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신군부-미국 교감 수준, 이 정도라니

팀 셔록 폭로로 되짚어본 광주에서의 미국의 역할

등록 2017.05.26 15:27수정 2017.05.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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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왜곡해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했고, 미국은 이 정보가 왜곡됐음을 알았음에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화면갈무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왜곡해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했고, 미국은 이 정보가 왜곡됐음을 알았음에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언론인인 팀 셔록은 24일 광주광역시 브리핑룸에서 열린 '1979~1980년 미국 정부 기밀문서 연구결과 설명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팀 셔록은 기밀 해제된 미국 국방부 정보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신군부가 "군중들이 쇠파이프 몽둥이를 들고 각 집을 돌며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불 질러버리겠다고 위협한다. 폭도들에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동원방식과 유사하다"는 거짓 정보를 한미연합사의 미국 정보관에게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라는 게 팀 셔록의 주장이다.

전두환씨가 미국의 지원을 얻고자 광주 상황을 왜곡했다는 주장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미국은 광주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과 존 위컴 주한 미군 사령관은 신군부 수뇌부와 자주 접촉했다. 전씨는 미국의 우려를 무마시키기 위해 북한까지 끌어들였다. 돈 오버도퍼는 <두 개의 한국>에서 전씨의 행태를 아래와 같이 적었다.

" (전략) 5월 13일, 전두환은 뜬금없이 '북한 카드'를 내밀었다. 그는 위컴에게 학생시위의 '배후'엔 평양이 있으며 북한의 대남 공격이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위컴은 전두환이 북한의 남침 의혹을 강조한 것은 청와대 입성을 위한 구실처럼 보인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위컴의 예측대로 전씨는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5.18을 발판삼아 청와대에 입성했다. 신군부가 광주 시민에 대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에 거짓 정보를 흘렸고, 미국은 신군부의 의도를 간파했음에도 묵인했다는 점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광주에서 국면전환 시도한 카터

이 대목에서 핵심은 왜 미국이 전두환의 부상을 수수방관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는 도덕 외교를 표방했다. 그는 특히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에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고,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런데 그의 외교 노선은 1980년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 그리고 뒤이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이 두 사건은 미국 패권의 균열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다. 카터의 재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이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남겼다. 돈 오버도퍼는 미국 측이 명실상부한 실력자로 떠오른 전두환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고 적었다. 전두환을 압박했다가 이란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전두환씨는 미국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은 박정희 정권을 강도 높게 압박했고, 무엇보다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시키려 했다. 전씨는 이 같은 사실을 적극 부각시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려 했다.

미국으로선 난감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이나 존 위컴 모두 전씨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씨와 첫 만남 뒤 그를 "절대 신뢰할 수 없고 양심도 없고, 잔인한 데다가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이 심각한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남한의 불안 상황을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계엄군의 진압이 쓸고 간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에서 오간 내용은 이랬다.

"최 급선무는 남한 정부가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후로도 광범위한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무력사용은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에 대다수가 합의했다. 또한, 질서 회복 후 미국이 남한 정부, 특히 군부를 압박해서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미 의견이 일치됐다." -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에서 재인용 

미국은 '무력사용 최소화'라는 전제조건을 붙였지만, 결국 무력사용을 용인했다. 즉,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광주의 '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단 말이다. '군부를 압박해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강력히 요구한다'는 대목은 어처구니없다. 돈 오버도퍼가 지적했듯 신군부가 부상하자 미국은 제2의 이란 사태를 우려해 몸을 사렸다. 그런 미국이 군부를 압박한다고? 미국의 입장은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드러난다. 미국이 한반도에 적극 개입한 이래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의 국익에 따라 요동쳤다. 그런데 슬프게도 정작 미국은 한반도의 정치적 장래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탁상공론식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재단했고, 그때마다 이 땅의 주인인 한민족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광주는 이런 한반도의 운명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신군부와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교감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팀 셔록은 "미 군사 정보기관은 특수부대가 만약 필요한 상황이라면 5월 21일 발포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근거로 제시한 기밀 해제 문건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어 추가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동안 미국이 전두환을 사주했다는 식의 음모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5.18을 둘러싼 저간의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미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게 사실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팀 셔록이 공개한 비밀문건 분석 내용은 신군부와 미국 사이의 교감을 규명할 단서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미국은 항공모함 칼 빈슨호를 한반도에 보내 군사적 긴장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보건데 1980년 광주에서나 지금이나 미국에게 한반도의 주인인 한민족의 운명은 관심 밖으로 보인다.

한국정부, 특히 지난 9년간 집권했던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제 더 이상 이 같은 굴욕외교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구나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와 미국 사이에 교감이 있었다는 근거가 공개된 이상, 미국을 추종하다시피 하는 외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이른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일변도의 외교 역시 적폐 중 하나라고 본다. 부디 새 정부가 팀 셔록의 폭로를 미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로 삼아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했습니다.
#팀 셔록 #신군부 #전두환 #광주민주항쟁 #지미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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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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