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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 "연기한 지 15년째... 점점 더 불안해진다"

[인터뷰] KBS 2TV <고백부부>로 20살 넘나든 연기력 보여준 배우 장나라의 고민

17.12.08 11:23최종업데이트17.12.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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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 일색이었다. 이 역할을 장나라가 아니면 누가 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40대에 애가 있는 이혼한 여성이 20대 대학생 '마진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타임슬립물 KBS <고백부부>에서 배우 장나라는 20살 차이를 넘나들면서 연기한다. 애를 낳고 고단한 생활에 지쳐 허덕이는 '엄마'로서의 모습도, 순식간에 스무살로 돌아가 1990년대 캠퍼스를 즐기는 모습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장나라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이런 시청자들의 반응에 장나라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장나라는 "아유 현장에서 보면 위화감 그 자체다. 어떻게 해도 (나이는) 숨길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을 못박고 보셨기 때문에 가능하고 현장에 있는 모두의 아량으로 가능했다"는 장나라. 그러나 그는 '어려보이는' 얼굴 자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어려보이는 얼굴에) 신경을 쓰면 연기에 신경을 못 쓰게 되지 않나. 그보다 연기에 더 신경을 쓰려고 했다."

KBS <고백부부>의 배우 장나라 ⓒ 3HW


ⓒ 3HW


"잘해서 호평 받았다기 보다는..."

- 타임슬립을 해 과거로 갔던 부부가 다시 2017년으로 돌아가 행복해지는 내용으로 끝을 맺었다. 결말이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든다. 사실 그렇게 가지 않았으면 큰일 나지 않았나 싶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려는 것 자체가 가족의 따뜻함이랑 부부 간의 잊고 있었던 사랑을 깨닫는 것이기에 하늘이 두 쪽 나도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 <고백부부>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사실 아직 댓글을 잘 못 본다. 그렇게 담이 크질 않아서. (웃음) 그런데 감독님께서 반응 괜찮다고 보라고 하셨다. 뿌듯했다. 표현하고 싶은 걸 던졌는데 그것이 딱 전달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동그란 마음을 내놨다면 그걸 동그랗게 받아주셨을 때, 그럴 때 되게 기쁘다."

- 연기도 호평 일색이었다. 예상했나?
"그럴 리가. 사실 잘해서 호평을 받았다기보다는 작가님께서 처음 의도했던 대로 따뜻한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어서 연기도 좋아 보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대본에 너무 만족했다"

- 대본의 어떤 부분이 만족스러웠나?
"기술을 많이 써서 그럴듯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담백하고 따뜻하고 예쁜 대본이었다. 작가님께 따뜻한 마음을 갖고 글을 써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본을 쓰다 보면 그런 마음을 갖기 어렵다. '따뜻함을 전달해야지'라고 마음 먹다가도 '시청자들이 더 많이 보려면 이런 것도 들어가야하지 않을까?'라며 습관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처음 생각하셨던 그대로 대본도 갔던 것 같아 고맙다."

- 특히 어떤 부분에서 따뜻함을 느꼈나?
"<고백부부>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사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고마움이나 애정을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다.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서 따뜻함을 느꼈고 내게도 위로가 됐다."

KBS <고백부부>의 배우 장나라 ⓒ 3HW


ⓒ 3HW


- 실제 장나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인가?
"표현을 빼면 시체다. (웃음) 과도하게 표현을 하는 편이라 조금 자제가 필요하다. 나는 거의 '엄마 껌딱지'고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밖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종일 엄마랑 보낸다."

- (웃음) 보통 가족에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데.
"드라마에서 깨달은 것보다 일찍 깨달은 거다. 깨달음이 드라마를 할 때 도움이 됐다. 나는 '가부장적 남편'의 마인드로 20대를 보냈다. 엄마는 집에서 집을 돌보고 밖에서 일하는 나를 기다리고. 서로의 역할을 그렇게 갈라놓고 있었다. 나조차도 이미 엄마를 여자가 아니라 엄마로 단정짓고 '엄마 역할'을 주고 끝내버린 거다. 서른 넘으면서 깨달았다. 후회스럽고 한스럽다. 저렇게 예쁘고 현명한 여성이 있는데 엄마라는 틀에 내 마음대로 가둬두고 외롭게 방치를 했던 거다. 왜 그러고 살았나 싶었다. 그때부터 엄마랑 계속 같이 있었다."

- 드라마에서 호평을 받았던 '절절한 모성애' 연기는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미경 선생님이 나를 보는 시선이 마치 엄마가 나를 보는 시선 같았다. 김미경 선생님과는 연기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2012년 <동안미녀>를 할 당시 내 스승님으로 나오셨는데 보기만 해도 모든 연기가 다 되는 거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선생님과 연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가 온 거다. 무조건 해야 했다. 두 번 생각 안 했다. 선생님께 '제 삶에 들어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웃음)"

- 다른 캐릭터들 역시 마진주라는 인물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고다. 한보름씨 조혜정씨는 나와 같이 붙어 다녔는데 나를 정말 사랑하는 친구로 봐줬다. 진짜 친구 같았다. 내가 '스무살의 진주'로 안착하는데 도움을 줬고 남편으로 나왔던 호준이 같은 경우에는 정말 진주를 애처롭게도 만들었다가 불쌍하게도 만들었다.(웃음) 기용이 같은 경우도 되게 힘들었을 거다. 미안할 정도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첫사랑 연기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 힘든 연기를 열심히 해줘서 진주를 사랑스럽게 봐줘서 고마웠다. 각각 다른 모양의 사랑으로 예쁘게 봐줘서 진주가 빛날 수 있었다."

"심하게 성공했던 시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 연기를 시작한 지 벌써 15년 차다. 어떤가?
"점점 불안한 게 더해간다.(웃음) 조금씩 알아가면서 '연기의 신'이 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밖에 모르는데 점점 더 어렵다는 건 알게 되고 알아갈수록 본의 아니게 더 고민 된다. 처음으로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대본 리딩 날까지 잠도 못 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는다. 딱 첫 마디만 꺼내면 괜찮은데 그 전까지가 너무 힘들다.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줘야 하는데 믿고 따라와 달라고."

- 완벽주의자 같다.
"허술한 완벽주의자?(웃음) 인간은 허술한데 완벽하고 싶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기겠지만 '돈값'을 해야 하지 않나.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니까. 캐스팅한 분도 기껏 얘를 캐스팅했는데 뻔한 걸 하면 난감해지는 거고. 나랑 같이 하는 사람들도 내가 못해서 드라마를 망치면 그 사람 필모그래피에 영향을 주는 거고. 책임감과 부담감이 한꺼번에 온다."

- 연기 생활 내내 그랬나?
"점점 더 커진다. 처음에는 나밖에 안 보였는데 고개를 드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10년 정도 됐다. 그 전에는 나 밖에 몰랐다. 내가 할 것만 잘 하면 나머지는 남들이 하면 되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돌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그냥 이걸 내 성공이나 실패로 판단할 게 아니구나 싶었고 모든 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책임감이 생겼다."

KBS <고백부부>의 배우 장나라 ⓒ 3HW


ⓒ 3HW


- 스무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돌아갈 생각인가?
"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아무 것도 건드리고 싶지 않다. 분명 건드리면 또 다른 이유로 힘들어질 것이다. 뭐 하나 고친다고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둘 것이다. 살던 동네나 한 번 구경하고."

-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 않나? 다시 그런 인기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나?
"요즘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스타들처럼 기본기가 탄탄하거나 실력이 있거나 다른 능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속시킬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건 사실 '내 삶의 큰 이벤트'였던 것 같다. 감사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지나간 거고 지금이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 10년 전 인기를 누렸을 당시 힘들었나?
"세상 안 힘든 일이 어딨고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어딨겠나. 그런데 감당하기 많이 부담스럽긴 했다. 심하게 성공을 했으니까. 그것 역시 너무 감사한 일이고 그걸 감당 못하는 것도 제 몫이고. 그래서 두 번 살고 싶진 않다."

- 그렇게 인기를 누릴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게 있나?
"아마 거의 다 변했을 거다. 사람은 변하고 한치 앞도 모른다. 연기하고 싶다고 해도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신만이 아는 것 같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지금껏 가졌던 생각 중에 크게 깨진 게 하나 있다면 지난 것들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는 거다. (웃음) 사실 후회가 없는 게 아니라 후회나 미련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타임슬립을 하다 보니 나의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나도 후회나 미련이 있었던 거다. 나도 이제 38살인데 아직도 어린 생각이 있구나 깨달았다. 생각은 그렇게 계속 바뀌는 것 같고 또 계속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 (웃음) 몇 년 전 했던 인터뷰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된다'고 말했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그 생각은 지금 바뀌었나?
"내가 가졌던 최소한의 자신감이 있었다. 미친듯 열심히만 하면 잘하지는 못해도 어느 선의 연기까지는 할 수 있다는. 유일한 자신감이었는데 한두 해 연기를 하다 보니 나 혼자 발버둥 친다고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다. 그 순간 모든 게 다 없어져 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고 과연 연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다. 친구가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으니 좀 쉬라고 말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1년 넘게 쉬었다.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랬더니 좀 편해진 것 같다."

KBS <고백부부>의 배우 장나라 ⓒ 3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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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생활에 목표가 있다면?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게 목표다. 새로운 역할이면 더 좋고. 비슷한 역할이어도 표현의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까 비슷한 것도 할 수 있다. 사실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순서가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가 '핫한' 스타도 아니고 연기력이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에 드는 것도 아니고. 좋은 배우들도 너무 많다. 나보다 연기도 더 잘하는데 노는 배우들도 있다. 나에게 기회가 오는 게 감사하다."

- 올해 어떻게 마무리할 계획인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이가 먹는 것도 그렇게 슬프지 않다. 나이를 먹고 나면 그 다음 크리스마스가 찾아올 테니까.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나름 크리스마스라고 몇 천 원씩 모아서 제일 예쁜 옷 입고 명동 피자 가게에 갔던 기억이 있다. 앉아 있는데 그 앞에서 공연도 하고 연인들이 팔짱 끼고 눈도 내리고... 막연하게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뭐 하는 것 없이 축복받은 날인 것 같고.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거다."

장나라 고백부부 마진주 손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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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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