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산시 조선족 마을 해방신촌 노인회가 진천군 방문단을 맞아 환영공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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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이상설만주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1879~1910) 의사. 그는 거사 후 뤼순감옥에서 일본헌병의 취조를 받을 때 이상설 선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분(이상설)의 포부는 매우 크며 세계 대세에 밝고 동양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이범윤(1863~?)과 같은 인물 만인을 모아도 이상설 한분에 못 미칠 것이다."(읽기쉬운 이상설 편정·윤병석외)이범윤이 누구인가?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서 의병을 이끌고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로 13도의군을 창설한 주역이다. 안중근 의사는 그런 이범윤 선생 만명을 모아도 이상설 선생 하나에 못미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와 이상설 선생은 어떤 인연이 있을까? 둘은 동의회(同義會)의 멤버였다. 동의회는 1908년 주러시아공사 이범진(1852∼1910) 주도로 결성됐다. 그는 군수금 1만 루블을 아들 이위종(1887∼?)을 통해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있는 독립운동가에게 보냈다. 그리고 1908년 4월에 얀치헤(연추, 煙秋)에서는 최재형(1858~1920), 이범윤, 안중근 등이 발기인으로 나서 동의회를 결성했다.
회장에는 이위종이 선임되었고, 최재형이 총재를 맡았다. 이때 안중근은 동의회 평의원으로 선출됐다. 동의회 결성과정만 보더라도 이상설 선생의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회장을 맡은 이는 이위종이었는데 이위종은 이상설 선생이 헤이그 특사로 파견될 당시 특사단의 일원으로 통역을 맡았다. 동의회의 본부는 얀치헤에 두었고, 블라디보스톡에 지회를 설립했다. 동의회는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활동했다.
1909년 2월 얀치헤에서 안중근을 중심으로 한 12인은 손가락 하나씩을 끊고 동의단지회(동의단지동맹·同義斷指同盟)를 맺고 동의회와 같은 성격의 항일운동단체임을 결의했다. 이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한다고 맹세했다.
당시 연해주에서 발행된 해조신문에 따르면 안중근은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대표로 있는 대동공보<大東共報>를 통해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최재형은 누구인가? 러시아 고려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상해임시정부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이상설 선생과 동의회, 권업회 등을 결성하고 무장독립투쟁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러시아에서 독립투쟁 역사 가이드로 활동하는 조미향 해설사는 "안중근 의사는 최재형 선생이 운영하는 대동공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대동공보 사무실에 머물며 거사 계획을 마련했다. 동의회 등 이상설 선생과의 관계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홀로 실행한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마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미완의 역사공간인 러시아 블리다보스특과 얀치헤. 이곳에서 동의회와 최재형 선생의 족적을 찾다보면 우리는 이상설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 진천군 방문단이 서전서숙 자리에 세워진 중국 옌지(연길) 용정소학교내에 설치된 이상설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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