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진남관 국보 304호인 진남관은 우리나라 현존 목조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웅장미를 자랑한다. 기둥이 68개나 되는 진남관은 1718년(숙종 44)에 전라 좌수사 이제면이 중창한 것이다. 본래 건물은 이름이 진해루였고, 이순신은 1592년 4월 15일 이곳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경상 우수사 원균,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감사 김수가 공문을 보내왔던 것이다.
정만진
| 전라도 수군의 경상도 바다 출정 |
4월 15일, 원균 등으로부터 왜적이 부산을 점령했다는 공문이 이순신에게 전달된다. 4월 17일, 경상 우병사 김성일로부터 일본군이 부산을 점령한 뒤 머물러 있다는 소식이 온다. 4월 20일, 경상 감사 김수로부터 전라도 수군이 경상도 바다로 구원 출정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조정에 했다는 공문이 온다. 4월 26일,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공문이 온다. (본문 참조) 4월 27일, 조정에서 공문이 온다. (본문 참조) 5월 4일, 이순신의 전라 좌수영 수군이 경상도 바다를 향해 출정한다. 5월 7일, 이순신이 이끄는 아군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군 최초의 승리인 옥포 대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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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이순신은 조정으로부터 '경상도와 서로 의논하여 조처하라.'는 공문을 받는다. 왜적의 침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경상 우수사 원균과 의논해서 결정하라는 뜻이다. 이 공문에는 경상 좌수사 박홍과 상의하라는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박홍은 일본군이 쳐들어오자마자 곧장 경상 좌수영성을 버리고 도주했고, 그 이후 경상 좌도 수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4월 27일 출전 명령을 받는 이순신
4월 27일, 이순신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받는다. 조정은 '급히 출전하라'면서 '원균과 힘을 합쳐 적선을 부순다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정에서) 천 리 밖의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좋게 해석하면 '생각하는 대로 하라.'는 의미이고, 나쁘게 풀이하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각오를 가지고, 그것도 원균과 의논하여 실행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순신도 곧장 출전하지는 못한다. 전라 우수영의 군대가 도착하지 않았고, 일본군의 동태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순신과 원균 사이에는 5월 6일 경남 통영 당포 앞바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이루어진다. 조선군이 임진왜란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을 격파하는 5월 7일의 옥포 해전보다 하루 전에 전라 좌수군과 경상 우수군이 합세하는 것이다. (계속)
▲망해루 진남관 앞 망해루. 바다를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이름의 이 정자는 1991년에 중건되었다. 즉 문화재가 아니다. 문화재로 지정을 받으려면 최소한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망해루에서 조금 내려가면 이순신 동상이 있고, 도로를 건너면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거북선 모형이 있다.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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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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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이 상주에서 참패했을 때, 이순신은 출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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