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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 하면 현실로... 그 '중년남자'가 돌아왔다

[리뷰] 자본주의 현실과 상상을 엮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재개봉

17.12.25 15:48최종업데이트17.12.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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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포스터 ⓒ 글뫼


누구나 상상을 한다. 세계적인 가수나 스포츠스타가 되어 팬들의 사랑을 받거나,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돼 사람들을 구해내는 짜릿한 상상 말이다. 혹은 짝사랑과의 설레는 데이트, 맛집 탐방으로 파워블로거 되기, 완벽한 몸매로 SNS 스타가 되는 것까지 평소 자신이 바라던 소소한 상상도 한다. 특히 요즘같이 1년 계획을 세워야하는 연말 연시에 꼭 필요한게 상상하기가 아닐까? 계획은 언제나 상상에서부터 시작하니까.

1939년 우리들의 이런 '상상놀이'를 소재로 글을 쓴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마크 트웨인에 이은 미국 최고 유머작가라는 소리를 듣는 제임스 서버이다. 그가 '더 뉴요커'를 통해 발표한 단편 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에는 소심하고 예민한 중년남성 월터 미티가 마지 못해 따라 나선 아내와의 쇼핑길에 떠올린 공상들이 담겨있다. 상상 속에서 그는 암살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군인이 되어 사람들을 구하기도 한다. 제임스 서버의 이 작품은 1947년 한 차례 뮤지컬 코미디 형태로 영화화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2013년 벤 스틸러가 제작과 연출 주연까지 맡아 리메이크 했다. 9천만 달러가 투입된 영화는 북미 5823만 달러를 포함 전세계 약 1억9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4년만에 오는 27일 재개봉한다.

재개봉하는 <월터의 상상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샷 ⓒ 글뫼


불과 16페이지짜리 짧은 단편 소설의 이야기는 각본가 스티브 콘래드에 의해 재창조됐는데, 그의 각본에서 되살아난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16년 동안 잡지사 '라이프'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42세의 남성이다. 해본 것도, 가본 곳도, 특별한 일도 없는 월터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상상이다. 그의 상상 속 단골 주인공은 짝사랑 상대이자 새로운 직장 동료 셰릴(크리스틴 위그)이다. 상상 속 그는 불구덩이에서 그녀의 애완견을 구하기도 하고,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거친 산악인으로 등장하여 그녀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어느날, '라이프'지의 폐간을 앞두고 전설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보내온 표지 사진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당장 사진을 찾아오지 못하면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게 된 월터는 사라진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연락조차 닿지 않는 션을 찾아 그린란드로 떠난다.

삶이 무기력했던 한 40대 아저씨의 성장담을 담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메시지는 나이키의 그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과 다름없다. 좀 더 영화에 맞춰 표현하자면 "상상은 멈추고, 이제 그만 저질러봐(No more daydreams, Just do it Now)"쯤 될 것 같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상상하기를 즐기던 월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상을 하지 않게 된다.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월터가 상상에서 행동으로 옮길 때 멋진 문구가 등장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이 멋진 문구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배경이 되는 미국의 유명 잡지 '라이프(LIFE)'의 모토다. 이는 실제 라이프의 모토에서 영감을 받아 다듬은 것으로 영화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런 교훈적인 메시지를 끌어내고자 영화가 상투적인 전개를 반복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웅장한 자연의 절경을 담아내는 감각적인 영상미와 적절하게 스며드는 음악 그리고 작은 웃음들을 자아내는 벤 스틸러의 연기를 통해서 그것들을 상쇄해 나간다.

몇몇 영화의 오마주... 자본주의 사회 향한 통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샷 ⓒ 글뫼


이야기는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전개되는데, 벤 스틸러는 디지털 작업이나 스튜디오 촬영을 최소화하고 35mm 카메라로 현지 촬영을 고집했다. 덕분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아이슬란드의 아름답고 시원한 풍광을 즐길 수 있는데, 특히 월터가 그린란드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호캐한 장면은 '힐링'과 '도전'을 상징하며 영상미 이상의 것을 담기도 했다.

이러한 영상미와 조화를 이루는 음악도 영화의 따스한 분위기를 한층 두텁게 만든다. 특히 월터가 헬기에 뛰어들때 흘러나오는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와 호세 곤잘레스의 허밍이 돋보이는 메인테마 'Step Out' 그리고 엔딩곡 'Stay alive'가 돋보인다. 재치 넘치는 패러디 장면과 조우하는것도 영화의 재미 중 하나이다.

주인공 월터가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 빨간색과 파란색 두 대의 렌트카(둘 다 '마티즈'다) 중 한 대를 선택해야하는데, 이 장면은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색 알약과 파란색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월터는 네오처럼 '진실'을 뜻하는 빨간색을 선택하며 진심을 담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또한 월터가 셰릴과 한 로맨틱한 상상 중 하나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패러디한 장면도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한 대 밖에 없는 자전거를 향해 달려 가는 장면은 <헝거 게임>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월터에게만 집중하고 있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어가는 세상, 이 변화의 물결에서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라이프지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적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 속 구조조정 책임자 테드는 상대방의 눈앞에서 당신은 해고라며 거리낌 없이 해고통보를 한다. 모든 것을 경제 논리에 입각한 테드는 직원들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최소한의 인력과 자본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일자리를 잃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서글픈 현실이 담겨있기도 하다.

영화의 뒷이야기들

앞서 말한대로 영화는 1947년에 먼저 만들어졌는데, 원작자 제임스 서버는 원작을 훼손해 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1947년 작의 제작은 독립제작사를 선도하던 새뮤얼 골드윈이 맡았는데, 2013년 작에서 그의 아들 새뮤얼 골드윈 주니어와 손자 존 골드윈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사실 새뮤얼 골드윈은 1994년 짐캐리를 캐스팅해 리메이크에 착수했으나 엎어졌다. 이후 2010년 고어 버빈스키에게 연출을 맡겨 제작을 시작했으나 그가 <론 레인저> 작업 때문에 하차하고 2011년 벤스틸러로 감독이 바뀌었다. 주인공 월터 미티 역에는 짐 캐리, 오웬 윌슨, 마이크 마이어스, 윌 페럴 그리고 사샤 바론 코헨 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영화에 나오는 그린란드와 아프가니스탄 장면은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월터가 차가운 바다에 빠지는 장면은 수조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벤 스틸러가 아이슬란드 앞바다에 2분 간 입수해 촬영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잡지사 '라이프'는 실존했던 포토저널리즘의 상징과 같은 잡지사로 1936년에 창간되어 72년까지 주간지로 발행되다가 72년~78년 부정기적으로 발행했으며 1978년~2000년 월간지로 전환했다. 2000년 이후 특별호 개념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2007년 3월 폐간했다.

영화에서 월터의 어머니로 나오는 셜리 맥클라인은 라이프의 표지를 4번이나 장식한 인연이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For Hazel'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그녀는 벤 스틸러를 키워준 유모로 2013년에 사망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월터의상상은현실이된다. 벤스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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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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