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도김인후의 <소쇄원 48영>을 토대로 1755년(영조 31)에 소쇄원의 건축물, 조경 등의 공간 구성을 새긴 목판 그림이다.
김종길
특히, 15개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재력이 막강했던 처가 사람 김윤제와 10살 많은 외사촌 형으로 전라도 관찰사를 하면서 소쇄원을 짓는 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외가 사람 송순(宋純, 1493~1582)의 도움이 컸다.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석천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송강 정철(鄭澈, 1536~1593), 제봉 고경명(敬敬命, 1533~1592) 등 당대의 명사들도 소쇄원을 빈번하게 출입했다. 이들은 소쇄원 사람들과 학연, 지연, 혈연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중 하서 김인후는 양산보보다 일곱 살 아래였지만 가장 절친했던 사이였다. 그의 문집인 <하서전집>에는 양산보와 관련된 시가 80수, 양산보의 둘째 아들이자 김인후의 사위였던 양자징과 관련된 시가 50수에 이를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소쇄원을 자주 방문했다. 얼마나 자주 소쇄원에 들렀으면 연못의 물고기가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김인후는 이러한 돈독한 관계와 잦은 방문으로 1548년 소쇄원 완공을 기념하여 지은 시라고 볼 수 있는 <소쇄원 48영>을 남겼다. 이처럼 호남 출신의 유명 인사들이 소쇄원가家와 깊이 교유하면서 소쇄원은 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매화매대에 핀 매화, 매대는 매화가 심어져 불린 이름이다.
김종길
소쇄원은 완공 후 양산보의 원림이라는 뜻으로 '양원梁園'이라고 불렸다. 양산보는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매화나무를 직접 심는 등 소쇄원을 손수 조성했다. 양산보는 나중에 평천장平泉莊 고사를 참고하여 후손들에게 소쇄원 관리에 대한 당부를 남겼다.
중국 당나라 때 이덕유는 낙양 30리 밖에 평천장을 호사스럽게 꾸몄다. 그는 죽을 때 후손들에게 "평천장을 팔아먹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 평천장의 나무 한 그루, 돌 한 점이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착한 자손이 아니다"는 유언을 남겼다.
양산보는 평천장 고사처럼 소쇄원을 남에게 팔지 말고 돌 하나 나무 하나라도 소중하게 보존하라고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이상적인 공간을 손상시키지 말라는 이 유언은 맑고 깨끗한 선비의 정신을 더럽히지 말고 절의를 지키고 살라는 뜻도 숨어 있다. 양산보는 만년에 소쇄원에서 10여 년간 병으로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1557년(명종 12) 봄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3월 20일에 세상을 떴다.
▲대봉대와 초정계곡에서 보면 대봉대와 초정이 하늘에 닿아 있다.
김종길
공간으로 보는 소쇄원 관람법-소쇄원에선 계곡미를 제대로 느껴야 |
소쇄원의 공간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입구 대나무 숲에서 연못, 대봉대, 애양단, 오곡문까지 이르는 진입 공간으로 기다림과 만남의 공간인 '전원前園'이다. 다음으로는 오곡문 옆 담장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과 광풍각 일대로 사색과 풍류의 공간인 '계원溪園'이다. 마지막으로 오곡문에서 매대를 거쳐 제월당으로 이르는 소쇄원의 중심 거처로 관조와 조망의 공간인 '내원內園'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1400여 평에 달하는 담장 안 공간이다. 소쇄원을 좀 더 넓게 보면 담장 안의 '내원內園'과 담장 밖의 '외원外苑'으로 볼 수 있다. 내원은 앞에서 말한 공간에 지금은 사라진 고암정사와 부훤당 터까지 포함되고, 외원은 지금의 주차장 자리에 있었던 황금정과 입구의 창암촌, 북쪽의 고암 동굴 등 소쇄원을 둘러싼 주변 자연 환경을 들 수 있다.
한편으론 입구의 초정과 제월당, 광풍각의 '주거 공간', 연못과 매대, (지금은 사라진) 석가산 등의 '정원 공간', 층계와 다리, 문 등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원림 곳곳의 '산책 공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완벽한 공간 구성이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별서로 소쇄원을 꼽는 이유이다.
소쇄원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모두 찾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일단 소쇄원에 들어서면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젖히고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책의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가듯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풍경을 읽어야 한다. 의미 부여는 있는 그대로, 조금씩 하는 게 좋다. 지나친 의미 부여는 오히려 자연스런 감상을 해칠 뿐이다. 그리고 누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원림을 지었는지, 원림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그 안에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차츰 알아 가면 된다. 그러면 비로소 원림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 참, 또 한 가지. 소쇄원에선 계곡 속으로 꼭 들어가 보자.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소쇄원의 계곡이 얼마나 깊고 웅장한지를 느낄 것이다. 계곡에서 들여다보면 여태 봤던 소쇄원과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소쇄원이 시작되기 전 태초의 공간, 하늘과 사람과 땅 천지인이 하나가 되는 소쇄원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운치 있는 풍경, 우아한 풍류, 고요한 시정, 올곧은 절의가 배어 있는 원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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