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주원장 초상화. 위키백과 중국어판은 이 사진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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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세우기 전에 주원장은 머리를 깎고 탁발승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신하의 글에 빛 광(光)자나 민머리 독(禿)자만 있어도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는 신하를 처벌했다. 자기를 조롱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문구를 집어넣었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도 격분을 터뜨리는 주원장이 정도전의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격노하는 게 당연했다. 그는 보복의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가 조선이 보낸 외교문서를 핑계 삼아 1395년부터 본격적으로 정도전을 괴롭혔다. 문서에 불경한 내용이 있으니 정도전을 자기한테 보내라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이 불경한지는 밝히지 않았다. 무조건 정도전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정도전은 가지 않았다.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주원장은 이성계에게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음력으로 태조 6년 4월 17일자(1397년 5월 14일자) <태조실록>에 따르면, 그는 조선 사신을 통해 보낸 메시지에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주원장은 "이아무개는 분별력이 없다"며 이성계의 판단력을 깎아내리더니 "정도전 같은 자를 써서 무엇을 할 것이냐?"며 이성계와 정도전을 이간시키려 했다. 또 정도전이 1392년에 산해관에서 했던 말도 거론하며 불쾌감을 표했다. 주원장도 기황후처럼 대국 지도자답지 않게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버럭'의 결과... 패배하거나 속 끓거나중국 춘추시대 정치가인 관중의 사상을 정리한 <관자> 주합편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있어도 성을 내서는 안 된다"며 "이는 분노를 억제해야 일을 빨리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성을 내서 일을 빨리 이루려 하면 …(중략)… 재앙이 반드시 몸에 미친다"라고 설파했다.
지도자도 때로는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때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출되는 분노는 <관자>의 표현대로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기황후도 그랬다. 반대파가 자기 아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기황후는 공민왕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엉뚱한 아들한테 화를 낸 뒤 1364년에 1만 군대를 고려에 파견했다. 공민왕 정권을 전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반대파와의 투쟁에 총력을 기울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고려를 상대로 불필요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결국 기황후가 보낸 군대는 고려군에 패배했다. 지도자의 분노로 일을 그르쳤던 것이다. 4년 뒤인 1368년, 기황후는 중국 본토를 잃고 아들과 함께 몽골초원으로 도주했다. 이로써 몽골은 2류 국가로 추락하고 말았다.
주원장의 경우에도, 일이 잘됐다고 볼 수 없다. 지속적으로 정도전의 신병을 요구한 일로 인해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양국은 무역분쟁을 겪었고, 정도전은 만주 정벌 즉 요동 정벌까지 추진했다.
북경에 근거지를 둔 황자 주체 때문에 남경에 있는 황제와 황태손의 힘이 만주까지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정도전의 군대가 만주로 진출했다면, 명나라는 존망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 주원장의 격노가 하마터면 명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것이다.
1398년에 정도전이 친(親)명나라파 이방원에게 살해되는 바람에, 조선군이 만주를 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나라의 위기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원장은 정도전의 부고를 들을 수 없었다. 정도전에 대한 분노로 속을 끓이다가, 정도전이 죽기 3개월 보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기황후나 주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대국의 지도자였다. 대국 지도자는 가급적 감정을 감춰야 한다. 화를 내더라도 중용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대단한 용기로 알고 그것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관자> 법금편은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왕(聖王)들이 금지하는 바였다"라고 짚는다.
중용을 갖추지 못하고 욕설까지 수반되는 무분별한 분노의 표출은, 기황후나 주원장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국 지도자 개인이나 대국 전체에 결코 이롭지 않다. 대국의 무분별한 격노는 다른 나라들의 불안과 경계심을 조성하고, 그 나라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국의 분노는 대국 자신에 이롭지 않다. 그런 분노의 말을 상대방 나라 국민들의 귀에 일부러 넣어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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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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