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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 그들은 매혹했는가 매혹당했는가

[리뷰] '전쟁'이라는 공간 속에 갇힌, 그러나 갇혀있을 수 없었던 '여성'

17.09.12 17:40최종업데이트17.09.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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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왼쪽부터 소피아 코폴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엘레노어 코폴라. 코폴라 가족들 모두 영화인이다. ⓒ The Oscars


공교롭게도 코폴가 가문 모녀의 영화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코폴라 감독의 아내인 엘레노어 코폴라가 81세의 나이로 감독 데뷔한 작품 <파리로 가는 길>에 이어, 얼마 전 그녀의 딸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을 감상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을 그저 '코폴라'란 가문의 이름 아래 두기엔 아깝다.

엄마와 딸의 영화, 두 모녀는 모두 '여성'에, 그리고 그들의 숨겨진 혹은 억눌린 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엄마의 <파리로 가는 길>이 보다 로맨틱하면서도 연륜의 깊이가 담겨있다면,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여성, 그 시간과 공간 속에 담길 수 없는 끈끈한 욕망과 생존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담고자 한다. 그리고 칸 영화제는 그런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손을 들어 '감독상'을 수여했다.

2017년 판 <매혹당한 사람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의 포스터.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71년에도 이미 영화화된 바 있다. ⓒ UPI 코리아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토머스 컬리넌이 1966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1971년 <더티 해리>의 돈 시겔 감독에 의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2017년 다시 한 번 영화화한다.

1966년 발표와 함께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받았던 <매혹당한 사람들>은 남북 전쟁이 한참이던 시절, 남부연합 소속의 버지니아주 마사 판스워스 신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말이 학교지, 전쟁으로 인해 학생과 교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교장과 또 한 명의 선생님,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학교에 남는 것이 처지가 나은 다섯 명의 소녀 그리고 한 명의 흑인 노예만이 남아있다. 덩그러니 큰 남부의 저택을 북군의 공격과 남군의 침탈로부터 지켜가며 생존을 도모하고 있는 처지이다.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이슥한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간 소녀 아멜리아는 숲속에 부상을 입고 낙오된 북부의 병사 존 맥버니를 발견하고 학교로 부축하여 돌아온다. 전쟁으로 인해 고립된 공간에 남겨진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 그리고 거기에 뜻하지 않게 들이닥친 한 남성. 이 폐쇄적 공간에서 극단적으로 편파적인 성비의 만남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빚어낸다.

설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남자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초점을 맞추어 그 애증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그렇다면 2017년 칸이 감독상을 수여한 소피아 감독의 영화는 어떻게 달랐을까?

존 역인 콜린 파렐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지만, 마사 교장 역의 니콜 키드먼, 선생 역의 커스틴 던스트 그리고 학생 엘르 패닝 등 그 존재감과 무게감이 다르다. 또한,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2006년 <마리 앙투와네트>, 2013년 <블링 링>까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여성'에 방점이 찍힌 주제 의식이 미루어 짐작된다.

전쟁이란 시간과 공간 속의 여성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1971년 작에 비해 성애를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을 취한다. ⓒ UPI 코리아


아멜리아가 부상을 입은 존 맥너니를 데리고 온 마사 신학교, 말이 남부 연합이지, 교장 마사는 남부 연합의 군인들이 자신이 몰래 키우고 있는 소와 밭작물을 '공출'해 갈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처지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북군'은 자신들의 가족을 전쟁터로 내몬 성경 속 악마와 같은 '적'이다. 그렇게 생존에 몰린 여성들의 공동체에, '적'이자 그녀들과 다른 성인 북군 존이 들이닥친다.

파편이 박혀 부상이 심한 다리로 인해 그대로 남군에 넘기면 죽을 것이 뻔한 상황, 기독교 인도주의 정신을 내세워 존의 부상을 치료해주기로 선생과 학생들은 마음을 모은다. 자신의 가족을 전쟁터로 내몰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북군이다. 자신들에게도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르는 '적'이니 적개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방어 불능의 부상자이며, 그녀들과 다른 남성이다. 이런 요소로 인해 잔뜩 동여맸던 교장과 학생들의 적대감과 경계심이 허물어진다.

물론 그 층위는 각자 다르다.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똘똘 뭉친 교장 마사는 존의 몸을 닦아주며 달아오른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곧 냉정한 교장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한다. 오빠보다 무거운 존을 이끌며 학교로 데려온 아멜리아는 그를 자신의 친구라 여긴다. 마사 학교의 이방인, 도시로부터 이곳으로 온 에드위나는 처음부터 이방인인 그에게 별다른 경계심이 없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감정적으로 저항하던 캐롤 등등.

영화는 원작에서 등장하던 여자 흑인 노예의 설정을 없앴다. 성애를 전면적으로 등장시키는 대신, '교장이 존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식의 뒷말과 교장과 선생, 학생들 간의 묘한 심리적 변화를 통해 작품을 이끌어 간다. 전쟁 속에서 여성들만의 공간을 지켜가야 한다는 절박감, 방어심이, 자신들의 공간으로 들어온 무방비한 남성을 통해, 여성성을 회복하고 도발하며 만개하는 과정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자연스레' 그려나간다. 회복 정도에 따라, 괴물과 같은 적이 아니라, 북군이지만 충분히 자신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신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 마사 학교 여성들은 그와의 만찬 날 한껏 차려입은 각자의 드레스만큼이나 급격하게 각자의 여성성을 회복해 나간다.

그러나 애초에 일곱 명의 고립된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라는 불공정한 성비는 '비극'을 잉태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에게 어필하던 그녀들 그리고 그녀들에 맞추어 그녀들을 대하던 존은 그의 '추방(?)'을 앞둔 어느 날 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비극'으로 향한다. 일곱 명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성이 가졌던 불안하지만 도발적이었던 동거. 하지만 선의였던, 의도적이었던 존의 '실족'으로 인해 불행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생존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였던 마사 학교의 사람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영화는 존이 그들을 편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응 혹은 적극적으로 유도해가는 마사 교장과 에드위나, 캐롤, 아멜리아 등의 욕망과 의지에 주목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며 존을 그곳에 머물게 하는 그 순간에서부터, 마지막 남군 연합에 존을 양도할 때까지, 그녀들은 욕망의 공모자이자 생존의 조력자로 서로에게 충실하다. 존이라는 한 남성을 두고 경쟁하지만, 한껏 빼 입고 식사 자리에 앉아,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그녀들의 모습은 '위악적 본성'이라기보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발로로 소피아 감독은 그려낸다. 하지만 그 여성성이 유약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들이 기만당하고 도전받았을 때, 그들은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낸다. 전장 속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으로서 '운명'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매혹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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