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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손부터 드로그바까지', K리그의 이상과 현실

17.02.15 09:21최종업데이트17.02.1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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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축구 '전설' 헨리크 라르손(왼쪽) ⓒ 바르셀로나


지난 2006년 여름 K리그팬들을 무척이나 설레게 했던 '이적설'이 있었다. 스웨덴 국가대표팀의 전설이자 FC 바르셀로나의 일원이었던 헨리크 라르손이 K리그 '명문' 수원 삼성으로 이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기 때문이다.

라르손이 누구인가. 스웨덴 국가대표팀으로 10년 넘게 활약하며, 92경기 출전 35골을 기록한 '전설'이 아니던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16강 독일전을 포함해 전경기 출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나. 특히 '숙명의 라이벌' 잉글랜드와 경기에서는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며 자신의 클래스도 증명했다.

그뿐이랴.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며 2000·2001시즌 35골을 넣었고, 유럽축구연맹 골든슈도 수상했다. 2005·2006시즌에는 바르셀로나의 유럽 챔피언 등극을 도왔던 '전설'이기도 하다. 이런 선수가 K리그와 연결됐다는 자체만으로도 팬들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여기에 바르셀로나와 계약이 종료돼 이적료가 들지 않는다는 점은 팬들의 기대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그는 수원행을 택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위해 고국인 스웨덴의 헬싱보리와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 겨울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임대 신화'를 써내며 선수 생활의 말년을 이어갔다.

K리그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선수를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월드 클래스' 선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도 키우게 했던 '이적설'이었다.

올겨울 제주 유나이티드와 연결됐던 디디에 드로그바 ⓒ 첼시


돈 없는 K리그, '월드 스타'는 여전히 꿈

라르손 이후에도 '월드 클래스' 선수의 K리그 이적설은 잊을 만하면 등장했다. 2016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 "일반인도 다 아는 선수의 영입이 필요하지 않나"란 발언으로 축구팬들을 기대케 했다. 팬들은 네덜란드의 로빈 판 페르시, 브라질의 호나이지뉴와 카카 등 한때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선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행복한 상상에 빠졌었다.

2017시즌을 앞둔 올겨울에도 '빅네임' 이적설이 등장했다. 실제 전쟁을 멈추게 했던 사나이,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축구의 '신' 디디에 드로그바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상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제주는 드로그바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비록 드로그바 에이전트와 구체적인 계약 조건까지 협의했음에도 상대의 입장 표명이 늦어져 협상은 무산됐지만 말이다.

'설'을 '현실'로 바꾸지 못하는 K리그와 달리 중국은 '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일을 연달아 해내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출전, 명문 구단 첼시에서 6년 가까이 머물렀던 하미레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출신 에세키엘 라베치, 리버풀과 첼시 등 빅클럽의 관심을 끌었던 '천재' 알렉스 테세이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스타들이 중국 슈퍼리그를 누비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박지성의 절친이자 제2의 마라도나로 불렸던 카를로스 테베즈가 중국 무대로 향했고, 브라질의 남다른 '재능' 오스카 역시 2017 슈퍼리그를 누빌 예정이다.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 이적이 점쳐졌던 벨기에 '특급' 악셀 비첼도 중국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자본을 앞세운 무분별한 투자는 중국 축구의 성장을 불러올 수 없다' 외치지만, 솔직히 부럽다. 자국 리그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저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현실이.

다시 K리그로 돌아온다. 라르손부터 드로그바까지, 여전히 우리는 이적설에 설레고 실망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나름의 자부심은 있다. 2006년 전북의 우승부터 지난 시즌 전북의 챔피언 등극까지, K리그는 다른 어떤 리그보다도 아시아 챔피언을 가장 많이 배출했다. (2006년 전북, 2009년 포항, 2010년 성남, 2012년 울산, 2016년 전북)

상대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붓고, 발버둥을 쳐도 우리는 흘린 땀방울의 결과만으로 그들과 싸워 이겨냈다. '올 시즌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매해 뒤엎었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부러움'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가 친구의 새 장난감을 부러워하는 아이에게 '너도 그보다 좋은 장난감이 있잖니'를 외치는 모습이랄까.      

사실 기업 투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K리그의 현실에서 '월드 스타'의 영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한 선수에게 '주급 9억 원'을 지급할 수 있는 자본이 없다. 조금 더 냉정하게 보면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매력'도 떨어진다. K리그는 프로야구를 비롯해 각종 축제, 여행, 영화 등 다른 문화 콘텐츠들과 매력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자. 소규모의 자본으로도 아시아 무대를 휘어잡은 능력이 있는 만큼 자본도 끌어모을 수 있다. 네덜란드 리그처럼 좋은 선수를 육성해 팔아 자본을 축적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재미와 매력이 넘치는 K리그를 위해 고민하면, 더 많은 팬들이 지갑을 열지는 않을까.

K리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이뿐이다. 라르손부터 드로그바까지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희망을 위해 나아갈 때 K리그는 지금보다 성장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MLS(미국)나 중국 슈퍼리그처럼 유명한 선수들이 K리그에 '매력'을 느끼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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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디디에 드로그바 헨리크 라르손 중국축구 빅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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