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암 동천석실의 용두암은 두 바위의 홈에 도르래(용두)를 설치하여 건너편 낙서재에서 음식을 넣은 통을 줄에 매달아 날랐던 시설물이다. 산을 오르는 수고를 들 수 있는 시설물이다.
김종길
동천석실은 산 중턱에 석담, 석천, 석폭, 석계, 희황교, 석문 등이 있는 신선이 사는 동천복지의 땅으로 천계로 가는 신선의 공간이다. 도교의 영향이 강하게 배어 있다. 고산이 남긴 시문이나 작품에도 도가적 표현이나 도교적 색채가 강한 것이 더러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원을 조성한 여러 기술들에서 그의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면도 볼 수 있다. 고산은 유학을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수용하고 도교적 세계까지 넘나들면서 자연 속 원림 생활을 즐긴 것이다.
고산은 정원을 예술로 승화했다. 그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문학적 감성, 남다른 안목과 탁월한 자연 친화력의 소유자였다. 아름다운 산수에 정원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시, 음악, 무용, 그림 등 자신의 학문과 예술 세계를 펼쳐 정원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심미적 감흥을 심화시켰다. 또한 당시 선비들처럼 몸은 현실에 머물면서 관념 속에서만 이상을 꿈꾼 것도 아니었다. 나아가 산수에 파묻혀 은둔만 하거나 자연을 노래하고 풍류만 즐긴 것도 아니었다.

▲동천석실 산 중턱에 있는 동천석실은 신선이 사는 동천복지의 땅으로 천계로 가는 신선의 공간이다.
김종길
고산은 직접 터를 잡고 축대를 쌓고 집을 짓는 등 적극적으로 정원을 조성했다. 단지 세상을 잊고자 자연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원을 조성함으로써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자연 속에서 새롭게 완성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고산은 도학자연한 선비들의 태도와는 다른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고산은 보길도 낙서재에서 85세로 생을 마쳤다. 그는 출사와 유배, 은둔으로 점철된 생애에서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었다. <고산연보>에는 1671년(현종12)에 고산을 문소동 옛터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그의 뜻에 따라 정원이 있던 문소동이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세연지 동백 해마다 이맘때면 세연지는 온통 동백꽃이다.
김종길
| 국가명승 제34호 윤선도 원림 관람법 |
고산 윤선도 당시의 주요 생활공간은 낙서재였다. 지금처럼 세연정이 부용동 풍경의 중심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부용동을 오면 대개의 사람들은 볼거리가 있고 잘 정돈된 세연정을 얼핏 본 후 곡수당과 낙서재까지 와서 휑하니 둘러본다. 건너편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보이지만 왠지 오르기에는 귀찮다. 멀리 눈동냥으로 대신하고 그냥 발길을 돌린다.
잠시 고산이 살던 시대를 상상해 보자. 부용동 정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고산이 그랬던 것처럼 낙서재를 제일 먼저 찾아야 한다. 이곳에서 하릴없이 한참을 소요한 후 지루해지면 세연정을 찾아 풍류를 즐기며 세상사를 잠시 잊는다. 그러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을 피하고 산책도 할 겸 동천석실로 오른다. 동천석실에 올라 탈속의 경지를 맛보니 그제야 부용동 정원이 몸으로 들어온다. 그러려면 아침 일찍 낙서재에서 소요하다 낮에는 세연정으로 자리를 옮겨 보내고 해질 무렵에 동천석실을 찾는 것이 좋다. 부용동 정원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으로는 전모를 알 수 없다. 오로지 내가 곧 윤선도가 되어 정서의 환기와 심화를 통한 내면의 일체감을 느낄 때만이 나의 정원으로 다가온다.
세연정에 올라 뱃놀이와 당시의 풍류를 상상하거나 어부사시사를 나지막이 불러보는 건 어떨까. 상류에서부터 연못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즐겨도 좋다. 칠암에 앉아 낚시하는 척해도 좋고, 물끄러미 연못을 바라봐도 좋다. 아 참, 옥소대에 올라 그 옛날 황원포 바다는 꼭 보는 게 좋다. 그도 아니라면 숲 속에 들어가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어도 좋다. 유튜브로 <어부사시사>를 듣는 건 또 어떤가. 송골매의 <어부사시사>도 좋고 임웅균의 <어부사시사>도 좋다. 칸타타 버전도 있으니 입맛대로 들어보자. 그저 빈둥거리며 정원을 소요하는 것, 그것이 최상일 수도 있다.
해질녘에는 반드시 동천석실로 가자. 예전처럼 차를 끓이고 마실 수는 없더라도 바위에 앉아 부용동 일대를 내려다보거나 돌 연못에 비친 하늘에 언뜻언뜻 흘러가는 구름을 보라. 신선경이 멀지 않다. 날이 어둑해지면 낙서재 귀암에서 고산처럼 달이 뜨기를 기다려 달 놀이를 하면 또 어떤가.
부용동은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에 찾으면 더욱 좋다. 부용동 여행은 적어도 꽃 피는 아침에 시작하여 달 뜨는 저녁에야 마치는 게 좋다. 기왕이면 하룻밤을 묵는다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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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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