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돌보는 마음은 언제나 꽃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최종규
그렇지만 안성진 님은 이름뿐인 아버지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름으로만 아버지가 아닌 '아이들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하루를 짓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회사원 몸이기에 비록 하루를 오롯이 아이들하고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라 하더라도 하루를 온통 아이들하고 어울리기도 만만하지 않아요. 지난 닷새에 걸쳐 회사를 다니며 고단한 몸을 쉬고픈 마음이 가득하거든요.
'아이들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를 탓하기 전에 부모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73쪽)'우리 아이들의 놀라운 잠재력을 오로지 공부하는 능력으로만 길들이고 있는 셈이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만 6세 미만의 아이에게 문자 교육조차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83쪽)수수한 회사원인 안성진 님은 어떻게 아이들을 마주하려 할까요? 수수한 회사원이자 아버지이자 사내인 안성진 님은 어떻게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어 보면 안성진 님은 아직 '훌륭한 아버지'는 아닙니다. 글쓴이 스스로 밝힙니다. 그러나 안성진 님은 '아직 훌륭한 아버지가 아닌' 터라 '앞으로 훌륭한 아버지 자리로 다가서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아이들하고 잘 하는가를 살피고, 스스로 무엇을 아이들하고 못 하는가를 헤아린다고 해요. 차분하게 이 두 가지를 살펴서, 누구보다 안성진 님 스스로 아버지이자 어버이요 어른인 사람으로서 거듭나려고 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가 되려면 '학교를 따로 안 다니더'라도 '늘 새롭게 배울'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요. 지식을 넘어서 삶을 가르쳐야 하고, 정보를 넘어서 살림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배워야 하는구나 하고 느낀답니다.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아이들한테 조금 더 상냥하면서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서는 아버지가 되려는 길에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적은 책이라고 할 만해요. 책 첫머리에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 한 가지를 옮기는데,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아이하고 마주하는 시간은 고작 하루에 6분이요, 한 해로 치면 36시간, 그러니까 한 해에 기껏 하루가 조금 넘을 뿐이라고 합니다.

▲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이 마을 빨래터 물이끼를 걷어내는 일을 훌륭히 돕습니다.
최종규
현실에서 변화를 경험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어떤 부모인지를 점검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에 있어서는 부모가 가진 양육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181쪽)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한 해에 고작 하루만 아이하고 마주한다는 통계가 무엇을 말할까요? 이는 통계이니까 조금 더 길게 아이랑 마주하는 아버지가 있을 테지만, 한 해에 하루조차도 아이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한 달이 가더라도 아이하고 말 한 마디 섞지 못하거나 않는 아버지도 있을 테고요.
우리는 저절로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절로 어머니가 될 수 없기도 합니다.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먹이기에 어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먹여살리는 일만 하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배우기에 비로소 '아버지·어버이·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 하기에 비로소 아버지나 어버이나 어른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육아는 아이에 대한 관심이며 사랑이다. 부모가 어떻게 대해야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인지를 배우게 되면 사실 복잡하고 어려울 게 없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된다. (199쪽)아이가 아이로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는 아빠로서 아이 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161쪽)

▲ 신나게 뛰놀고 나서 고단하게 잠이 든 아이도 사랑스럽지요.
최종규
어른이 좋아하는 대로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이 입는 옷차림대로 아이한테 옷을 입힐 수 없습니다. 어른 걸음걸이를 아이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어른이 읽는 책을 아이한테 함부로 읽힐 수 없습니다. 영화에 등급제가 있듯이 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등급을 살펴서 알맞게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길거리에 넘치는 광고판이나 가게를 놓고서도 아이한테 아무것이나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아이를 학교에만 보낸대서 가르치기를 다 한다고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집이며 마을이며 학교이며 사회 어느 곳에서나 두루 배워요. 책으로도 영화로도 인터넷으로도 모두 배워요. 여느 살림살이를 지켜보면서도 배우고, 이웃하고 동무한테서도 배워요.
배울 줄 알면서 새롭게 가르치는 아버지가 늘어날 적에 나라도 마을도 집안도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뿐 아니라 어버이로서 늘 모두 새롭게 배우려 하는 몸짓이 된다면, 참말로 기쁨하고 보람이 피어날 만하지 싶어요.
이름이나 허울이나 껍데기로 그치는 아버지나 어버이나 어른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버지에 슬기로운 어버이에 아름다운 어른으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배우면 좋겠어요. 저절로 되는 아버지가 아니라, 배워서 되는 아버지입니다. 배울 적에 바야흐로 사람입니다.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성진 지음,
타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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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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