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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이 면회를? 판결문으로 본 '장자연 편지 위조' 사건

재판부는 왕진진 믿지 않았다... 그는 왜 장자연과의 인연 주장하나

18.01.03 13:16최종업데이트18.01.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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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시랭-왕진진 '무슨 이야기를?' 팝 아티스트 낸시랭(오른쪽)과 남편 왕진진(전준주)이 지난 2017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낸시랭-전준주(가명 왕진진) 부부가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속시원히 해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전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씨는 전자발찌 착용 여부, 재벌 회장 혼외자 사칭 의혹, 마카오에 거주한다는 모친의 존재, 위한컬렉션 실체, 500억 원대 자산설 등에 대해선 전혀 해명하지 않았다. 대신 이날 수년 만에 고 장자연의 이름이 재등장했다.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은 지난 2009년 3월 성 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친필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씨의 사망 뒤 유력인사의 명단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전준주 "수감 당시 장자연에게 다량의 편지 받았다"

전씨는 이날 교도소 수감 당시 장씨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다량의 편지 뭉치를 공개했다. 그는 1시간 정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추궁이 이어졌으나 핵심을 피하는 모호한 말들을 늘어놓은 끝에 "본인이 창작한 사실이 없다"면서 "실제 장자연에게 받은 편지가 맞다.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식으로 기관에 제출해서 진위 여부를 검증받겠다"고 여러 차례 반복했다. "장자연을 만난 적이 있냐"라는 질문엔 "10대 때 만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씨의 '성상납' 사건 재조사 의지를 표명한 것과는 별도로, 편지 위조 사건은 지난 2014년 이미 법적 판단이 최종적으로 끝난 사건이다. 전씨는 2013년 1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선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2014년 5월,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됐다.

▲ 장자연 편지 공개하는 왕진진 팝 아티스트 낸시랭의 남편 왕진진(전준주)이 지난 2017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장자연이 썼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씨는 특수강도강간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12년 8월 형기가 만료됐음에도 본건으로 인해 출소하지 못하고 재차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장씨를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를 받은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가 불구속기소된 것에 비하면 무거운 처분이다. 그만큼 장씨 유족과 대중에게 끼친 혼란과 해악이 큰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또 그는 재판 중 전문가로부터 '관계망상(아무 근거 없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신과 관계 짓는 망상)' 장애 진단까지 받았다.

기자가 입수한 항소심 재판 판결문에는 2차례에 걸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판시돼 있다.

"피고인(전준주)이 장씨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의 필적은 전반적으로 경직된 필체 및 강한 필압으로 기재된 특징이 있다. 이에 대해 감정인은 "세게 눌러서 쓸 경우엔 본인의 필적을 자연스럽게 기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필적을 모방한다든가 보고 그린다든가, 자기 필법을 의식해서 기재할 때 주로 그런 특징들이 나타난다"고 진술하고 있다. 

위 감정 대상물 ①항(피고가 장자연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 중 24매)과 ②항(장자연 실제 친필 편지 2매, 장자연의 육필 노트 5권 등)의 필적은 특징적인 자획의 구성과 배자, 필순, 필압, 필세 및 운필의 유연성 등 기재 습성에서 차이가 나는데, 이러한 점에 비추어 피고인이 장씨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의 필적과 장씨의 친필 필적은 서로 상이한 필적으로 판단된다."

항소심 판결문은 계속해서 전씨를 수사했던 경찰의 법정 진술을 인용하고 있다.

"피고인을 수사접견했던 경찰관은 원심 법정에서 "제가 피고인에게 어떻게 장자연이 면회를 왔냐고 물어보니 피고인이 2002년 알게 된 국정원에서 근무하는 형이 면회를 올 때 장자연과 함께 편법으로 면회를 온다고 했다. 그래서 교도소에 확인해 봤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제가 서신수발목록이나 면회기록 등을 살펴보고 신문이 들어갔는지를 확인했는데, 장자연과 관련된 서신목록이나 면회기록은 없었고 다만 신문이 들어가는 것은 맞았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피고인은 장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장씨와 접견한 면회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고 장씨의 가족이나 지인들 또한 피고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미 여러 차례 실형을 선고받고 장기간 수형 중이었음에도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고인인 장씨의 유족과 여러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신적 고통을 준 점 등은 불리한 정상"이라며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왜 전씨의 주장 믿지 않았나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전씨는 "재판부에 원본 편지가 몇 장이 존재하는 줄 아느냐"며 "국과수에 몇 장의 편지가 감정이 들어갔는 줄 아느냐? 내가 알기론 몇 장 안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두 차례에 걸쳐 국과수에서 총 52장의 편지 필적을 감정하고 광범위한 각종 수사 자료도 재판부에 제출됐다. 증인 6명의 진술, 전씨의 환경조사 및 모친 상대 탐문수사 자료, 교도소 수용자 의무기록부, 고 장자연의 수사보고서, 전씨의 접견인 현황분석 자료, 압수물 분석 수사보고서, 장씨의 소속사 대표에 대한 재판조회 및 판결문까지 제출되는 등 여러 증거들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심리됐음을 알 수 있다.

▲ 왕진진, 장자연 썼다 주장하는 편지 공개 팝 아티스트 낸시랭의 남편 왕진진(전준주)이 지난 2017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장자연이 썼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전씨는 복역 중 두발 규제와 변호사와의 접견내용을 녹음한 일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두발 규제는 각하됐으나 접견 녹음 건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위헌임을 확인받았다.

또 동료 재소자와 교도관을 폭행해 총 15개월의 추가형을 선고받으면서 '관심대상수용자'로 지정됐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따르면 "청구인(전준주)이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탤런트 고 장자연 사건에 관해 물의를 일으키자 교도소 측은 2011년 3월 형집행법 시행규칙에 따라 청구인을 관심대상수용자로 추가 지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씨는 2003년 5월 교도소에 수용된 이후로 약 27회에 걸쳐 규율위반으로 징벌집행을 받기도 했다. 수용 중에는 '환청', '피해망상' 등의 증상으로 3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앞서의 헌재 판결문에선 "정신과 전문의 또는 심리학자들은 청구인의 증상을 이른바 '관계망상증'으로 의심된다고 진단하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기자회견에서 낸시랭은 "남편에 관해 모든 걸 다 안다"면서 "남편 자체를 사랑한다"고 전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였다. 그러나 전씨의 이러한 이력으로 볼 때 그가 하는 말들을 쉽게 믿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교도소에서 전씨와 함께 수형생활을 했었던 한 인사는 "당시에 전씨가 모 그룹 회장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말을 우리 모두 믿었다"면서 "장자연이 편지를 보냈다는 말도 재소자들은 물론이고 교도관들도 모두 사실로 믿었다. 그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다"고 전했다.

낸시랭 장자연 왕진진 전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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