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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돌파 <1987>, 여러번 봐도 가슴 벅찬 이 장면

[리뷰] 영화 < 1987 > 을 통해 돌아보는 6월 항쟁과 인간 군상

18.01.30 15:59최종업데이트18.01.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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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엔터테인먼트


1987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6월 10일, 18일, 26일로 이어진 평화 대행진으로 서울은 물론 부산, 광주, 대구, 인천 할 것 없이 전국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87년 평화 대행진을 다룬 영화 < 1987 >이 28일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 1987>은 지난 연말 개봉해 화제를 몰고 온 작품들이다.

<신과 함께>는 1400만 관객에 육박했지만, <강철비>는 450만도 버거워 보인다. 주호민의 만화를 원작으로 '헬조선'을 담고 있는 <신과 함께>가 순항하고 있는 반면에, 핵과 쿠데타를 소재로 북한의 지금과 여기를 다룬 <강철비>는 비교적 약세다. 탄탄한 서사구조와 핵이란 현재진행형 사안을 다루고 있음에도 객석의 호응도는 높지 않다.

'87체제'를 성립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평화 대행진은 그동안 영화나 소설 혹은 드라마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장준환 감독이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낸 듯하다.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사람의 조심성과 대담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 1987>. 누군가는 잊을 수 없는 옛일을 돌이키고, 누군가는 경이롭게 바라보는 영화 < 1987>.

정의와 불의, 그 선명한 이분법

흑과 백, 아군과 적군, 선과 악 같은 이분법은 힘이 세다. 선택지가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분법은 상황이나 판단기준을 너무 단순화함으로써 대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는 단점도 있다. < 1987>의 기본적인 동력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벌이는 건곤일척의 승부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나온다.

영화는 '정의'라는 어휘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들려준다. 학살정권의 수괴가 걸린 사진 위에는 '정의사회구현'이란 여섯 글자가 뚜렷하다. 지금 봐도 뜨악하지만, 당시에도 포복절도할 노릇이었다. 학살자 무리가 선점해버린 어휘 '정의' 내지 '정의사회'의 바닥 모를 생경함이라니! 그들의 뇌구조는 어떻게 돼먹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곤 했다.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가담자들에 대한 사실을 발표하는 김승훈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다. 군부와 사제단은 같은 어휘를 쓰고 있는데, 전자는 권력을 독점하고 국민을 강제하는 집단이며, 후자는 그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집단이다. 양자의 충돌과 갈등을 축으로 < 1987>은 다각도로 진행된다.

학살자를 옹위하는 무리는 대공경찰과 공안조직, 안전기획부와 정부의 보도지침에 순응하는 언론이다. 사제단을 돕는 세력은 정치범, 수배중인 운동가와 양심적인 교도관 등이다. 언뜻 보면 양자 대결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가 입증하는 것처럼 골리앗은 쓰러져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정의는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가족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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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에서 불의를 대표하는 세력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학살수괴도 안기부장도 아닌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이다. 빨갱이 색출에 눈이 시뻘건 치안감 박처원. 그를 작동시키는 것은 해방공간 북에서 겪은 가족몰살이었다. 교도관을 고문하면서 그는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지옥이 뭔지 아네? 가족이 다 죽어 나가는데 아무 것도 못하는 기야. 마룻바닥 아래서 식구들이 죽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거, 그게 바로 지옥이야."

국가의 이름으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대공수사에 끌어들이고, 친일악질경찰 노덕술의 악랄한 수사기법을 이어받아 써먹은 박처원. 그는 어린 시절 생생하게 목격했던 가족의 참살장면을 잊을 수 없다. 가족의 이름으로 대공처장을 압박한 이데올로기. 그것이 거꾸로 작용한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현장.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렇게 흘러간다.

"잘 가그라, 종철아.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고문으로 죽어간 종철의 유골을 얼어붙은 강에 뿌리며 종철의 부친이 절규한다.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단 하나의 진실도 알지 못한 채 스물두 살 생때같은 아들을 화장해야 했던 아버지. 가족의 대표로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국가의 이름으로 5공의 공권력이 무한폭력을 행사할 때 개인은 침묵과 굴종으로 견뎌야 했다.

또 하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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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이 무겁고 어두운 면모로 일관했다면 객석이 썰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잠시 다른 각도로 인도하는 가족이 등장한다. 연희 일가다. 편모 슬하에서 연세대 87학번으로 나오는 연희는 교도관인 외삼촌과 친근한 관계다. 그녀는 정치적인 사건이나 사회현상에 태무심하고, 열아홉 살 신입생이 그렇듯 영화배우나 유행가에 열광한다. 

외모와는 달리 외삼촌은 심각하고 중대한 조직 혹은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연희는 그런 외삼촌이 달갑지 않다. 그녀에게도 아버지의 예기치 못한 죽음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아버지가 세상과 작별했다고 믿는다. 그녀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 삼촌이 바라는 그런 세상은 절대 오지 않아."

연희가 우연히 이한열과 알게 되면서 사건이 사랑이야기처럼 변한다. 광주의 아들 한열이 보여주는 '광주항쟁' 비디오가 연희를 뒤흔든다. 하지만 연희는 한열의 편에 가담하지 않는다. 권력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가진 자들의 세상이 너무도 견고하고 두려웠던 탓이다. 달걀로 바위를 쳐봐야 달걀만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족관계를 박처원은 교묘하게 이용한다. 가족을 위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는 교도관 한병용. 빨갱이 색출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권력의 주구 박처원. "너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몰라"라고 했던 고문자들의 말이 귓전에 생생하다.

87항쟁은 어떻게 승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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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서울의 봄이 무너지고 광주민중항쟁이 대대적인 민간인 학살로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너무나 고요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과 절대고요가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학살자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전리품을 나눴다. '붕우유신'을 신봉한 학살수괴는 대권을 친구에게 넘기려했고, 이른바 4.13 호헌조치로 체육관 선거를 되풀이하고자 했다.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나오고, 6월 10일 평화 대행진이 기획된다. 6월 9일 일어난 한열의 최루탄 피격은 6월 항쟁을 뜨겁게 달군다. 고각도로 발사해야 할 최루탄을 전경이 수평으로 발사한 것이다. < 1987>은 이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한다. 정권에 저항하는 국민을 학살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입증하는 장면이다.

< 1987>에서 우리는 6월 항쟁의 하이라이트인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견뎌야 한다. 그 대신 박종철에서 이한열로, 이한열에서 연희로 이어지는 청년학도의 열혈투쟁을 본다. 최환 부장검사, 황적준 법의학 교수,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 한병용 교도관 등으로 이어지는, 침묵하던 세대의 저항과 강력한 투쟁의지도 확인한다.

이부영과 김정남, 거리거리에서 학생들을 숨겨주고, 먹을 물을 주고, 투쟁에 동참한 숱한 시민들이 화면을 채운다. 여러 번 봐도 가슴 벅찬 대목이다. 특별한 개인이나 영웅이 87항쟁을 성공으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이 나라의 모든 시민 하나하나가 항쟁의 주역임을 영화는 밝힌다. 장준환이 만든 < 1987>의 힘이다.

DJ와 YS, 그리고 박종운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이 떠올랐다. 김영삼과 김대중. 1991년 노태우, 김종필과 3당 합당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김영삼. 1997년 김영삼의 뒤를 이어 대권을 잡은 김대중. 그들의 분열과 3당 야합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분열과 대립으로 고통 받고 있다. 숱한 청춘을 민주의 제단으로 보낸 정치가들의 권력욕과 그 처참한 결과가 생각나는 것이다.

종철이가 죽음으로 지켜낸 박종운의 행보는 어떤가. 학살자들의 정당 민정당의 후신 한나라당에 2000년 입당하여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의 16대 국회의원 후보가 된 박종운. 그는 "이명박과 함께! 뉴타운+지하철!"이라는 홍보 포스터에서 행복에 겨운 얼굴로 웃고 있다. 17대 국회의원에 출마한 그는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종철이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현재의 민주화 투쟁이다."

1987 장준환 신과함께 강철비 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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