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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이 만든 특별한 일주일, 그 진일보한 여성들의 연대

[TV리뷰]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로 보는 여성의 생존과 연대

17.10.10 13:57최종업데이트17.10.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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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자들이 페미니즘을 주목하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사회화를 다룬 <굿 와이프>를 시작으로, 2016년 하반기에 방영된 여성 주연 및 여성 중심 드라마가 열 편이다. 이 중 범죄 수사 장르의 작품이 총 세 편이다. tvN은<굿 와이프>(2016), MBC는 <캐리어를 끄는 여자>(2016), 그리고 KBS가 <추리의 여왕>(2017)을 방영했다.

위에 소개한 드라마들은 결혼으로 인해 직업경력이 단절된 기혼 여성의 자아 실현과 재사회화를 주제로 삼았다. 여성 주인공이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해결하면서, 피해자를 구원하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약자가 자신보다 더 위기에 처해있는 약자를 구원하면서 부조리에 도전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은 쉽게 감동을 준다. 이는 여성 주인공이 자아를 실현하고 가부장제의 모순에 도전한다는, 작품의 본질을 환기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연출에는 한계가 있다. 작중 피해자는 주연에 의해 고통에서 구원받는데, 이들은 주인공이나 악역, 혹은 상황에 의해 불쌍하고 무력한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피해자 역시 주인공처럼 삶을 영위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주인공을 위한 당위 앞에 쉽게 잊혀진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청소년 피해자들은 자본과 무력 앞에서 죽고, 조용히 살아야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주인공 차금주(최지우)가 총을 맞으면서까지 사건을 해결해야할 이유로 자리매김할 뿐이었다. 이는 정의로운 남성이 불행한 처지의 여성을 구원해내고 행복에 도달하는 기존의 구원서사와도 큰 차이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생존해내는 여성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전달하다

라미란이 주연을 맡은 KBS 드라마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스틸 사진 ⓒ KBS


KBS 드라마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은 그래서 특별하다. 이 드라마는 그동안 많은 드라마가 쉽게 지워왔던 약자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주인공인 정마담(라미란)은 청소년기에 부모로부터 학대와 방치를 당했던 피해자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하루아침에 조폭의 돈가방을 훔쳤다는 혐의로 범죄자가 되었다. 그녀는 공소시효가 만료되기만을 기다리며 6년을 숨어 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오늘은 공소시효 만료일을 일주일 앞둔 날이다. 일주일 후면 정마담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캐나다인들이 좋아하는 메로나를 팔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박은미(신린아)는 아동 학대 피해자다. 박은미는 보험금을 노려 자식을 학대하는 친엄마와 새아빠와 살고 있다. 박은미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정마담이 먹고 내놓은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박은미는 엄마와 살기 전에 자신을 돌봐주었던 할머니를 기다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생각도 못하고, 할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엿볼 뿐이다. 은미가 밖으로 나간 걸 안 새아빠가 복도에서 자신을 찾자, 박은미는 자장면을 내놓은 옆집 아줌마 집으로 들어가 숨는다.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특수 요원이니까, 분명 할머니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마담은 졸지에 아동유괴범으로 수배되어 도망치게 된다. 돈을 돌려받으려 하는 조폭 땡바리(박정학)이 출소해 자신을 찾고 있고, 박은미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갈 곳 없는 박은미를 내치기만 하면 다시 아무 일도 없는 듯 숨어 살면 된다. 정마담은 박은미를 내칠지 말지 고민하다가, 아동학대로 죽은 여동생 생각을 하게 된다. "맥지 태어나서 고생이 많은" 은미가, 새엄마가 밥을 챙겨주지 않아 쥐약이 든 밥덩이를 먹고 죽은 여동생처럼 되면 어쩌나. 정마담은 박은미를 끝까지 지켜내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 정의에 불타는 조력자는 없다. 정마담과 박은미가 생존하는 모습이 스토리가 되고 드라마가 된다.

정마담과 박은미가 보여주는 다양한 여성들의 스펙트럼

라미란이 주연을 맡은 KBS 드라마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스틸 사진 ⓒ KBS


드라마는 정마담과 박은미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범주에 위치한 여성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제시한다. 모든 여성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나이와 직업, 빈부의 차이 등 다양한 조건이 여성들 사이에 차이를 만든다.

청소년이던 정마담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부모의 폭력에서 멀어질 수 있었지만, 집에 있는 동생을 신경써야 했다. 집에 있는 동생은 부모의 폭력과 방치에 노출되어 죽었다. 성인이 된 정마담은 성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범죄와 폭력에 노출되었다. 조폭들에게 쫓겨다니며 수사를 피해 몇년을 숨어지내야 했다.

성인과 아동인 정마담과 박은미의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정마담은 성인이고, 각종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있다. 돈과 서울의 지리와 지하철 노선을 잘 알고 있으며, 연락할 사람이 있다. 정마담은 박은미보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마담이 박은미를 도와야 할 지 고민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여성들의 연대가 행복을 향한 비행기를 띄워냈다

결국 정마담은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 땡바리와 함께 체포된다. 절도 혐의를 자수하고 감옥에 갇히지만, 박은미가 부모의 곁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한다. 수감이 끝난 뒤, 정마담은 캐나다에 가는 대신 캐나다인에게 메로나를 팔게 된다. 서툰 영어를 처음으로 뱉은 그녀의 옆에는 행복한 얼굴을 한 박은미가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날려보낸 종이비행기가 튼튼한 보잉 비행기가 되는 순간이다.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라미란 신린아 KBS드라마스페셜 단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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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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