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 만개한 곳, 절집이야 옛집이야?

전남 곡성 성륜사

등록 2017.08.11 15:43수정 2017.08.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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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진 성륜사 벽련당 풍경. 벽련당은 구례군 마산면에서 옮겨 온 옛집이다. 명원 주지스님의 거처로 쓰이는 요사다.
▲ 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진 성륜사 벽련당 풍경. 벽련당은 구례군 마산면에서 옮겨 온 옛집이다. 명원 주지스님의 거처로 쓰이는 요사다. 이돈삼

요즘 도로변에서 많이 눈에 띄는 게 배롱나무 꽃이다. 진분홍빛 꽃이 피고 지고를 되풀이하면서 '화무백일홍'을 연출하는 꽃이다. 배롱나무 꽃을 생각하면 담양의 명옥헌원림을 빼놓을 수 없다. 연못에 반영되는 진분홍 꽃너울이 황홀경을 연출하는 누정이다.

여기에 버금가는 곳이 있다. '섬진강 기차마을'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설령산 성륜사다. 배롱나무 꽃이 옛집과 어우러져 피었는데, 그 풍경 멋들어진다.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아 호젓해서 더 좋다.


오늘이라도 성륜사에 가면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어 꽃너울을 이루고 있는 풍경과, 꽃잎이 떨어져서 바닥에 수북한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성륜사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때도 일 년 중 지금이다.

 앞마당에 잔디가 깔린 성륜사 대웅전 풍경. 건물의 꽃살문이 아름답다. 청화 큰스님이 쓴 주련도 한몸을 이루고 있다.
▲ 앞마당에 잔디가 깔린 성륜사 대웅전 풍경. 건물의 꽃살문이 아름답다. 청화 큰스님이 쓴 주련도 한몸을 이루고 있다. 이돈삼

 성륜사 벽련당 전경. 명원 주지스님의 거처로 쓰이는 요사다.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져 옛집의 기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 성륜사 벽련당 전경. 명원 주지스님의 거처로 쓰이는 요사다.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져 옛집의 기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돈삼

성륜사는 오래 된 절집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에 중창불사를 시작한 절집이다. 하루에 한 끼를 공양하면서, 40여 년 동안 눕지 않고 좌선을 했던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실천했던 청화(1924∼2003) 큰스님과 남종화의 거목 아산 조방원(1926∼2014) 선생의 인연으로 불사를 한 절집이다. 절터도 예부터 '절골'로 불리던, 고려시대에 나암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서 있다.

성륜사는 아산이 절터 3만3000㎡를 청화스님에게 시주하면서 당우를 하나씩 짓기 시작했다. 경내에는 지난 2003년 입적한 청화스님이 주석했던 조선당이 있다. 대웅전, 지장전, 적멸보궁도 들어서 있다.

당우도 당우지만, 성륜사에서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따로 있다. 육화당, 안심당, 벽련당이다. 1920년대에 지리산 자락 구례에 지어졌던 집이 고스란히 옮겨왔다. 옛집의 사랑채였던 육화당과 안채였던 안심당은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에 있던 국포 김택균(1872∼1945)의 집이었다. 아산 조방원이 구입해서 여기로 옮겨와 예술활동 공간으로 쓰다가, 성륜사에 시주해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예술공간에서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한 육화당·안심당·벽련당


 성륜사 안심당 전경. 1920년대에 구례에 지어졌던 집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국포 김택균의 안채였다. 민가였던 집이 이곳으로 옮겨와 예술활동 공간으로 쓰이다가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성륜사 안심당 전경. 1920년대에 구례에 지어졌던 집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국포 김택균의 안채였다. 민가였던 집이 이곳으로 옮겨와 예술활동 공간으로 쓰이다가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돈삼

 성륜사 육화당 전경. 1920년대 구례에 지어졌던 옛집의 사랑채를 고스란히 옮겨왔다. 국포 김택균의 민가에서 예술활동 공간으로, 또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성륜사 육화당 전경. 1920년대 구례에 지어졌던 옛집의 사랑채를 고스란히 옮겨왔다. 국포 김택균의 민가에서 예술활동 공간으로, 또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돈삼

흥미로운 건 또 있다. 옛집의 주인 김택균은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을 했던 인물이다. 고아원(홍제원)을 운영했었다. 출산을 한 주민에게는 쌀과 미역을, 상을 당한 사람한테는 옷감과 나무관을 보냈다. 화재나 풍수해를 입은 주민도 도왔다.

이 집이 구례에서 곡성으로 옮겨진 뒤에는 아산에 의해서 예술 창작과 후학 양성공간으로 활용됐다. 소유자가 절집으로 바뀐 뒤에는 중생 구제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성륜사의 연못 정원과 어우러진 육화당 풍경. 진분홍색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져 옛집의 멋이 한껏 붇어난다.
▲ 성륜사의 연못 정원과 어우러진 육화당 풍경. 진분홍색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져 옛집의 멋이 한껏 붇어난다. 이돈삼

사회 구제도, 문화 향수도, 중생 제도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정신이다. 이 집은 현재 근대문화재로 지정 신청돼 있다. 이 건물로 인해서 절집의 분위기가 다른 데와 차별화된,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마음의 고향 같은 옛집 육화당과 안심당, 벽련당을 배경으로 배롱나무 꽃도 지금 활짝 피어있다. 특히 육화당과 안심당 앞 연못정원에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어 옛집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다. 연못에 꽃잎 떨어진 풍경도, 연못에 비친 하늘도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다.

 진분홍색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진 성륜사의 잔디마당. 한쪽에 세워진 미술조각품도 성륜사의 품격을 높여준다.
▲ 진분홍색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진 성륜사의 잔디마당. 한쪽에 세워진 미술조각품도 성륜사의 품격을 높여준다. 이돈삼

 성륜사의 연못정원에 내려앉은 진분홍 배롱나무 꽃. 그 사이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 성륜사의 연못정원에 내려앉은 진분홍 배롱나무 꽃. 그 사이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이돈삼

부근에 가볼만한 데도 많다. 성륜사 옆에 전남옥과미술관이 있다. 아산 조방원의 미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첫 의병장이었던 월파 유팽로(1554∼1592년)의 태생지도 가깝다. 전북 순창과 도계를 이루고 있는 곡성군 옥과면 합강마을이다.

유팽로는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의 의병장이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바로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 양대박과 함께 호남연합의병을 결성하고 금산전투에 참가했다. 유팽로는 이 싸움에서 39살의 나이로 전사하지만, 들불처럼 일어나는 호남의병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합강마을에 유팽로가 의병을 일으키는 모습과 의병 훈련, 금산전투 장면을 담장 벽화로 그려놓았다. 유팽로와 그의 부인 원주 김씨를 기리는 제각, 정열각도 있다. 1604년(선조 37년) 왕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옥과교회, 성경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이수정 선교사가 다녔던 곳

 옥과미술관 전경. 아산 조방원 선생의 미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성륜사와 한몸을 이룬다. 절집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 옥과미술관 전경. 아산 조방원 선생의 미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성륜사와 한몸을 이룬다. 절집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월파 유팽로가 나고 자란 곡성 합강마을 풍경. 마을 담장에 유팽로가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전투에 참가했던 모습 등이 담긴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월파 유팽로가 나고 자란 곡성 합강마을 풍경. 마을 담장에 유팽로가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전투에 참가했던 모습 등이 담긴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돈삼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도 옥과에 들렀다.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은 구례에서 곡성, 순천, 보성, 장흥을 거쳐 명량대첩 현장인 울돌목으로 이어진다. 그때 옥과현에 들렀다. 당시 옥과는 남원을 거쳐 전주, 한양으로 가려던 일본군의 길목이었다.

몇 해 전까지 옥과면사무소가 있던, 지금은 공용주차장으로 변한 설산정 자리에 옥과현청이 있었다. 이순신은 당시 옥과현청의 곡식창고와 병기고를 접수하려고 했지만, 이미 비어 있었다. 대신 흩어지던 병졸들을 수군으로 입대시켰다. 구례에서 군관 9명과 병사 6명으로 시작된 조선수군이 구례, 곡성을 거쳐 옥과에서 80여 명으로 늘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다.

함허정과 군지촌정사도 옛 유림들의 공간이었다. 입면 제월리에 있는 함허정은 1543년(중종 38년) 심광형이 지역 유림들과 시단을 논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심광형은 광양, 곡성 등지의 사학에서 교육을 관장하는 훈도를 지냈다. 함허정 옆에 있는 군지촌정사는 심광형이 1535년(중종 30년) 후학을 위해 세운 글방이다.

 의병장 월파 유팽로 정열각.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월파 유팽로의 충절과 그의 부인 김 씨의 행적을 기리는 제각이다. 곡성 합강마을에 있다.
▲ 의병장 월파 유팽로 정열각.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월파 유팽로의 충절과 그의 부인 김 씨의 행적을 기리는 제각이다. 곡성 합강마을에 있다. 이돈삼

 옛 옥과현 관리들의 공덕비. 몇 해 전까지 옥과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던, 지금은 공용주차장으로 변한 설산정 자리에 세워져 있다.
▲ 옛 옥과현 관리들의 공덕비. 몇 해 전까지 옥과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던, 지금은 공용주차장으로 변한 설산정 자리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종교 성지도 있다. 1827년 정해박해의 진원지가 곡성이다. 정해박해는 을해박해(1815년)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도들을 다시 한 번 핍박한 사건이다. 천주교도들이 갇혔던 당시 곡성현청의 감옥 터에 곡성성당이 들어서 있다. '옥터 성지'로 통한다. 성경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이수정 선교사가 다녔던 옥과교회도 있다.

증기기관열차와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도 곡성에 있다. 도림사와 태안사 계곡도 좋다.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도깨비마을과 목화공원도 있다.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섬진강천문대는 덤이다.

 불탑과 어우러진 곡성성당 풍경. 곡성성당은 천주교도를 탄압하던 정해박해의 진원지에 세워져 있다. 곡성성당은 ‘옥터 성지’로 통한다.
▲ 불탑과 어우러진 곡성성당 풍경. 곡성성당은 천주교도를 탄압하던 정해박해의 진원지에 세워져 있다. 곡성성당은 ‘옥터 성지’로 통한다.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성륜사는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에 있다. 호남고속국도 옥과나들목으로 나가서 만나는 옥과면 소재지의 끄트머리 옥과교회 앞에서 왼편, 옥과미술관과 성륜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성륜사 #청화스님 #육화당 #안심당 #옥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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