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페미니스트다' 82년생 말고, '96년생 김지연'

[인터뷰] 동국대성추행사건+블루리본캠페인+@ = 96년생 김지연

등록 2017.12.31 12:28수정 2018.01.02 09:49
25
원고료로 응원
#동국대_성추행_사건

a

2017년 4월 21일. 동국대학교 점퍼를 입은 남학생이 숙명여자대학교에 무단 침입해, 과학관 1층 엘리베이터에서 한 여학생을 강제 추행했다. 해당 사진은 가해자의 사과문이다. ⓒ 강연주


2017년 4월 21일 저녁. 숙명여자대학교 내부에 외부인 진입이 금지됐던 어느 늦은 시간. 동국대학교 점퍼를 입고 있던 한 남성이 교내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남성은 곧장 교내 과학관으로 향했고, 1층 승강기를 타려던 여학생을 강제 추행했다. 현재 해당 사건은 '남성이 술을 마시고 자행한 것인지'에 대한 진위판정을 놓고 지난 11월 22일의 4차 공판까지 진행된 상태다.

사건이 길어지면 대중의 관심도 낮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때 해당 사건을 지속해서 언론에 노출하고, 하루 만에 약 1000명의 성명을 받아 동국대학교 학생회 측에 사과문을 요청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는 피해자 본인도, 그의 가족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론의 파장을 일으킨 진원이 된 이는 과연 누구일까?

#블루리본캠페인


a

블루리본 캠페인. 2017년 4월 21일, 숙명여대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공론화하고, 나아가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와 대학 안의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알리기 위해 기획된 캠페인이다. 11월 21일에 처음 진행됐다. ⓒ 강연주


지난 11월 21일. 동국대 성추행 사건의 4차 공판이 열리기 전. 숙명여자대학교 내에 2000개의 파란 리본 물결이 흘렀다. 동국대 성추행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대학 내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여성이 더욱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자'. 리본의 의미다.

리본의 물결은 대학가 전역으로 퍼졌다. 서울대와 중앙대, 동덕여대를 포함한 약 8개의 대학에서도 이들의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 캠페인에 동참했다. 내년이면 8개의 대학에서 동시에 2차 리본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시작점도 동국대 성추행사건을 공론화 한 지점과 맞닿아있다. 같은 사람에게서 시작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두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는, 대체 누구일까?

#96년생 김지연

a

숙명여자대학교 3학년 김지연. 4월 21일 동국대학교 성추행 사건 공론화를 위한 팀 페미파워프로젝트 대표이자, 11월 21일에 숙명여대서 진행된 블루리본 캠페인 기획자다. 페미니즘을 위한 페미니즘 물품을 제작하는 일도 함께 진행한다 ⓒ 강연주


"우리가 여자인 이상, 누구나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어 이 현실을 알려야만 해요."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짧게 친 머리. 서글서글한 눈매에 앳된 목소리까지.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말에는 당차고 똑 부러진 목소리로 생각을 꺼낼 줄 아는 사람. '평범한' 22살 여대생, 김지연(숙명여대 3학년)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일 그를 만났다.

그녀는 왜 스스로 '누군가'가 되고자 자처하고 나선 걸까. 무엇이 아직 여물지 않은 이 나이 어린 여대생의 가슴에 불을 지핀 걸까. '96년생 김지연'이 바라본 세상은, 그녀가 호흡하고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화가 났어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시간을 돌린다.

2016년 3월. 남한테 싫은 소리 하나 할 줄 몰랐던, 소심했던 한 소녀. 여느 학생들처럼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며) 공부만 알았던 그 소녀는 마침내 바라던 대학에 입학했다. 큰 목표는 없었다. 그저 대학에 입학하면 '하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 있었다. 그때 기억을 모두 끄집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때 그녀가 떠올리고 하고 싶은 것의 범주 안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는 없었다.

그때, 사건이 터졌다.

2016년 5월 17일 오전 1시. 23세의 한 여성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인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던 일.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는 범죄자의 범행 진술에 분노한 여성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만든 일. 당시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의 이야기다.

a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같은 해 5월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화가 났어요.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사건의 책임을 떠넘기는 이들에게. 그리고 이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저 자신에게."

당시 스무 살이었던 김지연씨가 여성으로서 처음 마주한 사회의 민낯이었다. 이후, 김씨의 머릿속은 온통 '여성 문제'로 가득 찼다. 앞으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할 지금의 한국 사회 속 문제에 눈을 뜬 것이다. 사실을 알아갈수록 분노하고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나설 수는 없었다. 20년간 살아온 자신의 성격을 뒤로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뒤이어 일어난 사건들은 결국, 그녀를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숙명여대생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도서관에 여장한 남성이 무단 침입한 사건, 학교 축제 기간에 축제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던 사람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어느 학우의 경험담, 방송 비제이(BJ)가 '여대'를 성적 우상화한 주제를 갖고 교내 근처에서 무단으로 촬영을 하고, 학우들의 외적 평가 및 모욕적 언사를 내뱉는 발언까지. 일련의 사건들은 이 작은 소녀의 손에 페미니즘이라는 칼자루를 쥐여준 원인이 됐다. 페미니스트 김지연씨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약자일 수밖에 없어요."

또박또박, 당당한 어조로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던 김지연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윽고 코끝은 빨개지고 눈가는 촉촉해졌다. 96년생 김지연의 현실은, 여전히 2년 전 강남역 10번 출구 그 자리에 매여있었다.

김지연다운, 김지연스러운, 그녀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김지연'. 변화를 결심하자마자, 그녀는 먼저 메신저 프로필 명을 바꿨다. 일종의 자기 선언이었다. 이후 96년생 김지연이 아닌, 페미니스트 김지연으로서 내디딘 첫걸음은 '페미니즘 물품' 제작이었다.

a

숙명여자대학교 3학년 김지연. 4월 21일 동국대학교 성추행 사건 공론화를 위한 팀 페미파워프로젝트 대표이자, 11월 21일에 숙명여대서 진행된 블루리본 캠페인 기획자다. 페미니즘을 위한 페미니즘 물품을 제작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녀가 제작한 페미니즘 물품들이다. ⓒ 강연주


종류도 다양하다. 반지와 귀걸이, 핸드폰 케이스에 티셔츠까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대부분 본인이 전담한다(반지는 디자인만 담당했다). 각 물품이 지니는 의미도 조금씩 다르다.

먼저 귀걸이.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제작됐다. 하얀색 레이스는 발암물질 생리대를, 아래 달린 빨간 큐빅은 생리혈을 상징한다.

그녀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도 의미가 있다. 옷에 기재된 'MY BODY, MY CHOICE'라는 문구는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고자 넣었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른 낙태죄 폐지 청원 서명이 화두가 됐던 만큼, 그녀 또한 낙태죄 폐지는 꼭 여성 인권을 위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단다. 이에 다른 방식으로 낙태죄 폐지를 공론화하고자 옷에 자기 생각을 담아낸 것이다.

이 밖에도 핸드폰 케이스와 반지의 경우, 페미니즘 그 자체를 상징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밖에도 페미니즘 문구를 직접 수놓은 학교 점퍼를 제작한 경험도 있단다.

a

숙명여자대학교 3학년 김지연. 4월 21일 동국대학교 성추행 사건 공론화를 위한 팀 페미파워프로젝트 대표이자, 11월 21일에 숙명여대서 진행된 블루리본 캠페인 기획자다. 페미니즘을 위한 페미니즘 물품을 제작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녀가 제작한 페미니즘 물품들이다. ⓒ 강연주


대중의 반응도 꾸준하게 성장했다. 처음 제작한 학교 점퍼의 경우, 약 8명 정도의 저조한 참가율을 보였지만, 가장 최근 제작한 발암물질 생리대 문제 공론화를 위해 제작한 귀걸이는 약 150명이 사전 예약을 했다. 대중의 유입이 높지 않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진행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참여율이었다.

이후 그녀의 활동 반경은 조금씩, 더 넓어졌다. 앞서 언급한 동국대 사건의 공론화와 블루리본 캠페인 진행이 그 예다. 현재 두 가지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동국대 사건은 현재 세부 사안에 대한 진위 판정을 위해 공판 진행 중이다. 블루리본 캠페인 또한 학생들의 개강 날짜에 맞춰 내년 3월에 재개된다. 이번엔 숙명여대에서 만이 아니라, 총 8개의 대학에서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페미니즘 물품을 제작해, 대중들이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을 기획하고 싶단다. 그래서 내년엔 블루리본 캠페인뿐만 아니라,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본인이 제작한 페미니즘 물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차후 대학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해 조언을 받을 수 있고 서로 연대할 페이지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피해자들의 공론화를 도와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가 되기 위함이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들의 활동에 작게나마 공감의 의사를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당연히 무섭죠. 내가 배수진을 치고 활동한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한 측에서 서서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어휴, 많았죠'. 아니나 다를까. 힘들지 않았냐는 뻔한 질문 뒤로, 흔들림 없이 제 갈 길을 갈 것만 같았던 이 소녀의 입에선 몇 차례의 위기가 흘러나왔다.

"제가 특이하게 PC방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근데 PC방은 주로 여성보다 남성들의 비율이 높잖아요. 제가 하는 일이나, 제가 페미니즘과 관련해 통화하는 것을 듣고서는 저를 도촬(도둑촬영)한 사람도 있어요. 물론, 그걸 인터넷에 올려서 문제가 된 적도 있었고요. 뒤에서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욕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땐 정말 무섭고, 힘들었죠."

도촬, 신상유포, 욕설. 22살 여대생에게 가해진 사회의 시선은 너무도 냉혹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무기력과 좌절감이다.

a

숙명여자대학교 3학년 김지연. 4월 21일 동국대학교 성추행 사건 공론화를 위한 팀 페미파워프로젝트 대표이자, 11월 21일에 숙명여대서 진행된 블루리본 캠페인 기획자다. 페미니즘을 위한 페미니즘 물품을 제작하는 일도 함께 진행한다. ⓒ 강연주


"사람들의 편견이요. 문제의 본질이 어떤 것과 상관없이, 페미니스트가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게 가장 힘들어요.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대중이 이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활동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니까요."

그녀는 안다. 이 활동이 훗날 양날의 검이 되어 본인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앞선 일련의 사건들처럼, 이후에도 누군가가 본인을 공격할 수도, 사회생활을 할 때 걸림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담담하게 지난 일들을 읊조리는 그녀.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그녀는 숱한 흔들림을 홀로 견뎌 와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페미니스트 활동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정당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물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억압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정말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현실이 올 거라 생각해요. 한 사람이라도 움직이면, 분명 변화는 이뤄질 거예요."

조금씩, 천천히.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스트'

"대단하네요,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도 가끔 제게 그렇게 말해요.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저는 여성 문제를 인지하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작게라도 목소리를 내고, 혹은 서명에 참여하면서 함께 연대해주는 분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분들 모두 스스로 미안함 말고,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아니라, 이 사회가 문제인 거잖아요. 페미니스트라고 밝힐 수 없게 하는."

a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 이희훈


바람이 불면 깃발은 살아난다. 한국사회에 여성 문제에 대한 여론이 일자, 여성들은 스스로 깃발을 잡았다. 김지연씨도 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깃대는 같았지만, 저마다 들어 올린 깃발의 색은 달랐다. 페미니즘을 해석하는 관점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김지연씨. 그렇다면 그녀가 잡아 올린 페미니즘의 색은 무엇일까. 

"여성들이 받는 사회 내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하는 것. 나아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문제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약자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 그렇게 함께 연대하는 모든 과정이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에요."

오늘도 그녀는 이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로 새로운 페미니즘 물품을 기획하거나,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자 할 테다. 하지만, 때론 페미니스트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여느 여대생처럼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학업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나날을 견뎌야 하는, 22살 김지연으로 돌아올 것이다. 96년생 페미니스트, 김지연씨의 자화상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은 어떤 페미니스트냐고.

a

숙명여자대학교 3학년 김지연. 4월 21일 동국대학교 성추행 사건 공론화를 위한 팀 페미파워프로젝트 대표이자, 11월 21일에 숙명여대서 진행된 블루리본 캠페인 기획자다. 페미니즘을 위한 페미니즘 물품을 제작하는 일도 함께 진행한다 ⓒ 강연주


"아직은 '배울 게 많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모자란 부분도 많고, 미숙한 부분도 많으니까. 그럼에도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여성을 위해 저항할 거고, 사회를 바꾸고자 항상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 최종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거예요. 이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억압에 대한, 차별, 폭력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느려도 조금씩 바꿔 가는. 그래서 저는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스트로 정의하고 싶어요."
#페미니즘 #숙명여대 #여성 #김지연
댓글2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