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우리 말로 다시 쓰기⑥

어찌씨 '또는'과 '및'을 어찌 할 것인가?

등록 2018.03.26 11:41수정 2018.03.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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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우리 말법에 비추어 문제인 대통령이 낸 개헌안의 아쉬운 점을 <대통령 개헌안, 우리 말로 다시 쓰기> ①, ②, ③, ④, ⑤에서 차례로 살펴보았고 이제 마지막이다.

영어 'or'나 일본말 'また(ヌ)は'를 따라간 '또는'

'또는'을 우리 말 사전에서 찾으면 '그렇지 않으면'으로 풀어놓았는데, 본디 우리 말에는 없던 말이다. 영어 'or'이나 일본말 'また(ヌ)は'를 따라쓴 말이다. 이제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어찌씨로 버젓이 올랐다.

「부사」 그렇지 않으면. ≒내지 ((수량을 나타내는 말들 사이에 쓰여)) '얼마에서 얼마까지'라는 범위를 나타내는 말인데, 요즘에는 무게가 같은 말들 사이에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 가령, '문화 내지 정치 분야에서'처럼 말이다.
¶ 월요일 또는 수요일/집에 있든지
또는 시장에 가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마을의 골목길에나 강가나 또는 들녘 같은 데도


보기로 '월요일 또는 수요일/집에 있든지 또는 시장에 가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마을의 골목길에나 강가나 또는 들녘 같은 데도'를 들었지만 가만 읽어보면 '또는'이 꼭 있어야 할 말인지 궁금하다. '월요일 또는 수요일'은 '월요일이나 수요일'로 쓰고, '집에 있든지 또는 시장에 가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마을의 골목길에나 강가나 또는 들녘 같은 데도'에서는 '또는'을 빼고 말하는 게 훨씬 깔끔하다. 앞에 오는 말 '가든지'와 '강가나'에 이미 '선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는' 빼고 대통령 개헌안 다시 쓰기
제11조 ① (……) 누구도 성별·종교·장애·연령·인종·지역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 누구도 성별·종교·장애·연령·인종·지역이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제11조 ② 국가는 질병 또는 장애 등으로 인한 (……)
→ 국가는 질병이나 장애 등으로


제13조 ① (……) 누구도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으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않는다.
→ 누구도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이나 심문을 받지 않으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는 처벌·보안처분이나 강제노역을 받지 않는다.

제13조 ⑦ 고문·폭행·협박·부당한 장기간의 구속 또는 기망(欺妄), 그밖의 방법으로(……)
→ 고문·폭행·협박·부당한 장기간의 구속이나 속임수, 그밖의 방법으로
(※기망: '속임수'라고 쓰면 안될까?)

제20조 ③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
→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제23조 ③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 보상에 관한 사항은 (……)
→ 공공필요로 재산권의 수용·사용이나 제한, 그 보상 사항은

제32조 ①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에게(……)
→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나 아동에게 (※아동: 어린이로 바꾸면 좋겠다.)

제49조 ③ 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산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공공단체·기업체와 계약이나 그 처분으로 재산상 권리나 이익, 직위를 얻거나 다른 사람이 얻도록 주선할 수 없다.

제50조 ① (……)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연다.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이 요구하거나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할 때 연다.

제52조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
→ 국회는
헌법이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제64조 ②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 파견 또는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내 주류(駐留)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 정부가 선전포고를 하거나 다른 나라에 국군을 파견하고자할 때, 다른 나라 군대가 대한민국 영역에서 머물고자 할 때는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제72조 ② 대통령이 궐위(闕位)된 경우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 대통령 자리가 비거나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했을 때
(※궐위는 '어떤 직위나 관직 따위가 빔. 또는 그런 자리'를 말한다. 여기에 '-하다'나 '-되다'를 붙여 '궐위하다'꼴로 쓰는데 말이 너무 어렵다. '자리가 비다'로 쓰면 안될까.)

제80조 ① 대통령은 내우외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 대통령은 내우외환,
천재지변이나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제88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를 지은 경우를 빼고는

제96조 12. 정부 안의 권한 위임 또는 배정에 관한 기본계획
→ 정부 안의 권한 위임이나 배정에 관한 기본계획

제99조 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
국무총리나 행정각부의 장은 (……) 대통령령의 위임이나 직권으로 총리령이나 부령을 내릴 수 있다.

제107조 ② 명령·규칙·조례 또는 자치규칙이 (……)
→ 명령·규칙·조례나 자치규칙이

제110조 ① 비상계엄 선포시 또는 국외 파병 시의 (……)
→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나 국외로 파병할 때의

제123조 ② 지방행정부의 장은 법률 또는 조례를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과 법률 또는 조례에서 (……)
→ 지방행정부의 장은 법률이나 조례를 집행하고자
필요한 사항과 법률이나 조례에서

제124조 ① (……) 국가 또는 다른 지방 정부가 위임한 사무를 집행하는 경우 그 비용은 위임하는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가 부담한다.
국가나 다른 지방 정부가 위임한 사무를 집행하는 경우 그 비용은 위임하는
국가나 다른 지방정부가 져야 한다.

제135조 ①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나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한다.

제135조 ②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토씨도 이음씨도 아닌 '및'

'및'은 토씨일까, 이음씨일까, 아니면 어찌씨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풀어놓았다.


「부사」'그리고', '그 밖에', '또'의 뜻으로, 문장에서 같은 종류의 성분을 연결할 때 쓰는 말.

사전에서는 '부사', 그러니까 '어찌씨'라고 했다. '어찌씨'는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다. 그렇다면 '및'은 문장에 쓰여 어떤 뜻을 더 분명하게 보탰을까. 그저 이음토씨 '-와/과'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에 이수열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말 바로쓰기>(현암사, 2006)에서 "부사도 아니고 조사도 아니고 그 밖의 어떤 품사에도 들지 못하므로 말 자격이 없는 '음절'"이라고 했다.

'및' 빼고 대통령 개헌안 다시 쓰기

제24조 ③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 보상에 관한 사항은 (……)
→ 공공필요로 재산권의 수용‧사용하거나 제한할 때, 그 보상 사항은

제32조 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된다.
→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한다.

제33조 ⑤ 모든 국민은 고용·임금 및 그 밖의 노동조건에서 (……)
→ 모든 국민은 고용과 임금, 그 밖의 노동조건에서 (……)

제33조 ⑦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戰歿軍警)·의사자(義死者)의 유가족은 (……) → 국가유공자·상이군경과 전몰군경(戰歿軍警)·의사자(義死者)의 유가족은 (……)

제96조 3.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안, 조약안, 법률안 및 대통령령안
→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안, 조약안, 법률안과 대통령령안

제96조 6. 대통령의 긴급명령,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 계엄의 선포와 해제
→대통령의 긴급명령, 긴급재정경제처분과 명령, 계엄의 선포와 해제

제104조 ⑤대법관추천위원회 및 법관인사위원회의 조직과 운영 등 (……)
대법관추천위원회와 법관인사위원회의 조직과 운영 등
연재를 마무리하며

길게 말했지만, 헌법을 고치는 김에 쉬운 말로 쓰자는 소리다. 무엇보다 개정하는 헌법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먼저 떠올려 보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시민의 힘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자면 헌법을 비롯한 법령과 제도들을 쓴 말이 의무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쉬운 말이어야 한다.

많은 법들 가운데 헌법은 더욱 그래야 한다. 헌법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틀과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밝힌 법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주인은 국민이기에 국민 누구나 쉽게 읽고 자신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이며 이 나라가 어떤 정치 원리로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법을 지키고 법이 바로 서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개헌안 #대한민국 헌법 #우리 말 #또는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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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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