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아이가 그림을 그려서 함께 지은 책입니다.
스토리닷
곁님한테서 듣는 꾸지람 가운데 하나는 '왜 자꾸 책을 더 사요?'입니다. 곁님은 늘 말합니다. '한 번 보고서 덮을 책은 그만 사자'고요. '한 번 아닌 백 번을, 아니 천 번을, 아니 날마다 새로 읽으면서 날마다 새로 배울 수 있는 책 하나만 있으면 넉넉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고개 숙여 대꾸하지요. "그대 말이 참말 맞아. 그대 말대로야.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보았어요. 앞으로 내가 지으려는 새로운 사전을 다 짓고 나면, 이제는 책을 이렇게 끝도 없이 사들이는 몸짓은 그치려고요. 꼭 열 해까지만 이렇게 할게요. 열 해 뒤에는 사뭇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든 제 어릴 적을 돌아보든, 새로운 만화책이나 만화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참말로 끝도 없이 다시 보고 또 봅니다. 볼 때마다 재미있고 새로우니 자꾸 보고 다시 볼 수 있어요. 볼 때마다 배울 수 있기에 언제나 즐겁게 볼 수 있어요. 볼 때마다 나를 깨우치고 북돋우기에 활짝 웃으면서 새삼스레 볼 수 있어요.
제가 살아가며 얻는 목숨(밥)은 흙에서 얻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흙으로 집을 지어서 살아야 제 목숨을 옳게 건사할 만합니다. 그러면 저는 제가 밥을 삼을 터를 이루는 흙하고 같은 흙으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파묻는 흙땅이 아니라, 목숨이 살아숨쉴 흙땅이어야 합니다. 내 하루하루 살림에서 쓰레기를 내는 삶이 아니라, 꿈을 낳고 사랑을 피우는 삶이어야 합니다. 덜 쓰고 아끼는 삶이 아닙니다. 아름다이 누리며 착하게 꾸리는 삶입니다. (223쪽)아이들이 아침에 상냥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봅니다.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그래, 우리 이쁜 아이들도 잘 자고 일어났을까? 밤새 즐거운 꿈을 꾸면서 하늘을 날았을까? 지난밤에는 어떤 꿈을 꾸었니?" 서로 묻고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따스히 안습니다.
이제 두 아이(2017년으로 큰아이는 열 살, 작은아이는 일곱 살입니다)는 모두 스스로 밥을 지을 줄 압니다. 갑작스레 두 아이가 밥을 잘 짓더군요. 아홉 살 여섯 살이던 때에는 두 아이가 밥을 안 짓거나 못 지었어요. 열 살 일곱 살로 접어든 2017년에 참말로 갑작스레 밥을 지어내요. 큰아이는 손수 반죽을 하고 부풀려서 빵도 굽지요. 작은아이는 누나한테 질세라 달걀삶기를 해 보았고, 이제 제법 잘 삶아냅니다. 설거지도 걸레질도 비질도 제법 야무집니다. 아직 아이들 아귀힘이나 팔힘으로는 빨래가 만만하지 않으나,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잘 널고 잘 걷어서 잘 갭니다.
요새는 일부러 아이들한테 감 깎기를 시키곤 해요. "오늘은 누가 감을 이쁘게 깎아 보려나?" 하고 묻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감 한두 알을 깎느라 십 분 이십 분 넉넉히 씁니다. 반듯한 칼질하고는 아직 멀지만, 손수 칼을 쥐고서 깎고 썰고 접시에 곱게 놓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 나무를 베어 그림을 그리며 놀기
최종규
이렇게 하고 나서 나도 잠자리에 누우려다가 물 한 모금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는데 부엌 바닥에 뭔가 하얗게 있는 듯해요. 허리를 숙여서 부엌 바닥을 짚는데 어라 아무것도 안 집힙니다. 아니, 별빛이 집히네요. 달빛하고. (270쪽)저는 온누리 이웃 어버이나 어른한테 살며시 말을 건네고 싶어요. 이웃 푸름이하고 어린이한테도 가만히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라는 책 하나를 슬며시 건네면서 말을 걸고 싶어요. 손수 지은 밥이 가장 맛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요. 손수 지은 살림을 손수 고쳐서 쓰면 늘 웃음꽃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밤에 쉬 마렵다고 아버지를 깨우는 아이를 이끌고 쉬를 누이고는 물 한 모금 마시고 누우려다가 부엌에서 달빛을 주워 보셨나요? 마실길에 다리가 힘들다는 아이를 품에 안으니 어느새 새근새근 곯아떨어져요. 어버이 품에 제 온몸을 맡긴 채 꿈나라로 빠져드는 아이 가슴에서 내 가슴으로 스미는 따스함을 느껴 보셨나요? 갓난쟁이일 무렵 하루에 마흔 장 남짓 오줌기저귀에 똥기저귀를 내놓던 아이가 어느새 씩씩하게 커서 밥도 짓고 국 끓이기를 배우는 대견한 모습을 보셨나요?

▲ 우리 집 마당나무인 후박나무는 멋진 삶벗
최종규
살림짓기는 사랑짓기라고 생각해요. 살림하기는 사랑하기라고 생각해요. 아직 살림에 등을 돌린 이웃 사내한테 여쭈고 싶어요. 바깥일을 줄이면서 집안일을 함께 배우면서 해 봐요. 온 집안에 사랑이며 평화가 흐른답니다. 어설프거나 어리숙한 사내하고 사느라 고단한 이웃 가시내한테 여쭈고 싶어요.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차근차근 알려주고 가르치면서 어깨동무를 해 봐요.
어릴 적부터 살림짓기를 배운 적도 어깨너머로 구경한 적도 없는 철없쟁이 사내가 슬기로운 어버이로 거듭나려면 적어도 열 해는 지내야지 싶습니다. 열 해가 흘러야 멧골도 들도 냇물도 바뀌어요. 살림하는 아버지는, 또 살림하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고 가르칩니다. 아이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을 똑똑히 깨닫고는 마음으로 사랑씨앗을 심으면서 새롭게 배우고 가르쳐요.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최종규 글.사진,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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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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