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푸근한 옛담 삼지내마을 옛담 고샅은 깊습니다. 마을사람들 성정과 어울려 성난 우리를 치유해줍니다.
김정봉
다시 이오덕 선생의 글과 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글은 말에서 나왔고 말은 생각에서, 생각은 삶에서 나온 것이므로 삶이 곧 말이요 글이라는 것이죠. 글 다음이 뭘까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단지 글을 엮은 것이므로 책은 글에서 나온 것이죠. 삶→생각→말→글→책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 언젠가 모르게 이게 뒤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 글을 지배하고 글이 말을 지배하여 책→글→말→생각→삶으로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쓸 글이 없는데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는 않은지 요? 기자나 전문작가는 물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억지 글쓰기'를 잠시 미루고 열심히 취재하고 일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가꿀 때 할 말이 생기겠죠. 그때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거겠죠.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책이 오염되고 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강박에서 해방되려면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책을 쓰지 말고 글을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가려서 말하듯 '말이 되는 글'을 써야겠지요.
그 다음은 출판사의 선택에 달렸겠죠. 그들의 품에 안기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 생각할지모릅니다. 그러나 그동안 글을 쓰며 잘 몰랐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생각보다 많은 출판 관계자가 내 글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잘 팔릴 만한 책을 선호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글감이 좋아 책을 내고 싶어 하는 '훌륭한' 출판 관계자가 많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잘 팔리지 않은 대가는 출판사 대표와 내가 감당해야 할지모릅니다. 이때부터 출판사와 나는 '운명'을 함께 합니다. 이런 출판사는 꼭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과 절박감까지 생깁니다. 내 책도 제목으로 짐작을 했겠지만, 잘 팔리지 않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말주변 없는 내가 라디오 인터뷰까지 응하였으니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글쓰기를 계속하다보면 책으로 엮일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 속에 다음 책은 없습니다. 현재 연재하고 있는 '굴뚝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대로 숨어 있는 한국미를 찾아 떠날 겁니다. 꽃담, 꽃문, 옛다리, 옛길, 유물에 담긴 한국인의 얼굴, 정자, 서원, 원림.
초봄 새벽녘 부안 내소사 대웅전 꽃문에 홀린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나 일 것입니다. 한여름 한낮 소나기가 지나간 뒤, 무지개가 걸려있는 고성 건봉사 무지개돌다리(홍예)를 보며 땀을 훔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반갑게 맞아주길 바랍니다.
어둑어둑한 가을 어느 날, 어머니 닮은 경주 남산 부처골 감실불상을 보고 어깨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가 있다면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주길 바랍니다. 동짓날 아침, 해남 대흥사 천불전 꽃담을 보며 넋을 놓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나무라지 말고 먼저 다가와 인사말이라도 전하길 바랍니다.
▲추천하고 싶은 옛담 남사마을은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불립니다. 마을 옛집의 고매(古梅)에서 뿜어내는 매화향 가득한 봄에는 남사를 따라올 마을이 없지요. 나무 밑을 지나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는 몸 섞은 나무는 덤입니다.
김정봉
오래된 마을 옛담 이야기 - 세월의 흔적을 따라가는
김정봉 지음,
네잎클로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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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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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맨으로 산 지 20여 년, 쪽 잠 자듯 떠난 '쪽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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