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봉실 대표는 '나를 비워내는 사랑'으로 옆 사람의 현실을 철저히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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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자기 가족, 자기 곁에 있던 여공들을 사랑했습니다. 구체적 일상에서 서로를 깊이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험 없는 전(全)관망적 애통은 알맹이 없는 애통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현실을 철저하게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합니다. 옆 사람에게 계속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데 무관심합니다. 왜냐하면 바쁜 일상 가운데 자기에게 매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전태일 열사는 어린 여공들이 먼지 구더기 속에서 하루 평균 14~16시간 노동을 하는 현실을 애통해 했다. 여공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기 옆에 있는 한 사람을 돕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다. 결국 근로기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행동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정신으로 예언자적 삶을 살았다.
최봉실 대표는 전태일과 같이 가까운 관계에서 실질적인 애통을 느끼고 있는지 도전했다.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외면한 채 민족 전체의 아픔을 해결한다고 하는 것은 순간적 감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내 옆의 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예언자적 삶의 시작이다.
박애영(38)씨는 역사 속에서 애통해하며 살았던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필명을 '애통'으로 지었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 '애'와 한국통사의 '통'을 붙여 필명을 만들었다. 그 필명에는 '애(愛) 통(通)'의 의미도 있다고 했다. 결국 사랑이 통한다면서.
나를 비워내는 사랑, 부어지는 상상최 대표는 상상을 하고 꿈을 꾸고 애통하는 목적은 자기를 결국 강화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고 '나를 비우는 것'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비움은 다른 존재를 위한 것이다. 하나의 모습에 고정되려는 나의 관성을 뛰어넘어, 이웃을 위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나를 끊임없이 비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직 한 존재를 위하는 마음을 붙잡을 때, 이 땅을 위하는 마음을 붙잡을 때 상상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상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 상상이 구체적인 꿈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노력의 목표는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주장하려는 마음을 경계하고 겸손하게 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공부입니다. 진정한 공부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만드는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전태일의 삶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옆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공들을 위해 자기 한 몸 불사르는 헌신,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를 비워내는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이 예수가 보여주었던 자기부인의 좁은 길 아니었을까.
"우리가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죽음을 애통해하거나 새로운 미래에 대해 경탄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 210쪽>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장 난 지하철 4호선 이수역에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모임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열차를 타려는 욕망 가득한 내가 보였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채, 앞사람을 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다음 열차를 계속 기다릴까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열차고장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구의역 사고(2016)를 떠올리지 못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가며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던 19살 청년을 벌써 잊었다. 경영효율의 탐욕이 삼켜버린 꽃다운 청년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치욕스럽고 부끄러웠다. 아, 어찌 내 욕망의 민낯이 이것뿐이랴.
예언자적 삶을 계승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 공부모임이 끝나간다. 친일 독재 청산과 남북통일, 외안부 문제를 눈물로 외치셨던 이이화 선생님, 역사교육의 목적이 정의롭게 사는 것과 정의로운 인간을 길러내는 것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김삼웅 선생님, 식민사관을 벗어나 열린 민족주의를 주창하셨던 이만열 선생님의 강의와 삶의 태도를 되새겨본다.
북경의 매서운 추위를 뚫고 누추한 골목을 헤집으며 아(我와) 비아(非我)의 역사를 기록하셨던 신채호 선생님, 민족의 고난 가운데 간절하게 뜻을 붙잡으셨던 함석헌 선생님, 그리고 국치의 역사를 애통해하시며 우리에게 민족의 혼을 불어넣으셨던 박은식 선생님, 그분들의 삶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 이분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예언자셨구나. 그 예언자들의 눈물과 죽음으로 뿌린 씨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꽃이 살아 숨 쉴 수 있었구나. 왜 역사 공부 끝자락에 <예언자적 상상력>을 읽어야만 했는지 이제 알겠다.
역사 속 예언자의 삶을 계승하는 것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사명이다. 더 이상 왜곡된 주류문화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19대 대선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그것은 주류문화를 거슬러 정의와 긍휼이 실현되는 대한민국을 맞이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이다. 나를 비워내는 간절한 사랑으로, 정의와 긍휼이 가득한 대한민국을 상상해 본다. 애통(哀痛)으로 애(愛)통(通)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