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서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서울의 좌청룡을 걷다, 낙산 역사트레킹

등록 2017.03.29 14:01수정 2017.03.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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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역사트레킹 성북동 부근을 촬영했다. 성북은 성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 이곳은 한양도성 북악산 구간이다. 하지만 낙산역사트레킹에서는 이 구간을 지나간다. ⓒ 곽동운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에도 좌청룡·우백호가 있다.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이 풍수지리에 의거해 기획된 도시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좌청룡·우백호가 있고,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일단 우백호는 어디일까? 인왕산이다. 경복궁 옆쪽에 우뚝 서 있는 인왕산이 서울의 우백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좌청룡은 어디일까? 낙산이다. 혜화동 뒤편에 나지막하게 서 있는 낙산이 바로 서울의 좌청룡인 것이다.


낙산성곽길 흥인지문 옆 쪽에 복원된 성곽길. 흥인지문 옆쪽 구간은 2015년도에 복원됐다. 예전에는 그 자리에 이화여대동대문병원이 들어서있었다. ⓒ 곽동운


우백호의 위세에 눌린 좌청룡

낙산(駱駝)은 높이가 약 125미터로 키가 작은데 산의 형세가 낙타 등처럼 보인다 하여 낙산 또은 낙타산이라고 불린다. 낙산은 인왕산과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낙산은 좌청룡이기에 우백호인 인왕산과는 필연적으로 '용호상박'을 해야 하는 팔자다. 청룡과 백호의 피할 수 없는 한 판!

'세상을 뒤흔들 세기의 맞대결! 메가톤급 강펀치가 천지를 진동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청룡과 백호의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그 세기의 대결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마감 임박~'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법이다. 저렇게 프로모션을 띄운다고 해도 결과는 뻔하다. 세기의 대결치고 진짜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 거 본 적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서울의 청룡은 백호에게 게임이 안 된다. 체급부터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낙산은 해발고도가 125미터로 338미터인 인왕산에 비해 키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낙산(동), 인왕산(서), 남산(남), 북악산(북)을 묶어 내사산으로 칭하는데 그 내사산 중에서 낙산이 가장 작다. 참고로 북악산은 342미터이고, 남산은 270미터이다.


해발고도가 낮으니 낙산은 산세도 그리 웅장하지 못하다. 이에 비해 인왕산은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돌출된 암반면이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300미터급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다. 

성곽길 성벽과 마을. ⓒ 곽동운


그렇게 우백호보다 기량이 딸리는 좌청룡이었기에 그것을 보완해야 했다. 동쪽에 있는 좌청룡은 남자, 장자를 뜻했다. 이에 비해 서쪽에 있는 우백호는 여자, 차자 등을 뜻했다. 적장자 중심의 왕위계승을 중시했던 조선이었기에 좌청룡에 대한 보완은 분명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는 인왕산 아래에 궁궐을 짓자고 역설한다. 그리고는 궁궐의 방향을 동쪽인 낙산으로 향하게 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이것이 인왕산 주산론이다. 하지만 당시의 실권자였던 정도전 세력들은 인왕산 주산론을 반대한다. 궁궐의 방향을 서쪽으로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이 꺾인 무학대사는 이런 말을 남기며 탄식했다고 한다.

"200년 뒤 경복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희들이 알겠느냐!"

200년 뒤에 조일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경복궁은 잿더미로 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무학대사의 예언이 맞았던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역사트레킹 참가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무학대사 말대로 인왕산 아래에 경복궁이 들어서면 조일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경복궁이 불타지 않았을까요? 풍수지리는 우리민족 정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경도되지는 말자고요. 조상묘를 잘 쓰는 것보다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조상묘 아무리 잘 써도 자기가 노력을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성벽 모자이크처럼 올려진 성벽돌. 각 시기마다 축조된 성벽돌이 달라 모자이크 같은 느낌을 준다. ⓒ 곽동운


동인의 핵심 김효원이 살았던 낙산

낙산은 야트막한 산세 때문에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었다. 또한 숲길이 우거져 있어 낙산 인근에는 별장들이 많았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었던 인평대군이 지은 석양루(夕陽樓)를 비롯하여 18세기에 활약했던 문인 이심원이 지은 일옹정(一翁亭) 등 많은 별채들이 있었다.

명사들도 많이 살았다. 태종의 외손이었던 남이 장군,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동서분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김효원도 낙산 기슭에서 살았다. 김효원의 집이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동인이라고 불렀다. 이에 비해 서인의 거두 심의겸의 집은 지금의 덕수궁 근처라 한양의 서쪽에 있었다. 그래서 심의겸을 따르는 이들을 서인이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단종비 정순왕후(定順王后)도 낙산에 은거해 살았다고 한다. 단종이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배를 떠나고 난 후, 폐서인이 된 정순왕후는 이 산 아래에 있는 청룡사의 승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임을 떠나보냈던 정순왕후는 이 산 동쪽에 있는 동망봉에 올라 매일같이 치성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벽화 이화동 벽화마을 ⓒ 곽동운


낙산 정상에 올라서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낙산은 서울의 안쪽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 중에 가장 키가 작다. 그래서인지 한양도성 낙산 구간은 인왕산이나 북악산 구간보다 훨씬 더 걷기 편하다. 인왕산이나 북악산 구간에는 간간이 급경사 구간이 있지만 이에 비해 낙산 구간은 시종일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선조들에게는 왜소한 좌청룡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성곽길을 탐방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찬사를 받는 것이다.

또한 접근성도 상당히 좋다. 전철역에서 바로 성곽길 트레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에서 하차한 후 흥인지문(동대문)을 둘러본 후 성곽길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것이 낙산트레킹의 큰 장점 중에 하나다.

그렇게 성곽길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이화동 벽화마을도 만날 수 있다. 벽화마을을 탐방한 후 언덕길을 올라가면 낙산 정상부인 낙산공원에 다다르게 된다. 이 곳에 올라 서면 속이 다 시원해질 정도로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무언가 꽉 막혀 있던 것들이 확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낙산 성곽길 한양도성 낙산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가 편하다. ⓒ 곽동운


더불어 한양도성이 어떤 방식으로 내사산을 연결하여 축조되었는지 찬찬히 따져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손에 다 잡힐 듯 북한산이 아주 가깝게 펼쳐져 있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등의 동북쪽 봉우리들뿐만 아니라 보현봉이나 형제봉 같은 남쪽의 봉우리들까지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참가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저 북한산 좀 보세요. 위쪽으로는 살짝 도봉산까지 보이죠? 북한산을 한 눈에 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려면 이 낙산만큼 좋은 곳도 없습니다. 낙산이 키가 작아도 이렇게 참 실하지 않습니까?"

성곽길 낙산 구간이 끝날 무렵에는 동소문이라고 불리는 혜화문을 만나게 된다. 혜화문은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 199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복원됐다.

낙산 역사트레킹은 북악산 성곽길도 걷는다. 그렇게 성북동 인근 북악산 구간을 걷다 와룡공원을 지나고, 북촌의 위쪽에 자리 잡은 삼청공원에서 종료하게 된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떠나기 좋은 계절이 왔다. 하지만 미세먼지니 황사니 하는 것들이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우리가 안 떠날 줄 알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난다. 그렇다. 이번 주말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으로 떠나보자.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낙산 공원에도 올라보고, 걷기 편한 성곽길도 걸어보자. 시원하게 펼쳐진 북한산을 바라보며 인증샷도 찍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낙산으로 봄소풍을 떠나보는 것이다.

혜화문 사진 중앙부 상단에 있는 헤화문.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1994년에 복원됐다. 원래는 사진 하단에 보이는 도로에 있었다. ⓒ 곽동운


◆ 트레킹 참고 사항
1. 교통편: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6번 출구 하차
2. 세부코스: 흥인지문 ▶ 이화동벽화마을 ▶ 낙산공원 ▶ 혜화문 ▶ 와룡공원 ▶ 삼청공원(북촌)
3. 이동거리: 약 8km
덧붙이는 글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cafe.naver.com/trekkingmaster
#낙산 #낙산역사트레킹 #좌청룡낙산 #이화동벽화마을 #낙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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