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에서 성행위하면 징계, 집에서 하면 징역?

군사법원 판사 출신이 본 '군형법 제92조의6'... 동성애 혐오에 형사처벌 규정 악용

등록 2017.06.03 13:20수정 2017.06.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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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과연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 중 이성간의 행위는 군 기강이나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동성간의 행위만 문제되는 것이 맞는가.

과연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 중 이성간의 행위는 군 기강이나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동성간의 행위만 문제되는 것이 맞는가. ⓒ sxc


제92조의6(추행)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최근 군의 동성애자 색출 수사 사건으로 인해 군형법 제92조의6가 또 다시 뜨거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필자는 2008년 8월 육군 제22사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의 일원으로서 군형법 제92조의6(당시는 제9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한 사실이 있어 최근의 논쟁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필자가 경험한 군형법과 관련 사례들을 바탕으로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잘못된 주장 ①] 군대 내 동성애 허용되면 내 아들 군대 안 보낸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논쟁적인 이슈이지만, 동시에 그 논쟁의 초점이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달라서 합리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슈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몇 가지 잘못된 쟁점 설정은 배제할 필요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형법 제92조의6을 동성애 금지조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군대 내 동성애가 허용되면 내 아들 군대 안 보낸다'와 같은 류의 주장이 바로 그러한데, 우리 현행법상 동성애자도 의무복무를 해야 하고, 장교나 부사관으로 임관하고 복무하는 데 결격사유가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동성간의 성적 행위'만을 규율하는 규정이기 때문에, 동성애 허용 여부라는 쟁점은 전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방부와 군 또한 공식적으로는 군형법 제92조의6이 동성애 자체를 차별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국방부 훈령인 '부대관리훈령'(국방부 훈령 제1483호) 제4편 제6장에서는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라는 표제 아래 여러 규정을 두고 있는데, 제259조는 "이 장은 병영내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동성애자 병사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함으로써 군의 전력 향상과 복무수행의 능률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60조 제1항은 "병영 내 동성애자 병사는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하며, 동성애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평등대우를 명시하고 있다.

결국 '군대 내 동성애가 허용되면 내 아들 군대 안 보낸다'와 같은 주장은 현행법과 맞지 않으며, 군형법 제92조의6에 기대어 자신의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주장 ②] 제92조의6 폐지하면 군대내 성폭력 처벌할 수 없다?


군형법 제92조의6과 군대내 성폭력 문제를 연결시키는 주장 역시 매우 악의적인 무지에 해당한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군인간의 '합의된' 성적 행위만을 처벌대상으로 하며, 군대내 성폭력은 군형법 제92조~제92조의5, 제92조의7, 8 및 성폭력처벌법이나 일반 형법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한다고 하여 성폭력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군형법 제92조의6과 군대내 성폭력을 결부시키는 주장을 '악의적 무지'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군형법을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군대내 성폭력을 처벌하는 다른 규정들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지금까지의 논쟁 과정에서 성폭력 처벌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무수히 지적되었음에도,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전혀 수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인식의 이면에는 동성애자를 동성간 성폭력의 유력한 가해자로 간주하는 또 다른 편견(사실로 확인된 바 없고,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되는 조사결과만 존재한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악의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군대라는 특성상 계급 차이에 기반한 은밀한 성폭력이 '합의에 의한 행위'로 둔갑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주장은 그나마 고려의 여지가 있기는 한데, 현행법상 성폭력 처벌 규정에 의하더라도 그러한 성폭력은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으므로, 역시 군형법 제92조의6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성폭력에 대한 처벌의지만 있으면 기존 조항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데, '합의에 의한 행위'까지 처벌하는 규정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것은 형벌법규의 남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동성군인간의 합의된 성적 행위는 기강 침해하는 불법행위인가?

군형법 제92조의6 논쟁에서 위에서 살펴본 동성애 허용이나 군대내 성폭력과 같이 실제로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가짜 쟁점을 제거하고 나면, 과연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가 군의 기강이나 전투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성간의 행위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동성간의 행위만 문제되는 것이 맞는지, 그러한 행위를 반드시 형사처벌로 규율해야 하는지 등의 쟁점이 남게 된다.

'군의 기강'이나 '전투력'의 개념이 원래 추상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동성군인간의 합의된 성적 행위가 어떤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는지 알기 어렵다. 단지 동성애에 대한 혐오적 감정을 '군 기강이나 전투력 침해'로 포장하여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실제로 군형법 제92조의6이 적용된 사례에서 문제된 행위로 인해 해당 부대의 기강이나 전투력이 어떻게 침해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전혀 없다. 그냥 막연하게 전투력 등이 침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만 있는 상황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앞서 연구를 진행한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참고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 법원은 Smith and Lustig-Prean 사건에서 동성애 행위가 '작전에서의 효율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군의 고려가 "오로지 이성애자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러한 부정적인 태도는 동성애에 대한 적대심의 표출로부터, 동성애 동료의 존재에 대한 불편함의 막연한 표출에 이른다고 보았다.

군대 내 동성애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경우, 동성애자의 존재로 인해 전투능력 및 부대의 단결에 해를 입힌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으며,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상정하여 보자. 군인이 서로 휴가 중에 집에서 성행위를 한 경우와 해외 파병부대 내에서 성행위를 한 경우 중 어떤 행위가 군의 기강과 전투력에 더 영향을 미칠까? 같은 계급의 병사 두 명이 휴가를 나가 집에서 성행위를 한 경우는 실제로 군형법 제92조의6(당시는 제92조)이 적용되어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 내에서 남녀 장교가 성행위를 한 사안은 징계로만 처리되었다. 똑같은 항문성교라도 동성군인이 집에서 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이성군인간에는 서로 배우자가 있는 불륜관계이든, 직속 지휘관계에 있는 경우이든, 부대 내 중요시설에서 성행위를 하였든 상관없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군대 내에서 남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여자는 장교나 부사관만 있기 때문에 남성간 성적 행위의 확률이 훨씬 높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나, 확률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의 행위만을 처벌하고 다른 한 쪽은 완전히 처벌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어려우며, 특히 그러한 행위가 실제로 군의 기강이나 전투력에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면 확률이 낮더라도 당연히 처벌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동성애 혐오 표출 근거로 활용되는 군형법 제92조의6

a 취재기자 손목, 힘으로 제압하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논란에 휩싸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5월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동성애자 색출 지시한 것 맞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손목을 힘으로 제압하고 있다.
이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장 총장에게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냐”며 “차별주의자 장준규는 물러나라”고 항의했다.

취재기자 손목, 힘으로 제압하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논란에 휩싸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5월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동성애자 색출 지시한 것 맞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손목을 힘으로 제압하고 있다. 이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장 총장에게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냐”며 “차별주의자 장준규는 물러나라”고 항의했다. ⓒ 유성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성애가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알게 되었고,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살아가겠습니다." - 동성군인간의 합의된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당시는 제92조)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군사법원에서 한 최후 진술 중 발췌

군형법 제92조의6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의 기강과 질서, 전투력 보존, 군대 내의 성폭력 위험 방지 등을 주장하지만, 그 내심은 사실 동성애자들의 위와 같은 '항복선언' 또는 '전향선언'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번 동성애자 색출 사건은 처음부터 동성애자인 군인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아서 군인과의 성적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한 것으로서 명백하게 동성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군형법 제92조의6은 '공식적으로는' 동성애 처벌이나 차별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설명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동성애 혐오를 표출하고 지지하는 중요한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정점인 형사처벌 규정을 동성애 혐오의 근거로 활용하는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서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군형법 제92조의6이 적용된 사례 중 처음으로 동성애자를 계획적으로 색출하여 수사한 이번 사안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논쟁이 필요한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경환 변호사는 군인권센터 운영위원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6 #동성애 #혐오 #색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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