거듭해가며 더욱 굳어지게 됐다.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하지 않은 듯 보인다. 이소라는 이전 경연에서 잔잔한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탈락한 상황. 탈락하고 난 뒤 <나는 가수다> 멜버른 특별 공연에서 무대에 다시 선 이소라는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라는 곡을 들고 나온다. 그는 이날 7명의 가수 중 7위를 차지했다. 제 아무리 세기의 대결이라 해도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는 무척 담담하게 '자신의 무대'를 마치고 내려갔다.

자신의 무대를 만드는 일

<나는 가수다>가 방영되던 당시에는 그 순위라는 것이 무척 중요해 보였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남는 건 무대였다. 이소라는 <나는 가수다>에서 두 번이나 꼴찌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순위가 그의 명성이나 음악을 흔드는 일은 없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변함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했고 또 노래했다. 가수 이소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 그가 그 자신으로 선 무대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많이 돌았다. 6년 전 이소라의 무대가 다시 떠오른 건 지난 19일 마지막 생방송 무대를 남겨 놓고 열린 <팬텀싱어> 기자간담회에서였다. 테너 김현수씨는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음악'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게 해준 <팬텀싱어> 제작진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바리톤 박상돈씨도 김현수씨와 비슷한 말을 했다. <팬텀싱어>는 '내가 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이 좋아해줄까 들어줄까, 의문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 혹은 '하는' 음악. 이들은 그 음악을 비로소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났다. 성악곡 때로는 뮤지컬 넘버나 편곡한 가요 같은 '자신의 노래'로 최선의 무대를 만드는 일. 사실 성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성악곡을 부르는 일은 너무 당연하지만 이마저 설 무대가 많지 않은 현실 앞에서 녹록지 않았다. <슈퍼스타K>로 오디션 프로그램 붐이 인 지 8년만이다. 뮤지컬배우 고은성의 말대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사랑할 수 없고 들을 기회가 있어야" 또 다른 기회가 열린다. <팬텀싱어>는 그 기회를 열어주었고 참가자들은 그 기회를 누구보다 잘 받아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당분간 잊히지 않을 무대들을 선보였다. 이들은 그 무대 위에서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었다.

▲ '팬텀싱어' 눈부신 남자들의 하모니 19일 오전 서울 상암동 JTBC사옥에서 열린 JTBC <팬텀싱어> TOP12 참가자 기자 간담회에서 '포르테 디 콰트로'팀의 고훈정-손태진-김현수-이벼리, '인기현상'팀의 유슬기-백인태-박상돈-곽동현, '흉스프레소'팀의 고은성-백형훈-이동신-권서경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팬텀싱어>는 성악, 뮤지컬, K-POP 보컬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실력파 보컬리스트들을 발굴, 국내 최초로 크로스오버보컬 4중창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금요일 오후 9시 40분 방송. ⓒ 이정민


인간의 선의를 믿는 것

'악마의 편집'도 서로 간에 경쟁심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백스테이지 인터뷰'도 없었다. 물론 그럴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팬텀싱어> 참가자들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를 보기 어려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이 했던 것처럼 편집을 했다가는 지우기 어려운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팬텀싱어>가 기존의 음악 경연과 달리 프로그램 안에서 팀을 만들어 경연을 치른다는 점이 더 주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을까.

'남성 4중창'의 오디션, 이는 팀으로 응모할 수 있었던 <슈퍼스타K>와도 다른 방식이다. 랜덤으로 공을 선택해 새로운 사람과 '화음'을 맞추는 것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 4명이 각자 빛나는 것보다 최대한 하나가 돼 빛나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간의 조율이 필수적이다. 2명이 하나의 무대를 만들지만 한 명은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첫 경연에서 '어느 봄날'이나 '카루소' 같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는 곡이 많이 나왔던 이유도 참가자들이 이 프로그램의 특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당락은 상관없고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다는 것. 참가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통적으로 '사람'을 얻었다고 말했다. 서로 화음을 맞추는 일은 결국 사람을 믿고 또 얻는 일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팬텀싱어> 제작진도 참가자들이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경연 프로그램의 잔재미들을 모두 생략했다. 유독 <팬텀싱어>에는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출연자를 두고 웃음을 뽑아낼 수 있는 '예선'도 경연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독설도 없었다. '심사위원'이라는 명칭도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대체됐다. 무대를 보고 단순히 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무대를 '프로듀싱'하겠다는 것. 기존 경연 프로그램의 방정식을 조금씩 깨트리고 그 에너지를 좋은 무대를 올리는 쪽으로 집중됐다. "더 많은 곡을 시청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었지만 한 곡을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김형중 피디의 말에서 참가자들이 쏟는 노력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팬텀싱어>와 함께한 두 달이 28일로 넘어가는 새벽 모두 끝이 났다. 방송 사고에 준하는 생방송 음향 탓에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시즌2가 공언돼있고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활동이 준비돼있는 만큼 앞으로 무대를 지켜볼 일이다. 무엇보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 속 잊지 못할 순간이 늘어난 일이 가장 반갑다. 이제는 조금 다른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건 아닐까.

'포르테 디 콰트로'만이 아닌 다른 두 팀과 앞으로 계속 성악, 뮤지컬, 크로스오버 장르에서 활동할 많은 음악인들을 응원한다. ⓒ 이정민



팬텀싱어 오디션 음악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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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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