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를 맞는 시민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차벽을 당기던 시민들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장성열
응답하지 않는 현장의 입법자발터 벤야민의 "경찰은 현장에서의 입법자" 라는 말처럼, 경찰은 현장, 즉 거리에서 자기 입맛대로 법을 만들고 바꿀 수 있는 입법자이자 집행자이다. 민주화가 된 후 조금 나아졌다고 한들, 그들의 성격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거기다 진보나 사회 운동 등을 북한과 연관 짓고 '종북' 프레임에 가두어 버리는 (준)전시 이데올로기가 합쳐져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비민주적인 행위나 불법 행위 등을 사실상 사회적으로 용납하고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왔다. 실제로 이승만 정권 이래로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했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마치 즉결처분권을 가졌던 일제강점기의 '헌병 경찰' 같은 이들은 현장에서 규율-폭력을 행사했는데, 그 규율은 일제강점기의 일본도에서 최루탄과 곤봉을 지나 방패와 최루액, 물대포로 바뀌어 왔을 뿐이었다.
김동춘 교수는 책임(responsibility)을 response + ability, 즉 '응답 가능성'이라고 규정했다. 국가나 공권력이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는 곧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응답을 잘 해주느냐, 혹은 구성원들이 국가나 공권력에게 응답을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크냐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공권력은 책임을 지지 않아 왔다. 구성원들에게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들과 전쟁을 하고, 국민들끼리 전쟁을 하게 만들며 그들을 규율하려고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무응답'과 '무책임'은 바로 최근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다 얼마 전인 6월 16일, '언론플레이'를 연상케 하는 반쪽짜리 사과였지만, 이철성 경잘청장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청장이자 최고 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청장은 끝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안치실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시민들 2016년 9월 26일 새벽, 시민들이 경찰이 안치실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입로에 앉아 있다.
장성열
마침표를 찍은 한 편의 거대한 부조리극백남기 농민의 일생은, 어쩌면 한 편의 거대한 '부조리극'을 연상케 했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국가폭력과 싸워 왔고, 고향에 내려가 밀 농사를 지으며 우리 농촌과 우리밀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사람이 국가폭력에 의해 의식을 잃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국가폭력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국가와 공권력은 사죄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고, 비극이었다.
그런데 직접적인 가해자와 책임자들은 사과를 끝내 하지 않았지만, 경찰과 국가가 백남기 농민과 그 유족들에게 사과를 표명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반쪽' 짜리 사과이지만, 국가가 드디어 '응답'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사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부조리극은 끝이 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소위 '민주정부' 들에서도 국가폭력이 존재해왔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폭력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 형태나 양상이 달라진다 한들 꾸준히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폭력의 가해자로만 존재해왔던 국가가 드디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응답'했다는 것은 무척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부조리극이 끝났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또 다른 부조리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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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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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외친 이유로... 국가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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