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달력이 '종북달력'으로... 아이의 공포는 생각해봤나

'진달래꽃' 단어 하나에 중정에 끌려갔던 기억도... 그림 그린 어린이가 걱정

등록 2018.01.05 11:11수정 2018.01.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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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우리은행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대상 그림 우리은행에 연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초등부 대상을 받은 그림으로, 다가올 뒷날에 통일나무가 쑥쑥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 우리은행


무서운 세상이다. 초등학생이 그린 통일염원 그림이 종북몰이의 대상이 되고, 그 그림을 달력에 실었다는 이유로 은행이 압박을 받는다. 우리은행에 열을 올리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정말 그렇게도 할 일이 없나' 묻고 싶다.

이 그림은 우리은행 관계자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 더욱이 의도적으로 그려진 것도 아니다. 은행에서 주최한 그림 공모전에 뽑힌 그림이 옮겨졌을 뿐이다. 심사위원들은 인공기가 들어간 그림을 '종북'이라거나 '좌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북통일의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남과 북의 국기가 그려졌을 뿐이다. 남과 북의 깃발을 그리지 않고 무엇으로 남과 북을 나타낼 수 있을까.

'백두산과 한라산'이라고 답할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만약 모두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우리의 문화·예술의 창작 정신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독재정권 아래서는 찬란한 문화예술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문화예술인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다른 생각, 남다른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요란을 떠는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블랙리스트 혹은 화이트리스트로 대상을 구분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북한 깃발을 보고 격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정이 물었다... "진달래가 북한 나라꽃인지 몰랐습니까"

이 논란을 보면서 나는 3공화국 시절 아동문학 작품 때문에 겪은 두 번의 고초가 떠오른다.


1971년 5월 3일 자 <삼남교육신문>에 실린 <꽃술>이란 시 한 편 때문에 나는 중앙정보부 파견대에 불려가 문초를 받아야 했다.

<꽃술>
흥겨운 듯 수줍은 듯 연분홍빛 진달래 / 송이송이 따서 모아 꽃술 빚어 담궜다가 / 추야장 긴긴밤에 잔에 남실 따루어서 / 진달래 향기속에 봄을 빌어 모셔두고 / 님도 한 잔 나도 한 잔 봄기운에 거나하면 / 금수강산 진달래가 내 속에만 피었어라.

당시 나는 28세 문학청년으로 매일 창작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상을 읊어본 시조 한편을 도내 주간교육신문에 투고했다. 그런데 이 작품 때문에 중정파견대에 끌려갔다.

시골 초등학교의 8년 차 교사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중정에 끌려갔으니 얼마나 놀라고 떨렸겠는가.

"선생님. 진달래가 북한의 나라꽃이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

'그랬던가? 내가 북한 나라꽃을 어찌 안다고?'라고 생각했다. 대답을 못하고 있자 물리적 폭력이 가해졌다. 1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고 진술서인지 뭔지를 쓰고 풀려났다. 그 뒤로 글을 쓰는 게 무서워졌다. 함부로 썼다가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주저하게 됐다.

1977년에는 <하늬수박>이라는 동화 때문에 중정 도분실까지 끌려갔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당시 아이들이 하늬수박 '하늘타리 열매'를 가지고 수류탄을 만들어 논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글 속에서 북한 공산당 '빨치산'을 나쁜 놈이라고 쓰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아이들이 전쟁 흉내를 내면서 노는 모습만을 그렸는데 꼬투리를 잡고 불러낸 것이었다.

그때도 도분실까지 서너 시간이나 걸려 오갔고, 조사를 받느라 온종일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데리고 간 군파견대장은 우리반 어린이가 지갑을 주워 와서 내 손으로 잘 전해준 적이 있는 분이라 나를 잘 보호해줬다. 좋게 해결됐지만, 참 힘들었던 하루였다.

문학 작품 때문에 중정에 불려간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은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논란이 된 그림을 그린 어린이는 지금 얼마나 힘들고 무서울까. 생각만 해도 안타깝기만 하다. 어린이의 그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이를 악용하는 언론들,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은 이 어린이가 평생 겪어야 할 아픔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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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부대 주옥순, 초등생 통일 그림 달력 소각 요구 자유한국당 김재경, 이종명 의원, 디지털소통 부위원장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사진)를 비롯한 당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앞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에 태극기와 함께 인공기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문제삼아 '달력 소각' '은행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내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통일나무 #우리은행 카렌다 #어린이그림 #종북몰이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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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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