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와 60, 어떤 숫자가 더 클까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 김재훈의 교육이야기

등록 2017.10.28 17:40수정 2017.10.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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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월 말이 되면 3월 개학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해줄 말을 생각나는 대로 스마트폰에 수시로 메모합니다. 메모한 내용을 고등학생 딸에게 들려주며 학생의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하나씩 체크해봅니다. 그리고 개학 전날인 3월 1일 우리 반 교실을 둘러보러 학교에 출근합니다.

출근하여 일단 장갑을 끼고 우리 반 교실을 두 시간 정도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리고는 반 아이들을 어떻게 앉힐 것인가 생각하며 자리배치를 합니다. 자리는 모둠별로 앉히기 때문에 첫날 아이들이 왔을 때 뽑기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둡니다. 앞뒤 게시판에 부착해야 할 것들도 미리 부착해 놓고 교실을 사진을 찍습니다. 집에 돌아와 우리 반 홈페이지를 만듭니다.

드디어 개학날 아이들을 만납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마주칩니다. 저는 칠판에 2와 60이라는 숫자를 쓰고 어떤 숫자가 더 크냐고 묻습니다. 너무 쉬운 질문에 아이들은 어리둥절 합니다. 그러면 2와 60 앞에 각각 20조라는 숫자를 쓰고는 다시 물어봅니다. 어느 숫자가 크냐고. 그러면 아이들은 머뭇머뭇 대답을 잘 못하죠.

그러면 이때다 하고는 훈화를 합니다. 2와 60은 우리들 각각이 가진 차이이다. 키가 크고 작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등등 그러나 앞에 있는 20조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명값이다. 그만큼 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다. 선생님도 너희들을 똑같이 대할 테니 너희들끼리도 서로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기 바란다. 이렇게 첫마디부터 차별없이 너희들을 대하겠다고 공표를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합니다.

자리는 모둠별로 앉힙니다. 우리 반이 30명이라면 6명씩 5개 모둠 이런 식이죠. 총무모둠, 학습모둠, 웰빙모둠, 놀이모둠, 환경모둠 이렇게요. 그리고는 알아서 모둠장을 뽑으라고 합니다. 잠시간의 소란과 즐거움 속에서 모둠장을 뽑습니다. 그러면 제가 공책을 다섯 색깔별로 30권을 준비한 것을 교탁 위에 놓고 모둠장들을 나오라고 합니다.

모둠장끼리 가위바위보를 시킵니다. 이긴 모둠장이 맘에 드는 색깔의 공책을 가져가게 합니다. 이렇게 전체 아이들에게 하나씩 공책을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는 공책의 명칭을 '나의 발자국 공책'이라고 명명합니다. 공책에 처음으로 쓸 것을 정해줍니다. '고3으로 생활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합니다. 오후에 모둠장 들이 공책을 걷어오도록 하여 하나하나 읽어보고 사인을 해 줍니다. 나의 발자국 공책은 아침 조회시간마다 내가 훈화를 하면 거기에 적도록 합니다.

뒤 게시판에 정호승의 '항아리'를 큰 글씨로 출력해서 붙여놓고 일주일 후 아이들에게 '항아리를 읽고'라는 주제로 발자국 공책에 쓰도록 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발자국 공책에 글을 쓰도록 합니다.


한 번은 '도난사건을 방지하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하였죠. 공동체 생활에서 제일 힘든 부분 중에 하나가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때이죠. 따라서 미리미리 방지하는 게 최선입니다. 발자국 공책에 계속 글을 써가면서 아이들이 쓴 글 중에서 진짜 감동적인 글을 제가 워드로 쳐서 예쁘게 오립니다.

뒤 게시판 '너에게만 알려줄게'란에 아이들이 쓴 감동적인 글을 게시하여 반 아이들이 함께 공유하도록 합니다. 게시하기 전에 아이를 불러 이 글을 뒤 게시판에 붙여도 좋겠니? 하고 물어본 다음 동의를 하면 붙입니다. 아이들 글 중에는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예민한 글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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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 ⓒ 김재훈


저는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을 매일매일 교단일기를 씁니다. 교단일기를 쓰다 보면 아이들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게 됩니다. 잘 관찰해야만 일기에 적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쓴 교단일기는 한 달이 지나면 모아서 우리 반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학부모들에게 편지로 부쳐드립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학부모님들은 궁금하거든요.

더군다나 고3들은 대부분의 생활을 학교에서 하기 때문에 더욱더 궁금하죠. 교단일기를 보내드릴 때 아이들 이름을 명렬표에 하나하나 바를 정자로 체크해 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아이는 10번 이상 나오기도 하는데 어떤 아이는 한 번도 안 나온 적도 있거든요. 학부모님들이 편지를 받으면 우리 딸 이름이 어디 나오는지 찾아볼 거 아니겠어요? 선생님의 작은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지요.

교단일기를 쓰다 보면 이벤트도 많이 하게 되죠. 이벤트를 많이 해야 아이들도 즐겁고 교단일기에 쓸 내용도 풍부해지니까요. 제가 하는 이벤트 중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점심때 하는 생일잔치가 있습니다. 그 달에 생일 맞은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음식을 싸와서 나누어 먹는 자그마한 행사인데요.

3월 첫 달에는 제가 '추억의 도시락'이라고 명명을 하고, 아이들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교실에서 모둠별로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것이죠. 한 번은 어떤 모둠에서 서로 마니또를 뽑아 친구 도시락을 싸와서 나누어 먹는 아름다움 장면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저보다 한 발 앞서 나간 것이죠.

4월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학교 내 잔디밭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 파티' 5월에는 학교 내 자그마한 정원이나 나무 그늘 아래 벤치로 '야외 소풍가기'등등 그때그때에 맞는 이벤트를 만들어 진행하면 별로 힘 안 들이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6월 달이 되면 날씨도 더워지고 아이들이 슬럼프에 빠지는 시기이죠. 6월 초에 본 전국 모의평가에서 한없이 작아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더욱더 힘들어지는 시기입니다.

3,4,5월 죽어라 공부해 왔는데도 성적이 그리 쉽게 오르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도 압니다. 그러면서 슬럼프에 빠지는 시기인 거죠. 어느 날 조회시간에 들어가서 오늘부터 한 달간 지각을 10번 이하로 줄이면 담임이 냉면을 쏘겠다! 라고 선포를 합니다. 아이들은 와! 하면서 좋아하죠.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일찍 일찍 학교에 나옵니다.

냉면도 냉면이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요. 혹시라도 지각하는 녀석은 아주 아주 미안한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한 달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지각생 수는 열을 가리킵니다. 이제 한 명만 더 하면 냉면을 날아가지요. 그런데 아뿔싸 누가 또 지각을 했네요. 아이들의 한숨소리. 그러면 담임이 아량을 베풀어 줍니다. 열다섯 번으로 늘려준다고요. 그렇게 해서 7월 달 생일잔치는 '냉면 먹는 날'로 하는 거죠.

하루는 교정에 목련나무 꽃이 활짝 핀 날이었죠. 청소시간에 아이들에게 오늘은 청소하지 말고 모두 목련나무 아래로 모여라 하는 거죠. 그렇게 목련나무 아래서 단체사진도 찍고 모둠별로 사진도 찍고 하여 교실 게시판에 전시해 놓는 거죠. 이벤트를 만들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들이 계속 생각납니다.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니까요.

좌석배치를 할 때 사자성어를 이용하여 앉게 하면서 아이들에게 호를 지어줄 수도 있습니다. 금란을 뽑은 아이는 지교를 뽑은 아이랑 앉는 식이지요. 상선약수, 화룡점정, 설빈화안 등등. 단 이때 두 글자가 호가 되니까 사자성어 선택을 잘해야 돼요. 청풍명월은 좋은 말이지만 뒤에 명월을 호로 가지게 되는 아이는 안 좋겠죠? 항상 모든 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겠죠.

호를 아이들에게 해석해서 내라고 하면 옥편을 뒤져가면서 기가 막히게 해석해서 내더군요. 역시 아이들은 창의적입니다. 또한 이런 이벤트를 해봤는데 아이들 파악에 최고더군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에 우리 반 아이들을 넣어서 개사를 해보자고 한 뒤 친구를 네 글자로 표현해서 제출하라고 했죠.

생각나는 대로 마구 마구 써 내도록요. 그랬더니 정말로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런 식으로 나오죠. 완전조신, 눈만두나, 키일팔공, 살인미소, 매력음성 불법시술 제주할망 말달리자 윙크쟁이 자아도취 등등.

담임의 역할은 해바라기 넘기라고 들어보셨나요? 해바라기를 심어놓고 매일매일 넘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새싹 해바라기를 넘는 일이 너무 시답잖아서 어느 날부터 해바라기 넘는 일을 안 하고 딴짓을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해바라기를 넘으려고 하면 그땐 이미 해바라기가 넘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습니다.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아이들로부터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담임의 역할 #교사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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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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