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팠던 날 모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던 날.
박진희
자정이 돼서야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가본 응급실엔 아픈 아이들로 넘쳐났다. 응급실이 익숙해 보이는 아이와 부모도 있었다.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문 채 장난감과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서야 우리는 기저귀 한 장 챙겨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가 올 2월이었는데, 남편과 나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고, 유일하게 손에 쥐고 온 것은 체온계였다.
아이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약도 없이 스스로 열을 내렸다. 응급실 풍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여러 검사를 해야 했지만,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아이가 힘들어질까 봐 다음날로 소아청소년과 예약을 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옥 같은 밤을 보냈다. 정황상 요로감염 증세 같았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인터넷 검색을 폭풍처럼 해대고선 슬퍼졌다. 핵의학이니 소변역류검사니… 요로감염에 관련된 검사는 이름마저도 무시무시했다. 갓 100일 지난 아이에게 이런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니, 너무 가혹했다. 다시 '모든 게 내 탓' 타임이 돌아왔다. 잠 좀 자주 깬다고 아이를 원망의 눈초리로 대했던 지난밤들이 후회스러웠다.
죄책감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대학병원을 가서 소변검사를 했는데, 역시 균이 좀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열이 나지 않고 너무나 멀쩡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서 요로감염 확진이라 말하긴 어렵다며, 약 처방만 받고 돌아왔다. 일주일 뒤인 재검사, 소변은 깨끗해졌다.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 옛 직장동료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녀도 나처럼 늦은 나이에 결혼해 생후 7개월이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육아의 기쁨이 밤잠을 이긴다고 말했다. 난 그녀의 마음가짐에 감탄하며, 나는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말했다.
"난 애가 하도 울어서 내가 울 시간이 없었어." 노이로제에 걸린 엄마응급실행 이후 한동안 나는 걱정을 달고 살았다. 항생제 부작용으로 아이는 며칠 설사를 했는데, 밤새 기저귀를 쳐다보느라 또 잠을 못 잤다. 아이가 귀찮아하는데도 틈만 나면 체온계를 아이의 귀에 대보았다.
어느 날은 아이의 배 속에서 너무 큰 소리가 났다. 나는 그 뱃소리에 신경 쓰느라 아이가 젖을 물려고 하는데도 젖꼭지를 내어주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젖꼭지를 물고 싶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는데, 나는 배가 아파서 아이가 우는 것이라 단정 지어버렸다.
당시 회식 중이었던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 아기가 아픈 것 같아. 배에서 엄청 큰 소리가 나."남편은 회식을 하다 말고 집으로 달려왔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남편은 아이를 받아 안았는데, 아이는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 천둥소리를 내며 똥을 싸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하게 큰 똥을 누고 생글생글 웃었다. 남편은 허탈하게 웃고는 똥 기저귀를 갈고 다시 회식 장소로 향했다.
"여보 미안해, 내가 아이 아픈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나 봐."웃겨서 울고 만 나는 그렇게 남편에게 사죄했다.
오는 10월,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된다. 그때 응급실행 이후 감기 한번 앓지 않고 잘 지내가다 며칠 전 '돌발진'(6~15개월 사이의 아기들이 걸리는 바이러스성 발진으로, 고열 외에 특이점은 없고, 열이 내리면 온몸에 열꽃이 피며 자연적으로 낫는 병)으로 고생했다.
고열이 며칠째 계속됐으나, 아이는 잘 먹고 잘 놀았다. 아이가 아프니 또 그렇게 힘들던 밤중 수유가 껌처럼 쉬워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자도, 얼른 아이가 나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버틴 것 같다.
사나흘 만에 열이 내리면서 또 사나흘은 아이의 보챔에 시달렸다. '액받이 무녀'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 낫고 나니,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시련은 나와 아이를 자라게 한다. '내 아이는 절대 안 아팠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 인생에서 아픔과 시련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또 아이가 낫기 시작하면, 또 어느새 간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간 없어졌던 불평·불만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렇게 또 일희일비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육아를 통해 철학을 배우고, 인생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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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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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도까지 열 오른 아이, 모든 게 내 탓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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