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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받았어요" 인생에서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리뷰]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의 로맨스 영화 <내 사랑>

17.08.01 14:14최종업데이트17.08.0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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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AUD)


가족이 때로 남보다 못한 경우가 왕왕 있다. 사업한다고 집안의 돈을 다 말아먹는 오빠, 학대하는 부모, 자식의 삶에 매사에 간섭하고 대신 결정하려 드는 부모, 늙은 부모의 등골만 쏙 빼먹고 버리는 자식 등 세상에 얼마나 흔한가.

캐나다 노바 스코샤(Nova Scotia)의 작은 마을에 사는 모드 루이스의 가족 역시 그렇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집을 팔아 버리고 동생을 숙모 집으로 쫓아버린다. 젊은 여자인 모드는 그렇게 숙모의 감시하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살아야 한다. 게다가 모드는 다리를 약간 절고 어눌한 말투를 보면 머리도 좀 '모자란'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한편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자유로우며 여느 젊은 여자들처럼 건강한 욕구를 가졌다. 주말이면 종종 클럽에 나가 맥주를 마시고 춤을 춘다. 같이 추자고 손을 내미는 남자는 없지만 혼자서 몸을 들썩인다.

원작 제목이 'Maudi'인 영화 <내 사랑>은 캐나다의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에 대한 작품이다. 나는 가히 최고의 배우라 할 수 있는 에단 호크에서 이끌려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로맨스 그 이상이었다. 영화 제목이 한국에서는 '내 사랑'으로 바뀌어 관계가 깊어지고 사랑이 익어가는 데에 방점이 주어지지만, 나는 모드가 자기 삶을 어떻게 대면하고 의연하게 살아가는지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세심하고 차분하게 모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모드가 일자리를 찾아 집을 뛰쳐나가고, 더 물러날 곳이 없으므로 굴욕을 버티며 일을 하기 시작하고, 차차 자리를 잡고 또 자기 그림도 그리기 시작하는 것, 우연히 그녀의 그림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차차 팔려가고 유명해지는 것, 남자와 서서히 끓어오르는 뚝배기처럼 정이 깊어지는 것, 서로의 약점과 아픔을 하나씩 헤아려가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 끝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영화를 보며 사람을 진정으로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한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조차 진정으로 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크건 작건 계산기를 두드리며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고, 나는 그에 비해 얼마를 내어주고 있는지 따져보지 않던가. 모자란 듯한 여자와 고아로 자란 남자는 서로를 진정으로 대하기에 더욱 존엄해 보인다. 어쩌면 모드와 에버렛은 세상과 고립된 통나무집에서 단둘이 살기에 훼방 없이 온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사는 오두막은 무인도 같기도 하고 파라다이스 같기도 하다.

그들의 관계는 통나무집에 찾아오는 이들에 이해 조금씩 달라진다. 먼저 모드의 그림을 알아봐 주는 산드라가 있다. 모드가 그녀의 세계를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면, 그녀만의 세계를 그녀 바깥의 세상으로 연결해준 것이 산드라이다. 산드라가 없었다면 모드는 죽을 때까지 시골 아낙으로 조용히 잊혔을 것이다. 인생에서 당신을 알아줄 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한편 우리도 이 생에서 다른 누군가를 알아 채줄 사람이 되는 것도 근사하지 않을까.

모드가 좀 유명해지자 그녀를 버렸던 오빠도 찾아온다. 돈 냄새를 맡고 온 것이다. 명성을 얻고 나서 모드와 에버렛 사이에 균열이 좀 생기기도 했는데, 오빠를 내칠 때 그들은 한 팀으로 뭉친다. 이후 모드는 또 숙모와도 재회하는데, 숙모를 통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들은 조용히 늙어간다. 어느 날, 모드가 남편에게 말한다. 개를 몇 마리 더 키우는 게 어떠냐고. (둘이 처음 만난 시기에 에버렛은 모드에게 집을 지키기엔 개들이 당신보다 더 낫다고 소리 지른 적이 있다) 차분히 죽음을 기다리는 모드에겐 남겨질 남편이 걱정이다. 에버렛은 탄식한다. 나는 왜 당신이 좀 모자란다고 생각했을까!
모드의 그림에는 화려한 색채의 꽃과 나비, 사슴과 고양이, 여자와 남자가 담겨 있다. 동화 속 세상처럼 맑고 투명하고 눈부시다. 그리 녹록하지 않은 거친 삶이었는데 그녀가 보는 세상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그녀는 자기 삶의 모든 걸 다 그림 프레임 안에 담았다고 말한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모드가 에버렛에게 말한다.

"나는 사랑받았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떠나는 모드도 남은 에버렛도 행복한 추억을 간직할 것이다. 모드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찬란한 생의 모든 순간을 말이다.

ⓒ 오드(AUD)



내 사랑 모드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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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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