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넷인 나, 젊은이들 가득한 카페에 가다

등록 2017.03.05 20:49수정 2017.03.0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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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대학생 아들이 "엄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세요?"라고 묻곤 했습니다. "너희들 엄마가 되었지 않느냐"라고 하니 "그것 말고요"라며 휑하니 제 방으로 가곤 했는데 정말이지 난 뭐가 되고 싶을까. 선생님, 사업가, 작가 , 화가, 수예가, 디자이너, 회사원, 공무원 등 수도 없이 열거해 보았지만 딱히 되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아니면 잊고 있었는데 없었던 것처럼 살아 왔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이 이 소리를 들었을 땐 서운하고 화가 났습니다. 제 할 일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엄마가 나이 들어 뭐가 할 게 있다고 저럴까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개똥철학을 논하고 문학을 논하고 나름 숨가쁘게 20대 청춘을 아름답고 아프게 보냈던 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니. 나중이 있을 수도 없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당황스럽고 보잘것없고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묻기에 넌 뭐가 되고 싶냐고 되물었더니 잘 모르겠답니다. 심장이 쿵 내려 앉았습니다. 은연중에 내 아들은 무엇이 되어야 함을 잘 알고 그 길로 잘 가고 있으리라 생각했나 봅니다. 어쩜 우리 모두 진정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정확히 모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이루어서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아들에게도 지금껏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만 했지, 정작 무엇이 되어 살고 싶은지 제대로 묻지도 않았고 서로 말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젠 무조건 공부 열심히 하란 말보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고 거기서 성공과 행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여전히 취업이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든 20대 청춘에게 감히 말 할 수 없지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쯤에서 되짚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소설 한 권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였습니다.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집 앞 카페에 엄마도 같이 가요. 동생과 난 거기서 공부하고  엄마는 책 읽고'라고 하기에 따라나섰습니다.

그 후로,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윤동주의 시와 삶을 읊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청춘의 고뇌를 논하던 나의 20대가 그리울 때면 아이들 따라 집 앞 카페로 가곤 합니다. 오늘도 장바구니 안에 책 한 권을 넣고 유리문을 살며시 밀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두들 키보드를 두드리고 화면을 응시한 채 상기되어 있습니다.  막상 와 보니 도서관이나 독서실이 아닌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대학생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왠지 알 것 같았습니다. 조용한 곳은 키보드소리가 거슬릴 수도 있으니까요. 적당한 소음은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끌시끌 말소리에 음악이 섞여 적응이 안 된 난 글 한 줄 읽는데 한 시간이나 걸리는 듯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커피향이 있어 좋고, 음악이 있어 좋고, 젊음이 있어 좋고, 말소리가 있어 더 좋습니다.

가만히보니 노트북이 탁자 위에 있고 이것으로 소통하고 공부하고 스마트폰으로 음료도 사고 모든 게 앉아서 가능합니다. 나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에 신기해 하면서도 나의 뇌 기능은 현대문물에 멀미를 느낍니다. 아무리 배워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이는 답답한 엄마가 짜증이 나서 맘대로 주문할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지만 나를 위한 적당한 커피를 주문해 줍니다. 견과류를 넣은 미숫가루 커피 맛입니다.


'자슥들 잘 해 줄 거면서...' 그러다 문득 왜 이리 뭘 하려고 하고 알아야 되는지, 이 나이에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묻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듣고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것을. 사람마다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다를진데 굳이 이것저것 다 알아야 하고 무엇이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나를 잠깐 접어 두기로 해 봅니다.

컴퓨터가 생기고 언젠가부터 급속도로 세상은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도 종이 책을 읽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웹소설, 웹툰보단 종이 책이 더 읽기 좋고 익숙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머물렀던 시대가 익숙해 새로움을 받아 들이기가 어렵고 거부감이 들기 마련일 듯한데,  나만 그런가요.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가 노트북 위에 눈길이 가 있습니다.

엑셀을 배우고, 기사자격증을 따고, 이것저것 자격증 홍수시대에, 난 아무것도 없습니다.  컴퓨터는 뭔 기능들이그리 많은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로 나에겐 전화와 사진 찍기 기능만 있으면 만사형통인데 여기에 카톡 한 가지만 추가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소통거리가 됩니다. 요즈음은  배우고 익힐 게 너무나 많아서 정보를 간소화하는 도구가 새로이 필요치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노트북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아이들 말로는 홀로그램이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노트북을 대신할 거고 펜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합니다. 상상이 가긴 하지만 만약 그 시대에 내가 존재한다면 여전히 난 그것도 못하는 할머니로 남아 있을 것이고 주책을 떨며 커피를 주문하고 있을 겁니다.

내 뒤쪽 구석자리에 희끗희끗해진 머리에 목에는 털목도리를 두른 노신사 한 분이 물끄러미 창 밖을 보고 있습니다. 한쪽다리를 꼬고 앉은 무릎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젊은이들 틈새에 앉은 나와 노신사.  아날로그와 디지털세대가 공존하는 이 모습도 좋지 않습니까.
#일상 #세상사는이야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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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느낀점을 수필형식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제이름으로 어느곳이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땅한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여기서 여러기자님의 글을 읽어보고 용기를 얻어 한번 지원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김해등님의 글이 자극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이런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실력은 없습니다. 감히 욕심을 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구석엔 이런 분들과 함께 할수 있을만큼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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