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 이수지 , 내지 그림
비룡소
그런데 소녀는 얼음판 아니 백색의 그림책 공간에서 종횡무진 스케이트를 타고 누비다 시원하게 점프하며 트리플 악셀을 보여준 뒤 그만 엉덩방아를 찍고 맙니다. 그리고 소녀의 공간은 구깃구깃 구겨지고 말지요. 흩어진 지우개 가루와 함께요.
우리 삶도 때로는 이렇게 구겨진 종이처럼 엉망이 되곤 합니다. 구겨진 종이가 다시 펼쳐져도 똑같은 종이가 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소녀도 엉덩방아를 찧은 채 홀로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삶은 예술이 될 수 없겠지요. 구겨진 종이를 극복할 때 삶은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녀가 홀로 있던 공간으로 아이들이 밀려들어옵니다. 모두 엉덩방아를 찧으며 깔깔대며 미끄러져 들어오지요. 소녀는 더 이상 시무룩하지 않습니다. 혼자가 아니니까요. 친구들과 함께 노는 얼음판은 그 어느 순간보다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순간이니까요.

▲ <선> 이수지, 내지 그림
비룡소
멋진 피겨 공연도, 번쩍이는 금메달 수상도 관객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환호하는 관중이 있기에 더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문학도 회화도 음악도 영화도 박수치고 함께 우는 사람들 속에서 그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될까요? 공감하고 함께 나눌 때 바로 예술이 됩니다.
'동계올림픽'의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는 삶이 예술이 되는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패럴림픽이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 그 순간순간에도 예술이 되는 순간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선
이수지 지음,
비룡소, 201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읽고, 쓰고, 말하고. 책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독서 탐색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